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학생운동은 왜 없는가?

필자가 남한에 와서 청년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북한에는 왜 학생운동이 없는가?”이다.

북한에서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어죽고 20여만의 정치범들이 관리소에 갇혀 인간이하의 멸시를 강요당하는 속에서도 정의와 진취심이 강한 북한의 청년학생들은 뭘 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인 것이다. 또 우상화독재 정치로 나라가 정치, 경제 , 문화적으로 폐허가 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북한의 대학생들은 도대체 뭘 배우고 공부하는가 하는 질타의 물음이다.

이들의 질문에 필자는 “북한에서는 학생운동이 있을 수 없다”라고 답하면서도 “왜 북한에서만 학생운동이 없는지”한 순간에 풀이 할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북한의 대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무리 설명을 해야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는 학생들이 자체로 총학생회를 꾸리고 학생들이 주도하에 정치생활, 문화생활을 꾸려나간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자체로 학생간부 한명도 선거할 권한과 선거 받을 권리가 없다. 그러면 왜 북한의 대학생들은 학생간부로 선거하거나 선거 받을 권리가 없으며 나아가서는 사회활동도 할 수 없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자율적인 학생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

북한의 헌법 1장 11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강조한다. 북한에서 헌법은 한갓 종잇장에 불과하지만 모든 주민들이 노동당의 영도 밑에 사고하고 행동해야한다는 것은 철두철미하다.

특히 청년대학생들에 대한 당의 통제는 극치를 이른다. 대학 당위원회가 학생들의 모든 행동을 장악 통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북한의 대학생들을 조직화하는 문제는 대학의 김일성 청년동맹에서 독자적으로 조직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의 김일성 청년동맹 역시, 노동당의 외곽단체로 노동당의 지시에 의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성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청년동맹 간부도 대학생들의 자율적인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대학 당위원회에서 선출한 학생이 청년동맹 비서가 되고 간부로 선발된다. 특히 남한에서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거세차던 80년대 이후부터는 대학생들로 구성하였던 김일성 청년동맹 학부위원장을 교직원이 대신하는 유급제로 전환하여 대학생들이 학부 위원장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외 자율적인 학생조직은 반당적 적대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노동당의 사상과 대치되는 학생조직은 합법화 할 수가 없다. 설사 비밀조직을 만들었다 해도 발각되는 날이면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행이다.

따라서 북한의 대학생 조직은 모두 김일성 청년동맹과 노동당원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독자성을 가진 자율적인 학생조직은 존재 할 수 없고 오히려 개별적 대학생들이 청년동맹과 노동당의 감시와 통제 하에 움직이게 된다.

그 감시와 통제의 기본수단은 생활총화와 사상투쟁이다. 당 조직과 청년동맹에서는 주별, 월별, 분기별로 생활총화를 진행하는데 개인들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를 놓고 나타난 결함을 총화하고 비판해야 한다. 또 당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개별행동이 나타났을 때에는 대학생 전원 총회를 통하여 대중의 비판대상이 된다. 결국 대학생들은 한걸음도 자위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든다.

병영식생활

학생조직이 자율화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원인은 대학생들을 울타리에 가둬놓고 생활하도록 강요하는 병영식 생활 때문이다. 북한의 대학생들의 행정규율은 군대식으로 짜여져 있다. 학급은 소대로 불려지고 여러 소대가 모여 중대를 이루며 학부는 여러 중대가 합쳐 대대를 형성한다. 또 여러 대대가 합쳐 연대를 구성한다.

학생들의 일과 역시 군대식으로 되어 있다. 아침 기상나팔에 따라 기상하고 중대별로 대열을 지어 김일성, 김정일 만세 삼창을 부르며 행진하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저녁이면 중대별로 점검(점오)을 하고 취침하는 식으로 일과가 짜여져 있다. 실례로 한 학생이 개별적 행동으로 점오에 불참하였다면 그가 소속된 소대(학급)성원들은 그를 찾아 올 때까지 취침을 할 수 없다. 자연히 소대 성원들은 점오에 불참한 개별적 성원에 대한 사상투쟁을 아니 벌릴 수 없게 한다. 그만큼 다른 전체학생들에게도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동의 자유, 개별행동이란 있을 수 없고 모두 집체적인 행동으로 학습하고 생활하는 병영식 생활을 하게 된다.

물론 위와 같은 행정규율도 대학당위원회가 감시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행동이란 있을 수 없다.

보위원들의 활동

대학 내에서 보위원들의 활동도 무시 할 수 없다. 80년대 남한의 청년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보위원들이 대학구내를 맴도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1980년 말경부터 대학을 담당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구내를 맴돌며 개별적인 대학생들을 불러내어 만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남한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보면서 북한에서도 대학생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 반정부시위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압감 때문에 내부적으로 지시가 내려온 듯했다. 따라서 보위부원들은 대학생들 속에 정보원을 양성하고 대학생들의 동향을 분석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것으로 보였다.

보위원들의 이런 행동에 의하여 적발된 것이 1980년대 말 평성이과대학내에 벌어졌던 조직사건이다. 이과대학생 일부 대학생들이 발전도상에 있는 미개한 나라에 가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다음 교과서적인 사회주의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가담한 학생들은 누구는 대통령, 누구는 무력부장, 누구는 총리 하는 식으로 조직화되어 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만 보위부에서 냄새를 맡고 학생들이 체포됐다. 체포된 학생들이 어디로 끌려갔을지는 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 분명히 살아서는 나오지 못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을 것이다. 그만큼 북한에서는 보위원들이 대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접근하여 감시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이렇게 북한대학생들은 당과 병영식생활의 2중 3중적 감시와 통제 하에 생활하기 때문에 좀처럼 사회를 위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기가 어렵다. 학생들의 사회를 위한 조직적 활동은 반드시 노동당의 요구에 순응하며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사회도 남한사회처럼 대학생들이 당의 감시와 통제의, 억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순간을 살아도 진심으로 사회와 국민을 생각하는 창조적인 사회활동, 양심적인 활동에 동참 할 수 있는 민주화된 사회, 인권침해가 없는 사회가 이뤄지기를 고대한다.

이주일 기자(평남 출신, 2000년 입국) lee@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