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북한체제의 본질적 성격은 지난 60년 동안 근본적으로 변했다.

1945년 소련군정 시기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를 일반적인 사회주의 체제라고 한다면, 6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를 수령절대주의 사회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보스 1인 중심의 ‘마피아형 군사독재체제’라고 할 수 있다.

● 1945∼1967년까지의 북한 체제

북한사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교리에 따라 건설되었고 스탈린을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수령으로 인정하고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방향과 길을 같이 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들이 지향하는 가치나 체제와 주요한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도 김일성을 수령으로 묘사하는 표현들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그렇게 과한 것이 아니었고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김일성의 권력도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갖는 권력에 비해 그렇게 강한 것이 아니었으며 조선노동당이 갖는 막강한 권력에 비하면 그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권력을 갖고 있었다. 조선노동당의 막강한 권력이 김일성의 권력과 꼭 일체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선노동당의 권력은 김일성의 권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하루아침에 김일성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김일성도 조선노동당의 당원으로서 당의 결정에 복종해야 하며 당이 결정하면 물러나야 한다는 공산주의의 당연한 기본상식이 통하던 시대였다.

● 1967년∼1990년대 초까지의 북한 체제

1967년 김일성이 당내 2인자이며 조직 장악력으로 볼 때 실제로 김일성을 능가하고 있었던 박금철을 숙청하고 그와 관계있는 당내의 광범한 세력을 숙청하면서 북한체제의 본질은 급격히 변하게 되었다. 김일성이 박금철, 이효순 등을 숙청한 것은 당내에서 종파를 만들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에서인데 그 증거도 불분명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김일성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소(中蘇) 이념대결에서 북한은 중국편에 섰기 때문에 소련이 북한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축소되었고 중국은 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국가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내정에 개입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박금철은 군비강화보다는 경제건설을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기 때문에 군부 실세와는 약간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종합적인 조건을 김일성이 최대한 활용하여 이 절호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인 박금철 등을 숙청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2년 후인 69년에는 군 실세들도 대거 숙청하여 절대적인 1인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스탈린체제+민족주의=김일성 주체사상

이 시기의 북한체제는 기본적으로 스탈린 체제와 상당히 유사하다.

1) 절대적 1인 체제의 구축 2) 비밀경찰, 정치범수용소 등의 적극 활용 3)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공포정치의 양면전략과 적절한 균형 4) 지도자를 찬양하는 분위기 조성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와 다른 면도 있다. 스탈린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끝까지 신경을 많이 썼으며 이를 자신의 권위의 주요 기반의 하나로 삼았다.

김일성은 동유럽의 지도자가 소련에 의해 교체되는 것을 보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내세우다보면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고, 그러면 자신의 권좌도 안정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자신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적당히 버무려 ‘주체사상’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를 철학자 황장엽에게 이념적 체계로 만들라고 지시한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생각한 주체사상과 황장엽이 만들어낸 주체사상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황장엽은 주체사상의 이념적 체계를 만들고 북한에서는 이를 김일성이 창시한 독창적인 사상이라고 선전하여, 이를 각급 학교와 직장에서 강제로 교육시키게 된다.

주체사상은 그냥 철학사상일 뿐이고 이에 기초한 정치이론이나 경제이론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어서 북한의 당 간부들이나 인텔리들은 구체성이 결여된 주체사상이 어떤 사상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자신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적당히 버무려놓은 것이 주체사상인 것으로 오해했다. 그는 철학에 대한 관심이 없다보니 그러한 문제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

김정일은 당 무시, 개인 권력만 강화

김정일은 주체사상 자체에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다. 다만 주체사상을 자신의 권력획득 및 권력강화에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주체사상이 구체화되지 않은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훨씬 유리한 것이었다. 사상을 신비화시키기 유리하며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악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며 이데올로기적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70년대부터 북한 사회는 급속하게 탈이데올로기화하게 되는데 그것은, 1) 김일성-김정일 연합권력의 전근대적 성격 2)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 학습의 통제, 탄압 3) 지도사상으로 등장한 주체사상이 본질적으로 비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진 점 4) 정치이론이 없는 주체사상의 비구체성 5) 이데올로기적 논쟁은 완전히 배제되고 오직 김일성, 김정일의 말만 외워야 하는 정치풍토 등의 원인 때문이었다.

북한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상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생명력을 잃어버렸고 공산주의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

노동당 선전선동부나 기타 선전관련 기관들은 공산주의 사상에 관해 선전하는 데 열의가 거의 없었고 오직 김일성, 김정일을 어떤 식으로 찬양하고 어떤 식으로 우상화해야 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했다.

출세는 둘째 문제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관심을 완전히 닫아버리고 오직 김일성, 김정일을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이 시기에는 탈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보일 뿐만 아니라 조선노동당의 권위와 권력도 조금씩 약화되었다.

김일성은 박금철과 김창봉을 숙청할 때는 당을 내세웠지만 유일권력 체제를 수립한 다음부터는 당을 강화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특히 김정일의 경우 권력을 강화하고 집중시키기 위해 당 조직을 꾸준히 활용했으나 당의 권위는 항상 김일성과 자신의 아래에 오도록 했다.

그리고 당의 공식적인 지도체제를 무시했고 당의 형식적인 회의들도 귀찮아했으며 당대회도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은 채 오랜 기간 열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당의 권위와 권력은 약화되었으며 당 간부들도 당의 규율과 당의 결정을 지키는 데 관심을 갖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김정일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의 절대적 지위 약화

당 지도부의 분위기가 그러니, 이런 분위기는 점차 당의 중간과 당의 하부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노동당이 북한에서 갖던 절대적 지위는 점차 약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정치범수용소와 국가보위부의 물샐틈 없는 치밀한 감시와 국가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과 조직을 급격히 강화하였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 시기에 뚜렷한 이유 없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으며 국가 전체에 공포가 감돌았다.

67년까지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노동당이 체제의 주요 버팀목이었고 공포는 체제유지의 주요 요소가 아니었지만 67년부터는 공포가 체제유지의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80년대까지는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세뇌작업이 공포보다는 더 중요한 체제유지 요소였다.

이 시기의 특징은, 1)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 2) 김일성, 김정일이 절대적 권위와 절대권력을 갖고 철권통치 3) 탈마르크스-레닌주의 경향과 탈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보임 4) 국민감시기관과 정치폭력기관이 급격히 강화됨 5) 조선노동당의 권위와 권력이 조금씩 약해짐 등이다.

●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의 북한 체제

1990년대 들어와서 북한 사회는 또 다시 본질적으로 변화했다.

90년대 들어와서 변화가 시작되었다기보다는 많은 것들은 60년대 말부터 꾸준히 양적인 변화를 보이며 마침내 질적 변화를 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 분기점을 어떻게 잡을지는 불명확하지만 90년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군사독재체제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자면 91년 12월 김정일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됐을 때나 93년 국방위원장이 된 시기(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93년임)를 중시할 수도 있고,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국가체제가 붕괴되는 점을 강조하자면 93∼94년 식량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를 중시할 수도 있다.

조선노동당은 북한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과 권력이 조금씩 약화되어 오다가 90년대 들어와서는 김정일 1인 독재체제의 도구들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군에 대한 당의 견제나 지도 역할은 더 이상 강조되지 않게 되었고 군은 당으로부터 거의 독립되어 김정일의 사군(私軍)으로 완전히 전락되게 된다. 결국 노동당의 국가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군대에 밀리게 되었다.

김정일은 과거에 당을 통해 군을 장악하는 방법과 직접 군을 장악하는 방법을 겸용했지만 점차 직접 군을 장악하는 방법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정치위원(군에서 당 조직을 장악·지도하는 사람)이 주동이 된 95년의 6군단 쿠데타 모의사건이 터진 다음부터 노동당은 군에 비해 더욱 힘이 약화되었다.

김일성 ‘주체사상’ 착각 속에 살아

김정일이 앞세운 ‘선군(先軍)정치’ 개념도 군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게 하였다. 그리고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탈이데올로기적 경향이 점차 심화되어 90년대에 들어오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에서 완전히 멀어지게 된다. 결국 이데올로기가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기둥의 목록에서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데올로기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했고 주체사상은 일부 제3세계나 해외동포에 대한 통일전선사업과 대남공작사업을 위해서만 필요한 사상 정도로 취급받았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이 뭔지 잘 몰랐지만 자신이 주체사상을 만들었다는 착각 속에 살았기 때문에 주체사상에 대해 상당한 애정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강화하는 시기에 주체사상이 나름대로 필요하기는 했지만 김정일 체제를 확고히 구축한 다음에는 주체사상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따라서 김일성이 죽고 나서부터 주체사상은 북한 사회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지켜왔던 그 지위조차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97년 (주체사상을 실질적으로 만든) 황장엽 노동당비서가 망명한 이후부터 주체사상은 더욱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국가 시스템의 붕괴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부터 뇌물을 주고받는 관행은 있었지만 다른 3세계 국가에 비해 특별히 더 심하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서는 모든 분야에서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가게 되었고 뇌물이 없이는 되는 일이 없게 되었으며 북한의 부정부패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되었다.

부정부패가 이렇게 극심하다는 것은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국가기능이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뇌물을 받다가 걸리면 사형 등 매우 강력한 형벌로 처벌하고 있지만 사법기관도 역시 부정부패가 극심하여 뇌물을 주고받다가 걸려도 돈과 빽만 있으면 얼마든지 비켜갈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처벌이 더 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기의 국가시스템 붕괴는 모든 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곡물과 기타 생필품 부족으로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의 하나인 배급제도가 붕괴되었다. 배급제가 붕괴되면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고 거주이전과 이동을 극히 제한하는 북한 사회에서 수백만 명이 식량을 얻으러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사태를 그냥 손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국경이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었고 감히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극소수였으나 이 시기가 되어서는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이 연인원 1백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되었다.

북한 정부는 초기에 불법 월경자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처형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지만 공포도 굶어죽을 지경에 이른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원래 북한은 사적인 매매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국가의 배급제도가 붕괴된 조건이라 사적인 매매업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여기저기서 공공연히 사적 매매업을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우상화 세뇌작업에 의한 지도자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 자발적인 존경이 더 이상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둥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 갓 탈출한 사람들은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다른 방식의 호칭을 처음 들으면 흠칫 놀라며 다른 방식의 호칭을 쉽게 입에 담지는 못한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친 습관 때문이고 자발적인 존경, 자발적인 복종이 밑받침되어 있는 경우는 소수이며 날이 갈수록 그 수는 줄어들고 있다. 우상화 체제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의 온갖 비리와 부도덕함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화 체제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우상화 체제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나라든 사회에 공포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으면 원래 자발적인 존경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발적인 존경심은 약해지고 공포심에 의한 존경의 표현이 강해지게 된다.

결국에는 존경의 표현은 늘 메아리치지만 존경심은 없어지고 오직 공포심에 의해서만 그러한 현상이 유지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북한 사회가 그러한 단계에 거의 이르고 있다.

김정일에 대한 존경의 표현은 과거나 다름없이 여전히 전 국가에 울려 퍼지고 있지만 그것은 우상화에 의한 자발적 존경심보다는 주로 공포심, 다시 말해 내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거나 거친 비판을 받거나 심하면 감옥이나 정치범수용소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늘 앞서게 되는 것이다.

국유제는 김정일 1인 사유제로 변질

북한의 소유제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원래 북한은 국유제와 공유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공유제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협동농장은 국유농장처럼 운영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국유제 단일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70년대부터 국가재산이 김일성, 김정일에 의해, 특히 김정일에 의해 사유화되는 현상이 조금씩 강해져서 90년대 들어오면 완전히 김정일의 사유재산으로 변하게 된다.

낙후된 국가들에서 권력자가 국가재산을 몰래 횡령하는 일은 빈번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몰래 횡령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연하게 국가재산을 사유재산처럼 사용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국가재산을 자기 재산처럼 사용한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거나 제동을 걸거나 기소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형식적으로 국유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브루나이 같은 조그마한 토후국들처럼 1인 사유제로 이미 질적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은 김정일 사유의 공장과 농장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일 뿐이다. 아니 실제로는 아무 자유도 없으니 노동자라기보다는 노예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계획경제 붕괴

국유제가 김정일에 의해서만 파괴된 것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돈을 버는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또 돈이 있다는 것이 소문나면 이런저런 관료들이 온갖 명목과 구실로 돈을 뜯어가기 때문에 돈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감춰놓고 있다. 북한에서 은행 등 금융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러한 지하경제를 통계로 정확히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북한의 지하경제 활동의 규모나 지하자본의 규모는 지상경제의 3∼4배가 된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지하자본은 당연히 모두 사유화되어 있다. 광범한 관료들도 이러한 지하경제에 가담하고 있다. 관료들이 모은 돈은 대부분 뇌물로 모은 돈인데 이를 지상경제에 활용할 수는 없다. 그냥 숨겨놓든지(그냥 숨겨놓는 것도 지하경제의 한 부분이다) 아니면 지하자본으로 운용되는 것이다.

지상경제는 김정일에 의해 사유화되고 지하경제는 다양한 일반인들에 의해 사유화되어 현재 북한에서 국유제는 껍데기만 남고 말았다.

국유제만 파괴된 것이 아니다. 계획경제도 파괴되었다. 북한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하경제가 계획경제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반(半)지하경제라고 할 수 있는 장마당도 역시 계획경제의 범주에 들어오기는 힘들다.

식량난으로 인해 생긴 각종 국가시스템의 붕괴는 계획경제를 거의 의미 없게 만들어버렸다. 70년대부터 계획경제를 끊임없이 유린하던 군(軍) 경제와 김정일 일가의 경제도 여전히 계획경제를 유린하고 뒤흔들고 있다.

식량난이 본격화된 90년대 중반 이후 계획경제는 거의 붕괴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식량난이 완화되고 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지하경제의 비중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오히려 더 심해졌다. 국유기업의 공장가동률이 20% 전후에 머무르고 있고 지하경제의 비중이 매우 커진 조건에서 국가계획을 세워봐야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현 김정일 체제는 마피아 집단과 가장 유사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의 3대 핵심요소인 공산당 독재(이론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독재), 국유제, 계획경제가 모두 파괴되
었다.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북한의 사회주의적 요소는 60년대 후반부터 파괴되기 시작했는데 점점 그 파괴속도가 빨라져서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북한 사회는 전근대 봉건왕조와 군사독재체제와 마피아집단을 적당히 섞어놓은 것과 같은 사회이다.

이중에서 특히 마피아집단과 유사점이 가장 많다.

북한 체제와 마피아와의 유사점을 본다면 1) 보스 1인 중심체제 2) 가족, 친지, 측근 중심의 운영 3) 무력을 가장 중시 4)공포장치와 공포심을 체제유지의 근간으로 삼음 5) 보스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강조함 6) 폭력적 방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보스를 바꿀 방법이 없음 7) 이탈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8) 불법적인 일에 경제를 많이 의존함(마약 거래, 위조지폐 거래, 미사일 매매) 9)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을 일삼음(주변국 협박, 공갈) 10) 사회발전의 암적인 존재이며 사회에서 점차 고립됨(김정일 정권은 지구촌의 암적 존재) 등이다.

현재 북한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다음 몇 가지이다.

1) 자연인 김정일과 김정일에게 고도로 집중된 권위와 권력 2) 각종 공포장치와 공포

 

심 3) 각종 정보와 차단된 폐쇄 체제 4) 복잡한 장치와 관계를 이용해 김정일에게 집중되어 있는 막강한 군사력 등이 그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거의 대부분 붕괴했지만, 그렇다고 그 어떤 새로운 이론에 의해 안정된 사회를 건설한 것도 아니고 개인독재를 강화하며 그냥 굴러가는 대로 굴러가다가 현재의 체제로 온 것이다.

현재의 북한체제는 붕괴되는 과정의 과도기가 비교적 안정되어 보이는 정도일 뿐이다.
김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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