북한의 투명하고 책임있는 대화자세 기다린다

올해 북한 신년사의 대남 메시지는 지난해 신년 공동사설보다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김정은은 “나라의 분열상태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룩하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북과 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수십 년간 반복해온 민족대단결 노선에 근거한 언급이지만 남측의 반응은 뜨겁다. 일부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직접 남북관계 복원의지를 드러냈다면서 북한이 대화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남북관계를 주로 담당하는 국책연구소인 통일연구원은 북한이 유화 기조를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최근 수년간 대남관계에서 도발과 대화를 오고 갔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마찬가지였다. 10년 만에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을 때도 북한은 2008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진전에 커다란 기대감을 표명했다.


당시 북한은 ‘평화번영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통일에 대비해 법률적, 제도적 정비를 추진하자’고까지 제안했다. 그러나 남북 접촉이 엇나가고 김정은 후계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북한은 ‘특대형’ 도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와중에도 남북은 물밑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었다.


북한은 이번 신년사에서 대남 비난을 줄인 것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의중(意中) 떠보기 성격이 강하다. 이는 정권 교체기인 2003년과 2008년 신년사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18대 대선이 끝나자 북한 관영매체들은 박근혜 당선자의 이름은 빼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근 박근혜 당선인을 향해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의지가 있는지 공개적으로 물었다. 일종의 ‘간 보기’ 연장이다. 김정은이 직접 발표한 이번 신년사의 대남 메시지도 예년의 정치 수사적 차원의 제안 수준을 넘지 않았다.


박 당선인이 대화에 전제조건이 없다고 밝힌 만큼 공은 북한에 가 있다. 관망 기간이 이어지다 조만간 물밑 대화 채널이 가동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북한이 비밀스런 조건을 달고 나온다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우리가 아무리 열린 자세를 보여도 북한의 태도가 일방적이라면 남북관계는 정상화되기 쉽지 않다.


새 정부와 대화가 삐걱거리면 북한은 다시 3차 핵실험이나 대남 도발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은 대화와 도발 카드를 번갈아 만지작거리면서도 우리에게 ‘대화냐 대결이냐’의 선택을 요구하며 국론을 분열시키고자 획책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다음 정부에서도 김정은 체제 안정화를 위해 군사동원 체제를 유지하고 대남 도발을 지속할 것이 분명하다. 남북관계는 어느 때보다 대화와 도발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롤러코스터를 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남북관계 목표도 하향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북한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대화 자세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북한의 이번 신년사를 남북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보는 아전인수격 해석은 향후 전개될 수 있는 남북관계 고착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우(愚)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