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워라

13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단호히 반대배격하자”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논설을 냈다. 200자 원고지 60매 분량으로 노동신문 1개 면을 가득 채웠으며, 명의는 ‘노동신문 편집국’이었다. 북한이 급하긴 급했던가 보다.

논설은 “미국식《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의 자주적 권리와 요구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가장 반동적인 정치이며 침략과 략탈, 간섭의 대명사”라면서 “미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미국식《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 인간이 죽고 나라와 민족이 망하며 인류가 파멸 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에 ‘예외 지역’이란 없다

논설은 우선 엉뚱한 착각에서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민주주의’를 받으라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 미국식 민주주의, 러시아식 민주주의, 아프리카식 민주주의가 따로 있단 말인가. 이는 노동신문 작가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그저 민주주의일 뿐이지, ‘어느 나라 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인민(民)이 주인(主)이 되는 것이다. 인민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인으로서의 기본적 권리,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인권을 근본 요체로 한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는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억울하게 죽지 않을 권리, 인간과 인간 사이를 구분 짓는 어떠한 경계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자유롭게 발언하고 그 발언의 결과에 의해 처벌받지 않을 권리 등을 말한다.

공개재판이 이루어지고, 재판 즉시 처형이 이루어지고, 그것도 수 발의 총알을 맞아 잔혹하게 살해되고, 시체조차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고, 출신성분에 의해 차별되어 적대계급의 자식은 대학 문턱 조차 밟지 못하고, 가족 한 명의 잘못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모두 수용소에 끌려가 평생을 구금되어야 하고, 체제에 비판적인 조직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체제 비판적인 발언을 흘러가듯 이야기한 사람조차 즉각 고발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나라. 그곳이 어디인가, 바로 북한 아니던가.

이러한 인권, 그것을 기본으로 한 민주주의는 미국식, 북한식이 따로 없으며, 미국이기 때문에 철저히 지켜져야 하고 북한이기 때문에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북한식 민주주의’ 해라

백 번 양보해 미국식 민주주의가 따로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나라들이 있다고 하자.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랐다는 나라의 인민들 가운데 지금의 북한 인민보다 더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된 나라가 있었던가. 그런 나라가 있다면 한번 적시해보라.

이번 논설에서 노동신문은 “미국식《민주주의》는 극소수 대독점 자본가들의 리익을 대변하는 반인민적인 《민주주의》”라고 했다. 쓸데 없이 논설의 문구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시간낭비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 하나만 따져 묻자.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해 절대 다수의 인민이 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체제가 있다면 그것이 나은가, 아니면 수령 한 명의 이익을 대변해 (혹은 ‘민주자주권을 수호한다’는 알량한 구호를 앞세워) 수백만 인민이 굶어 죽고 수천만 인민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체제가 더 나은가.

각설하고, 세상 누구도 북한더러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적 없으니 ‘북한식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라.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고, 공개처형을 중단하고, 탈북자에 대한 가혹한 보복을 중단하고, 식량배급을 투명하게 실시하고, 출신성분에 의한 차별과 연좌제를 폐지하고, 정치활동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것이 바로 ‘북한식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무슨 대단한 요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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