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륜범죄에 관한 국제형사재판권 [발제문 全文]

국제형사재판소와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의 처벌
반인륜범죄에 관한 국제형사재판권 ❙ 발제문
권 오 곤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


I. 글머리에


뉘른베르크 및 도쿄 재판 이후의 첫 국제재판소인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가 유엔 안보리에 의하여 1993년에 창설된 이래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1994), 동티모르 특별재판소(Special Panels for Serious Crimes in East Timor, 2000),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SCSL, 2002), 캄보디아 특별재판소(ECCC, 2006), 레바논 특별재판소(STL, 2009) 등 임시적인 국제형사재판소가 계속적으로 뒤를 이어 생겨났고, 2003년에는 상설 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발족되는 등, 바야흐로 국제 형사재판소의 확산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동안 국제법은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창설하는 실체적 규범으로서 주로 발전해왔고, 형사법은 실체법이나 절차법 양면에서 국가별로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전통적인 국제법에서는 주권절대의 원칙(principle of absolute sovereignty)을 강조하여 어느 한 국가에서 아무리 극악무도한 인종청소나 집단살해행위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최근에는 대부분의 국가가 몇 가지 공통된 도덕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이를 세계적으로 존중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국제사회의 정의와 양심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즉, 오늘날 이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 있어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을 허용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앞서 말한 다양한 국제형사재판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최근의 추세는 이른바 국제형사재판소의 확산 내지 “국제법의 형사화(criminalization of international law)” 현상을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국제형사재판의 연혁과 각종 국제재판소의 종류 및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한 후, 상설 국제형사재판소인 ICC가 관할하는 각종 범죄, 특히 인도에 반한 죄에 관하여 살펴보면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바와 같은 김정일 등 북한 당국자에 대하여 ICC에서 인도에 반한 죄로 처벌할 수 있는 지 여부에 관한 실체적, 절차적 문제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Ⅱ. 국제형사재판의 연혁


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형사재판의 초창기 시도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에 체결된 베르사이유 평화조약 제227 내지 230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 조약 제227조에 의하면, 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로 하여금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 및 일본 출신의 5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국제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였는데, 그에 대한 혐의는 “국제적 도덕과 조약의 신성함에 대한 최고도의 중대한 위반(supreme offence against international morality and the sanctity of treaties)”으로서, 구체적인 전쟁범죄나 형사책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인 재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조차도, 독일 황제가 네덜란드로 피신을 하고, 네덜란드가 동맹국들에게 그의 송환을 거부함에 따라 결국 재판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또한, 위 조약 제228 내지 230조에서는 전쟁의 법과 관습(laws and customs of war)을 위반한 전범들을 연합국의 군사재판소에서 재판하도록 하고, 독일은 이들을 연합국 측에 인도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독일이 연합국측의 825명의 전범 혐의자들에 대한 신병 인도 요구를 거절하고, 라이프치히 대법원(Reichsgericht)에서 재판하기를 요청함에 따라 위 조항도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라이프치히 재판에서는 연합국측이 제시한 45명 중 12명만이 재판을 받게 되었고, 그 중 6명만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형기도 2개월에서 최장 4년으로 매우 경미하였다. 위 재판은 전승국을 달래기 위한 의도에서 행해진 것일 뿐 진정으로 전범을 심판하려는 시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IMT)는 1945. 8. 8.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전승 4개국이 서명한 런던협정(London Agreement)의 부속서로 채택된 국제군사재판소헌장(Charter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에 의하여 창설된 것으로서, ‘평화에 반한 죄(crimes against peace)’와 전통적인 ‘전쟁범죄(war crimes)’ 및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관할하였다. 그 후 1946. 1. 19. 연합국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 형식으로 선포된 극동 군사재판소 헌장(Charter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에 의하여 창설된 도쿄 국제군사재판소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와 동일한 범죄를 관할하였다.


위와 같은 뉘른베르크 및 도쿄 재판에 대하여는, 승전국의 재판관만으로 이루어진 재판소에서 패전국 관계자만을 재판한, 이른바 ‘승자들의 정의(victors’ justice)’ 또는 ‘미국의 정의(American justice)’에 불과하였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위 재판들은 전쟁 범죄와 같은 국제적인 범죄에 관하여 최초로 다국적 재판기관이 설립되었다는 점, 새로운 범죄, 즉, 평화에 반한 죄 및 인도에 반한 죄가 처벌되었다는 점, 최초로 군 지휘자 및 고위 정치인 등이 재판을 받은 점, 판례를 통하여 책임에 관한 새로운 법적 기준을 마련하는데 기여한 점 등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Ⅲ. 국제형사재판소의 종류


1. 각종 임시(ad hoc) 국제형사재판소의 창설


가.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동서양 진영이 대치하고 핵위협이 상존하던 냉전시대 동안에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은 그 실현이 요원하였으나, 냉전이 종료한 이후에 비로소 새로운 기회가 도래하였는바, 뉘른베르크 및 도쿄 재판 이후에 처음으로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가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ICTY)이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발칸반도를 하나의 연방으로 묶어 강력하게 통치하던 티토(Tito)가 1981년 사망하고, 1990년 이후 연방이 해체되는 길을 겪으면서 인종 내지 종교세력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소위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등의 참상이 벌어지게 되자 국제사회는 이러한 범죄들을 처벌하지 않고 묵과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3년 유엔헌장 제7장에 기한 세계평화와 안전이 위협받을 때 이를 지키거나 복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는 비상 권한에 따라, 위와 같은 인종청소 등의 만행이 바로 세계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그러한 만행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하여 한시적인 국제재판소를 창설한 것이다. 이는 유엔에 의하여 창설된 재판소로서, 유엔총회에서 선발된 모든 나라의 재판관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승전국의 재판관만이 참여하였던 이전의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도쿄 재판의 경우에 비하여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나.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ICTR)는 후투(Hutu)족과 투치(Tutsi)족 사이의 인종분쟁이 있던 르완다 내에서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불과 4개월 사이에 거의 50만 명에 이르는 투치족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만행이 벌어지게 되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ICTY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엔헌장 제7장의 권한에 근거하여 위와 같은 만행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하여 1994년에 창설한 한시적인 국제형사재판소이다.


ICTR의 1심 법원은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위치하고 있으며, ICTR에서 이루어진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심은 ICTY항소심 재판부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ICTY와는 자매재판소라고 불린다. ICTR에서 르완다의 한 도시의 시장을 역임했던 장폴 아카예수(Jean-Paul Akayesu)에 대하여 집단살해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선고한 것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집단살해죄로 개인을 유죄 판결에 처한 최초의 경우이다. 발칸반도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르완다에서의 분쟁은 국내분쟁이었기 때문에, 그 관할범죄에 전쟁의 법과 관습에 위반한 범죄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 관할범죄들도 무력충돌과의 관련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정치적, 종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이유로 시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조직적인 공격(widespread or systematic attack against any civilian population)’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 기타 혼성(mixed) 또는 국제화된(internationalized) 재판소
1990년대 후반 및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급박하고 중대한 인권침해사태에 직면한 국가들은 국제법 및 국내법의 요소를 겸비한 혼성 내지 국제화된 재판소의 설립을 선호하게 되었는바,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재판소가 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재판소들 중 동티모르 특별재판부 및 캄보디아 특별재판부의 경우는 해당 국가의 사법부의 일부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반면,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와 레바논 특별재판소는 국제적인 합의에 따라 설립된 것으로 해당 국가의 사법부의 일부에 속하지 아니한다.


1) 동티모르 특별재판부(‘Special Panels for Serious Crimes’ in East Timor)
동티모르는 2002년 독립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중대 인권침해 사례들이 발생하였는바, 동티모르인들은 그러한 범죄들을 묵과할 수 없다는데 그 뜻을 같이 하였다. 이에 2000년, 유엔임시행정관(UN Transitional Administrator)은 딜리(Dili) 지방법원에 1999. 1. 1. 부터 10. 25. 사이에 발생한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그리고 살인, 성범죄 및 고문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는 특별재판부를 설치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규정을 발표하였다. 이 특별재판부는 딜리 지방법원의 일부로서 동티모르의 사법제도의 안에 존재하지만, 국제 재판관들과 동티모르 재판관들이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여 활동하였는데, 2005. 5. 그 활동을 마감하였다.


2)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Special Court of Sierra Leone, SCSL)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는 2002년 시에라리온 정부와 유엔의 협정에 따라, 시에라리온에서 있었던 10년간에 걸친 내전과정에서 저질러진 잔혹한 반인도적인 범죄를 처벌하기 위하여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Freetown)에 설립된 특별재판소로서, 1996. 11. 30. 이후에 저질러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및 시에라리온 국내법상의 일부 범죄를 관할하고 있다. 다만, 위 재판소는 집단살해죄에 대한 관할권은 가지고 있지 않다. 유엔과 시에라리온 정부에 의하여 공동으로 운영되는 혼성형 재판소인 점에 특색이 있으며, 재판부의 구성도 시에라리온 정부 및 유엔으로부터 각 임명받은 법관이 혼재하고 있다. 현재 라이베리아의 전 대통령이었던 찰스 테일러에 대한 재판 등 일부 재판은 헤이그 소재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건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3) 캄보디아 특별재판부(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s of Cambodia, ECCC) 캄보디아 특별재판부는 킬링필드로 알려진 캄보디아의 대학살을 처벌하기 위하여 설립된 캄보디아 법원 내부의 특별재판부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1997년 이래로 유엔과 크메르루주의 지도자들을 어떻게 재판할 것인지에 대하여 협상을 계속하였는바, 마침내 2003. 6.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의 협정이 체결되고, 2004. 10. 캄보디아 의회가 위 협정을 비준 하는데 동의하였다. 위 협정에 따라 캄보디아 특별재판부는 캄보디아 사법제도 내에 존재하면서, 1975. 4. 17. 부터 1979. 1. 6. 사이에 범한 집단 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1949년 제네바 협정상의 중대범죄 및 캄보디아법에 따른 일부 범죄에 대하여 관할권을 갖게 되었다. 재판부의 구성도 캄보디아 법관 및 외국 법관이 혼재되어 있다.


4) 레바논 특별재판소(Special Tribunal for Lebanon, STL)
레바논에서는 2005. 2. 14. 레바논 총리인 라피크 하리리(Rafiq Hariri) 외 22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바, 레바논 정부는 유엔에 위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국제재판소의 설립을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07. 5. 레바논 특별재판소를 설립하기로 결의하였다. 위 특별재판소는 2005. 2. 14. 이후로부터 레바논에서 발생한 테러범죄에 관하여 관할권이 있으며, 테러에 관한 레바논 형법만이 적용된다. 특별재판소는 현재 헤이그 인근의 라이센담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든 기관의 구성은 레바논국민과 외국인이 혼재되어 있다.


5) 기타
그밖에도 보스니아 및 코소보의 국내 법원내 특별재판부에는 국제재판관이 배치되어 일정한 형사재판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2.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창설
1990년대 이후 ICTY와 ICTR의 설립 및 다양한 혼성재판소의 도입은 영구적인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을 위한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영구적인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은 뉘른베르크 및 도쿄 재판 이후 검토되었으나 냉전시대 동안에는 이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마침내 1998. 7. 17.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전권위원들의 유엔외교회의’(United Nations Diplomatic Conference of Plenipotentiaries on the Establishment of an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서 120개국의 서명으로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이하 ‘ICC’라고 줄여 쓴다)를 창설하는 로마규정(Rome Statute)이 채택되었고, 이는 60개국 이상이 비준서를 기탁하면 발효하기로 하는 제129조의 규정에 따라 2002년 7월 1일자로 발효하게 되었다.


 그 이후 2003. 2. 당사국 총회에서 첫 18명의 재판관을 선출하고, 이들이 2003. 3. 11. 취임선서를 함으로써 재판소가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2009. 7. 21. 기준으로 비준국은 110개국이며, 그 중 30개국은 아프리카 지역, 14개국은 아시아 지역, 17개국은 동유럽 지역, 24개국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25개국은 서유럽 및 기타 지역이다. 우리나라는 2002. 11. 13. 83번째 국가로 비준서를 기탁하였다.


3. 각종 국제형사재판소의 특징


가. 설립의 근거 및 존속기간
ICC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와 같은 항구적인 재판소인 점에서 앞서 언급한 다른 임시적인(ad hoc) 국제형사재판소와 차이가 있다. 또한, 설립의 근거에 있어서도 당초 그 창설과정에서 UN이 주도하기는 하였으나, 당사국들의 조약에 근거하여 설립된 것이고, 그 자체가 독립적인 국제기구로서 독자적인 당사국 총회(Assembly of State Parties)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창설된 ICTY나 ICTR과는 다르다.


나. 개인의 형사책임 및 강제관할권
위에서 살핀 국제형사재판소들은 국제인도법 등을 위반한 개인을 그 의사 여부와 관계 없이 강제적으로 처벌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다룰 뿐이고 강제관할권이 없는 ICJ와는 다르다. ICC의 로마규정 제25조에서도 개인의 형사책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와 같은 개인의 형사책임이 국제법상 국가책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다. 우월적 지위(Primacy)/보충적 관할권(Complementarity)
ICTY 및 ICTR은 해당범죄를 재판하는 모든 국내 사법기관과 동시적 관할권(concurrent jurisdiction)을 갖는 동시에, 당해 국가의 사법권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SCSL 및 STL은 각 시에라리온의 법원 및 레바논의 법원에 대하여만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 ICC는 이들과 달리 보충성의 원칙(principle of complementarity)에 따라 각 국가의 형사관할권에 대하여 보충적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 점이 큰 특색이다. 즉, ICC는 각국의 국내형사법 체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재판소’ 내지 ‘최후에 의지하는 재판소’로서 각국이 국내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아니할 경우에 범죄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라. 관할 범죄
ICC 이외의 국제형사재판소들은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으로 제한된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ICC는 로마규정의 발효일인 2002. 7. 1. 이후에 모든 당사국에서 발생한 로마규정에 규정된 국제인도법에 위반된 범죄에 관하여 관할권을 가진다. 다만, 비당사국에서 발생한 범죄에 관하여도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바, 이는 이하에서 후술한다. 임시적인 국제형사재판소들의 관할범죄도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그 설립배경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Ⅳ. ICC의 관할권 및 인도에 반한 죄의 처벌


1. ICC의 관할 범죄 개관
ICC는 집단살해죄(로마규정 제6조), 인도에 반한 죄(로마규정 제7조), 전쟁범죄(로마규정 제 8조) 및 침략범죄(crimes of aggression)에 관하여 관할권이 있다. 침략범죄에 관하여는 아직 로마규정에서 구체적 내용을 정하지 아니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정의 및 구성요건이 채택되면 관할권을 행사할 것이다.


2.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


가. 연혁
인도에 반한 죄는, 일반적으로, 민간인 주민(civilian population)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widespread or systematic attack)의 일부로서 행해진 범죄로서, 살해, 노예화, 감금, 고문, 성폭행, 박해, 기타 이에 유사한 비인도적(inhumane)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인도에 반한 죄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음으로 인정된 것으로, 전통적인 국제인도법(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에 위반한 전쟁범죄(war crimes)와는 구별된다. 원래 인도(humanity)의 문제는 전시에 한하여 전투력을 잃은 군인, 포로 등과 민간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으로, 본국 정부에 의한 탄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인권(human rights)의 문제와 구별된다. 그렇지만 이에 반하여 인도에 반한 죄는 국제 인권규약 (international human rights instruments)에 규정된 인권법(human rights law)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중복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하는 개개의 기본행위(underlying act)는 이미 국내법에 의하여 범죄로 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민간인 주민에 대한 공격의 일부로서 저질러진 이러한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법리(cos jugens)로서, 이미 국제관습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의 내용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종전에 명문의 처벌 규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국제재판소가 인도에 반한 죄에 대한 형사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거나 소급입법에 의한 처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내용이 국제관습법이 되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행이 전 국가에 널리 퍼져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국가 실무와 관련하여 “opinio juris sive necessitatis” 또는 간단히 줄여서 “opinio juris”의 원칙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를 직역하면 “법치주의(rule of law)에 의하여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라는 의미로서, 어떤 국가의 조치가 국제관습법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가 그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 단순한 도덕적 의무에서가 아니라 그러한 조치가 국제법에 의하여 요구된다는 확신에서 취해진 것임을 요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국제관습법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하여, “해당 행위가 확립된 관행(settled practice)이 되어야만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그를 요구하는 실재적인 법률(essence of a rule)에 의하여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거나 그러한 방법으로 행해진다는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시한 바 있고, 이러한 원칙들은 ICTY 결정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나. 구성요건
인도에 반한 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이하에서 살필 구체적 행위가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as a part of a widespread or systematic attack), 그 공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with knowledge of the attack) 범하여 질 것을 요한다.


먼저, 로마규정의 범죄구성요건(Elements of Crimes)53)에 의하면, 로마규정 제7조에 규정된 인도에 반한 죄는, 그 범죄가 국제사회 전체에서 중요시하는 가장 중대한 범죄 중 하나인 점, 개인의 형사책임이 뒤따르는 점, 주된 법체계에서 인정되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국제법 하에서 용인될 수 없는 행위일 것을 요구하는 점을 고려하여, 로마규정 제 22조에 따라 엄격히 해석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 광범위한 또는 체계적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의 일부로서
어떠한 사건이 고립되어 또는 산발적으로 발생하였다면, 이는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할 수 없다. 즉, 위 요건을 충족하려면, 어떠한 범죄가 유사한 범죄가 반복되던 중 발생한 것이거나, 그러한 일련의 범죄의 일부로서 발생할 것(광범위한 실행), 또는 국가 또는조직에 의하여 추진 또는 고무된 정책 내지 계획의 징후일 것(계획적인 실행)을 요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이하에서 살필 구체적 행위들 중 동일한 행위가 대량으로 행해질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의 행위도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맥락에서 행한 것이라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피고인의 행위는 반드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의 일부로서 행하여진 것이어야 한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 전후에 범하여진 피고인의 행위도 민간인에 대한 공격과 사이에 충분한 연결고리(sufficient nexus)가 있다면 위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로마규정 제7조 제2항(a)은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라 함은 민간인에 대하여 제7조에 규정된 행위를 다중적으로 행하는 것을 수반하고, 그러한 공격을 행하려는 국가나 조직의 정책에 따라 또는 그 정책을 더욱 진척시키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범죄구성요건에서는 ‘그러한 공격을 행하려는 정책’은 국가나 조직이 적극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고취시키고 조장할 것을 요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 그러한 정책이 위와 같은 공격을 조장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겨냥된 고의적인 부작위에 의하여 실행될 수도 있다. 한편, 국가 또는 조직의 행동의 결여만으로 그러한 정책의 존재를 추론할 수는 없다.


2) 무력충돌과의 관련성 요부
로마규정상의 인도에 반한 죄는 뉘른베르크 재판소나 ICTY의 경우와 달리, 그 본래의 정의에 부합하게 반드시 전쟁 또는 무력충돌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3) 그 공격에 대한 인식
피고인은 아래의 각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고의 이외에도, 자신의 행위가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조직적인 공격의 일부임을 알거나 의도하였어야 한다.


다. 구체적 행위
로마규정 제7조 제1항은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할 수 있는 구체적 행위로 (a)살해, (b)절멸, (c) 노예화, (d) 주민의 추방 또는 강제적 이동, (e) 국제법의 근본규칙을 위반한 구금 또는 기타 신체적 자유의 중대한 박탈, (f)고문, (g)강간, 성적 노예화, 강제매춘, 강제임신, 강제불임, 또는 다른 형태의 이에 상당하는 성폭력, (h) 이 항에 규정된 어떠한 행위 또는 재판소 관할권 내의 어떠한 범죄와 관련하여, 정치적, 인종적, 국가적, 종족적, 문화적, 종교적 사유, 제3항에 정의된 성, 또는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다른 사유에 근거하여, 동일시되는 집단이나 집합체에 대해 가해진박해, (i) 사람들의 강제실종, (j) 인종격리죄, (k) 그 밖의 의도적으로 신체 또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건강에 대해 중대한 고통 또는 중대한 손상을 초래하는 유사한 성격의 다른 비인도적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범죄구성요건에서는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할 수 있는 각 구체적인 행위별로 위에서 살핀 일반요건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개별적인 구성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a) 살해(murder) : 가해자가 한 사람 또는 다수의 사람을 죽였다.
(b) 절멸(extermination) :
  ⅰ) 가해자가 주민 일부의 말살을 초래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생활조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을 포함한 방법으로(식량과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박탈하는 것을 포함한다),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을 죽였다(살해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ⅱ) 가해자의 행위는 민간인 주민의 구성원들에 대한 대량살해를 구성하거나 그 일부로서 이루어졌다.
(c) 노예화(enslavement): 가해자가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에 대하여 소유권에 부속된 어떠한 또는 모든 권한(가령, 매도, 대여, 물물교환, 또는 그와 유사한 자유의 박탈을 부과하는 것)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자유의 박탈은 일정한 경우에, 강제노역(forced labour)이나 1956년 노예제, 노예무역과 노예제에 유사한 제도와 관습폐지에 관한 보충협약에 정의된 노예적 지위에 처하게 되는 것도 포함한다.
(d) 주민의 추방 및 강제적 이동(deportation and forcible transfer of population):
  ⅰ) 가해자가 국제적으로 허용되는 근거 없이 추방 또는 강제적 행위에 의하여 한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을 다른 국가 또는 장소로 강제적으로 퇴거시켰다.
  ⅱ) 위 사람 또는 사람들은 추방 또는 이동된 지역에서 정당하게 거주하고 있었으며, 가해자는 그 거주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사실관계에 관하여 인식하고 있었다.
(e) 국제법의 근본규칙을 위반한 구금 또는 기타 신체적 자유의 중대한 박탈(imprisonment or other severe deprivation of physical liberty in violation of fundamental rules of international law) : 주로 적법절차에 위반한 자의적인 구금이 문제가 된다.
  ⅰ) 가해자가 한 명 또는 그 이상 의 사람을 구금하였거나, 그 신체적 자유를 중대하게 박탈하였다.
  ⅱ) 그 행위가 국제법의 근본규칙을 위반할 정도로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
  ⅲ) 가해자는 그 행위의 중대성을 확립하는 사실관계에 관하여 인식하고 있었다.
(f) 고문(torture) : 고문이 성립하기 위하여 가령, 어떠한 정보나 자백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고통을 가했다는 등의 목적 요건(purpose element)은 필요하지 아니하다.
  ⅰ) 가해자가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에게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괴로움 또는 고통을 가하였다.
  ⅱ) 위 사람은 가해자의 구금 하에 있거나 통제 하에 있었다.
  ⅲ) 그러한 괴로움 또는 고통은 오로지 합법적 제재로부터 발생하는, 그리고 이에 내재하거나 또는 부수하는 것이 아니다.
(g) 강간 등 성범죄(rape, sexual slavery, enforced prostitution, forced pregnancy, enforced sterilization, or any other form of sexual violence of comparable gravity) : 범죄구성요건에서는 강간, 성적 노예화, 강제매춘, 강제임신, 강제불임, 또는 다른 형태의 이에 상당하는 성폭력의 각각의 구성요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 중 강제불임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필요하다:
  ⅰ) 가해자가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의 생물학적 생식능력을 박탈하여야 한다.
  ⅱ) 가해자의 행동은 위 사람에 대한 의학 또는 치료의 목적에 의해 정당화되거나, 그 사람의 진정한 동의에 의해 실행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기타 이에 상당하는 다른 형태의 성폭력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필요하다:
  ⅰ) 가해자가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에 대하여 성적인 행위(act of a sexual nature)를 범하였거나, 그러한 사람 또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력, 위력에 대한 협박, 또는 강요에 의하여 성적인 행위를 하도록 하였고, 이는 그 사람, 사람들 또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에 대한 공포, 강박, 구금, 심리적 압박 또는 권한의 남용에 의한 것이거나, 강압적인 환경이나, 그 사람 또는 사람들이 진정한 동의를 할 수 없는 무능력상태를 이용한 것이어야 한다.
  ⅱ) 가해자의 행위는 로마규정 제7조 제1항(g)에 해당하는 다른 범죄에 상응할 만큼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
  ⅲ) 가해자가 그 행위의 중대성을 확립하는 사실관계에 관하여 인식하고 있었다.
(h) 박해(persecution against any identifiable group or collectively on political, racial, national, ethnic, cultural, religious, gender as defined in paragraph 3, or other grounds that are universally recognized as impermissible under international law, in connection with any act referred to in this paragraph or any crime within the jurisdiction of the Court)
  ⅰ) 가해자가 국제법에 반하여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중대하게 박탈하였다.
  ⅱ) 가해자는 그 사람 또는 사람들을 어느 집단 또는 집합체의 동일성을 이유로, 또는 그 그룹 또는 집단을 그와 같은 이유로 표적으로 삼았다.
  ⅲ) 그와 같이 표적을 삼게 된 근거가 정치적, 인종적, 국가적, 종족적, 문화적, 종교적, 성적, 또는 기타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사유에 기인하여야 한다.
  ⅳ) 가해자의 행위는 로마규정 제7조 제1항에 규정된 다른 행위나 ICC의 관할범죄인 행위와 관련하여 가해져야 한다.
(i)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 of persons)
  ⅰ) (a) 가해자는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을 체포, 구금68) 또는 납치하였거나, (b) 체포, 구금 또는 납치를 인정하기를 거절하였거나, 또는 그 사람 또는 사람들의 행방 이나 운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절하였다.
  ⅱ) (a) 그러한 체포, 구금 또는 납치에 뒤따라 또는 이에 수반하여, 자유의 박탈을 인정하기를 거절하거나, 그 사람 또는 사람들에 대한 행방이나 운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절하거나, (b) 그러한 거절에 앞서 또는 이에 수반하여 자유가 박탈되었어야 한다.
  ⅲ) 가해자는 다음을 인식하고 있었어야 한다: (a) 그러한 체포, 구금, 또는 납치에 뒤따라 통상 자유의 박탈을 인정하기를 거절하거나, 그러한 사람 또는 사람들에 대한 행방이나 운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거절할 것이라는 점 또는 (b) 그러한 거절에 앞서 또는 이에 수반하여 자유의 박탈이 있었다는 점
  ⅳ) 그러한 체포, 구금 또는 납치 또는 그와 같이 자유의 박탈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또는 그 사람 또는 사람들에 대한 행방 또는 운명에 대한 정보 제공을 거절하는 것이 국가 또는 정치조직에 의하여 또는 이들의 허가, 지원 또는 묵인 하에 실행되었다.
  ⅴ) 가해자가 그 사람 또는 사람들을 법의 보호로부터 장기간 배제하고자 의도하였다.
(j) 인종격리(the crimes of apartheid) : 남아프리카에 공화국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인종격리 행위를 말한다.
(k) 다른 비인도적 행위(other inhumane acts of a similar character intentionally causing great suffering or serious injury to body or to mental or physical health)
  ⅰ) 가해자가 기타 비인도적인 행위를 통하여 신체 또는 정신적 내지 신체적 건강에 중대한 고통 또는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였다.
  ⅱ) 그러한 행위는 로마규정 제7조 제1항에 규정된 다른 행위와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ⅲ) 가해자는 그 행위의 성격을 규정하는 사실관계에 관하여 인식하고 있다: 로마규정 제7조는 이미 다양한 범죄유형을 규정하고 있는바, 위 항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로는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을 초래하는 행위, 평화시에 실행되는 인체에 대한 생물학, 의학 또는 과학 실험 정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3. 사건의 재판적격성(admissibility of a case)
앞에서 살핀 보충성의 원칙은 로마규정의 절차법에 잘 반영되어 있는바, 어떠한 사건이 ICC에서 재판하기에 적합한 것인가를 규정하는 다음의 내용은 국가주권절대의 원칙과 당사국의 거짓 관할권행사에 대응한 국제형사재판소의 행위의 불가피성을 공정하고도 효과적으로 조화시켜주는 방안이라 평가된다.


ICC는 어떠한 사건이 ICC의 관할범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a)당사국이 그 사건을 진지하게 소추할 의사나 능력이 있어서, 그 사건에 관하여 관할권을 가진 당사국이 이를 수사하고 소추하고 있는 경우, (b) 관할권이 있는 국가가 사건을 수사한 결과 소추하지 아니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정이 그 국가의 소추의지나 소추능력의 결여의 결과가 아닌 경우, (c) 문제의 개인이 개별적 행위에 대하여 이미 재판을 받은 경우73) 또는 (d) 사건이 소의 제기를 정당화 할 만큼 충분한 무게 중심이 없는 경우에는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당사국이 소추의사가 없는 경우(unwillingness)라 함은 (a) 당사국이 문제의 개인을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로부터 방패막이를 해주기 위하여 국내절차에 착수하거나, (b) 문제의 개인을 재판에 회부하려는 의도에 어긋나게 국내절차를 부당하게 지연시키는 경우, (c) 국내절차가 독립적으로 불편부당하게 진행되지 아니할 경우 등을 의미한다. 당사국이 소추할 능력이 없는 경우(inability)라 함은 국내사법제도가 완전히 또는 거의 무너져서 또는 국내 사법제도를 이용할 수 없어서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거나 피고인을 확보하거나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를 가리킨다.


국내에서 공포한 사면령이 국제형사재판소가 소추하는데 있어 장애요소가 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로마규정은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국내사면은 국내법령위반에 대하여만 유효하다고 이해되므로 보다 심각한 전쟁범죄 등은 그러한 국내사면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보충성의 원칙은 당사국뿐만 아니라 비당사국에 있어서도 적용되는바, 가령 비당사국(A)의 국민이 당사국(B)의 영토 내에서 국제적인 범죄를 저지른 후, 제3의 비당사국(C)으로 도주한 경우, 만일 C국가에서 재판권을 행사한다면, ICC는 C국가가 공정하고 적정한 재판을 할 의사와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보충성의 원칙은 아래에서 자세히 살필 바와 같이, ICC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3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적용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4. 관할권의 행사
ICC가 관할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첫째로,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ICC가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태(situation)을 회부하는 방법 {로마규정 제13조 (a)}, 둘째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유엔 헌장 제7장의 권한에 의하여 사태를 회부받는 방법{로마규정 제13조 (b)}, 셋째로, ICC의 소추관이 자신의 판단으로(proprio motu) 수사를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로마규정 제13조 (c)}.


그런데, 위 세 가지 경우 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사태를 회부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로마규정 제12조 제2항에서 규정하는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즉, 해당 범죄가 발생한 국가가 로마규정의 당사국 또는 해당 범죄에 관하여 ICC의 재판권 행사에 동의한 비당사국이거나, 피고인이 당사국 또는 해당 범죄에 관하여 ICC의 재판권 행사에 동의한 비당사국의 국민이어야 한다.


참고로, 콩고민주공화국(DRC), 우간다, 및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각 자국에서 발생한 사태를 스스로 ICC에 회부하였으며(self-referral), 수단의 사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하여 ICC에 회부되었다.


V. ICC에서 김정일을 인도에 반한 죄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
1. 실체적 측면


가. 시적 관할권
먼저, ICC가 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하여는 해당 범죄가 로마규정 발효 이후인 2002. 7. 1. 이후에 발생하여야 하는바, 북한의 사태 중 위 시기 이후에 발생한 범죄들만이 문제된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본다면, 대한민국에 대한 발효일인 2002. 11. 13. 이후에 발생한 범죄들만이 문제된다고 할 것이다.


나. 인도에 반한 죄 해당여부
1) 일반요건
로마규정은 인도에 반한 죄가 성립하는데 있어 무력충돌과의 관련성을 요구하지 아니하므로, 북한의 사태가 전쟁시가 아닌 평화시에 발생하였다는 점은 인도에 반한 죄의 요건 충족과 관련하여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에서 일어난 범죄들이 “광범위한 또는 체계적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의 일부로서” 범해진 것인지 여부라 할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된 것으로 거론되는 북한 주민들의 수(약 200,000명), 수용되게 된 사유(탈북과 한국행 시도, 북한 체제에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동, 위와 같은 혐의를 받은 사람의 가족이라는 이유 등), 수용소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의 실태 등을 볼 때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또는 체계적인 공격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그러한 공격의 일부로서” 저질러진 것인지는 해당 범죄별로 개별적인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2) 구체적 행위
구체적으로 어떠한 범죄행위들이 로마규정상의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할 수 있는지는 구체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이러한 구체적 범죄행위가 저질러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몇 가지 거론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만 간단히 살펴본다.
(ⅰ)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 자행되는 공개처형 등은 인도에 반한 죄의 구체적 행위로서 살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ⅱ) 그러나, 불충분한 식량 공급 및 의약품 공급 등에 관하여는 이러한 행위가 ‘절멸’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김정일 등이 북한 주민의 일부의 말살을 초래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식량 및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박탈하는 등의 방법으로 북한 주민을 죽였으며, 이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대량살해를 구성하거나 그 일부로서 이루어진 것임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정치범 수용소 내의 강제노동 등은 인도에 반한 죄의 노예화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적법한 구금 중에 이루어지는 노동은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으나, 비록 정치범이 북한 형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구금된 것이라 해도, 구금과정에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거나 기타 여하한 적법절차가 준수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적법한 구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연좌제에 따라 구금된 무고한 가족 등에 대한 노동은 강제노동을 충분히 구성한다고 볼 것이다. 또한, 위와 같은 자의적인 구금은 국제법의 근본규칙을 위반한 구금 또는 기타 신체적 자유의 중대한 박탈에 해당할 수 있다할 것이다. 일부 정치범 수용소는 종신 수용을 하는 곳도 있는바, 그 자유의 박탈은 상당히 중대한 것으로 보인다.
(ⅳ) 추방 및 강제적 이동의 구별기준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은바, 북한 주민을 북한 영토 밖으로 강제적으로 퇴거시킨 사실이 없는 이상 추방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거주하던 지역에서 주민들을 강제로 정치범 수용소로 이동시킨 것은 강제적 이주에 해당할 여지는 있을 수 있다.
(ⅴ) 로마규정은 고문이 성립하기 위하여 어떠한 목적 요건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바, 정치범 수용소에서 구금 중에 이루어지는 폭행 등 각종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고문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ⅵ)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 허용되지 않은 임신을 하거나, 탈북한 여성이 중국인과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에 이를 강제로 낙태시키는 사례가 있다고 하는바, 이것이 강제불임에 해당할 것인지 문제되나, 로마규정에서 말하는 강제불임이란 생물학적 생식능력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이에 해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태어난 영아를 살해하는 경우는 살인으로, 임신한 부녀를 폭행 등의 방법으로 낙태시키는 경우는 기타 비인도적인 행위를 통하여 신체 또는 정신적 내지 신체적 건강에 중대한 고통 또는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행위로 의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탈북한 여성들이 송환되었을 때 흔히 받는 알몸수색이 ‘기타 다른 형태의 이에 상당하는 성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행위가 ‘성적인 행위(sexual nature)’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ⅶ) 북한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하고 이들에 대하여 위에서 살핀 바와 일련의 범죄행위를 하는 것은 박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박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정치적 이유로 위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ⅷ) 불충분한 식량 공급, 열악한 의료 및 위생환경 등이 다른 비인도적 행위에 해당하는지 문제될 수 있으나, 이에 해당하려면, 범죄의 본질 및 중대성에 있어서 로마규정 제7조 제1항에 규정된 다른 행위들에 상응할 정도에 해당해야 할 것이다.
(ⅸ) 북한이 대한민국 또는 일본 등에서 사람을 납치하여 북한으로 압송한 행위는, 그것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제법의 근본 규칙을 위반한 구금 또는 신체적 자유의 중대한 박탈 내지는 강제적 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북한으로의 압송 후의 행위에 따라서 노예화, 고문, 살해 등의 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 이들 범죄는 그 범죄지가 로마규정 비준국인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라는 점에서 ICC가 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충족하기는 하나, 그 발생일이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로마규정 비준일 이전이라면 ICC의 관할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납치” 범죄는 구금 내지 그 송환 거부가 유지되는 한 계속되는 범죄라고 볼 수 있다면, 위 비준일 이후에도 북한이 납치된 피해자의 송환을 그 의사에 반하여 거부하고 있다면, ICC의 시적 관할권도 충족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법 협회(Institute of International Law)가 1975년의 비스바덴에서의 총회에서 다자조약의 “효력발생(entry into force)”과 관련하여, “실제 상황에 관계된 규정은 그 상황이 기왕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존속하는 한 이에 적용된다([a]ny rule which relates to an actual situation shall apply to situations existing while the rule is in force, even if these situations have been created previously)” 고 한 규정이나 계속적 결과가 있는 법률행위에 관계되는 규정은 그 행위가 그 규정의 효력발생일 이전에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규정의 효력이 있는 동안에 발생한 결과에 대하여도 적용된다 ([a]ny rule which relates tothe continuous effects of a legal act shall apply to effects produced while the rule is in force, even if the act has been performed prior to the entry into force of the rule)고 한 규정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다. 북한의 국내 법제와의 관계
일정한 행위가 ICC 로마규정 상의 인도에 반한 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이상, 그러한 행위가 북한 법제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고 범죄의 성립에는 아무런지장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국제법위원회(International Law Commission, ILC)의 국가책임에 관한 규정이 참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동 규정 제3조는 “일정한 국가행위가 국제법 위반이 되는 지 여부는 국제법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그 결정에 있어서는 동일한 행위에 대하여 국내법에 의하여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더라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The characterization of an act of a State as internationally wrongful is governed by international law. Such characterization is not affected by the characterization of the same act as lawful by internal law.)”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루는 ICC에도 준용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ICC 로마규정은 공적 지위에 근거한 어떠한 차별 없이 모든 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므로, 특정인이 국가 원수 또는 정부 수반, 정부 또는 의회의 구성원, 선출된 대표자 또는 정부 공무원으로서의 공적 지위를 가진다고 하더라고 로마규정에 의한 형사책임이 면제되지 아니하고, 국내법 또는 국제법에 따른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ICC의 관할권 행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라. 개인적 형사책임 (Individual Criminal Responsibility)
국제형사재판소는 ICJ와는 달리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루고 있음은 전술하였다. 개인이 형사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것은 단독 내지 공동 범행(commission), 교사, 유인, 방조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고,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일원이 되어 그 범죄 행위 내지 그 목적에 기여하는 형태로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그밖에 상급자가 자신의 실효적인 권위와 통제하에 있는 하급자가 범죄를 범하고 있거나 또는 범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또는 이를 명백히 보여주는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그 범행을 방지, 억제하거나, 그 문제를 수사 및 기소의 목적으로 권한 있는 당국에 회부하기 위한 자신의 권한 내의 모든 필요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른바 상급자의 책임(superior responsibility)의 법리에 따라 당해 범죄에 대하여 하급자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 결과로서의 형사책임을 진다.


2. 절차적 측면
가. 관할권의 행사


1)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사태 회부
ICC가 북한의 사태에 관하여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먼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위 사태를 회부받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로마규정 제12조 제2항에서 규정하는 전제 조건이 요구되지 아니하므로 일견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실질적인 문제에 관하여는 전체 15표 중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연방, 중국) 전부의 동의를 포함한 9표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바, 중국 및 러시아 연방이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한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 당사국 회부 또는 ICC의 자체 수사
다음으로,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북한의 사태를 ICC에 회부하거나, ICC소추관이 자신의 판단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지난 해 12월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가 ICC에 북한에서 자행되는 반인도범죄에 관한 조사요청을 한 것은 후자의 방법을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사태를 회부하거나, ICC가 스스로 수사를 개시하기 위하여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은 로마규정 제12조 제2항 소정의 전제 조건즉, 해당 범죄가 국가가 당사국 또는 해당 범죄에 관하여 ICC의 재판권 행사에 동의한 비당사국의 영토에서 발생하였거나, 피고인이 당사국 또는 해당 범죄에 관하여 ICC의 재판권 행사에 동의한 비당사국의 국민일 것 이 충족되어야 하는바, 북한의 사태가 이에 해당하는지 문제된다.


먼저,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의 입장에 따라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북한지역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칠 뿐이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부딪치는 어떠한 국가단체나 주권을 법리상 인정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본다면, 북한의 사태는 로마규정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저질러진 범죄이고, 장래의 피고인이 될 수 있는 김정일 및 북한 당국의 지도자 등도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국민이므로 위 전제 조건을 구비하게 된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 국제법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논리인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대한민국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점 등을 고려하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과 별도의 국가로서의 지위(statehood)를 인정받고 있다 할 것이다. 북한은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아니며, 나아가 북한의 사태에 관하여 ICC가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에 관하여도 동의한 사실이 없는바, 그렇다면, 북한의 사태는 범죄의 발생지 및 피고인인 김정일 등이 속한 국가가 로마규정의 비당사국으로서 위 범죄에 관하여 ICC의 재판권 행사에 동의한 바 없는 국가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위 전제 조건을 구비하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은 난관을 비켜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에 납치된 대한민국 및 일본 등지의 피해자들에 대한 범죄를 연결고리로 하여 위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즉, 위와 같은 강제실종 범죄가 발생한 곳이 대한민국 내지 일본 등 가입국의 영토 내이므로, 일응 전제 요건이 충족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데, 이에 관하여는 ICC의 시적 관할 범위가 문제가 됨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나. 사건의 재판적격성
보충성의 원칙은 ICC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3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적용됨은 앞서 살핀 바와 같은바,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사태가 재판적격성을 갖는지 문제된다.


북한의 사태에 관하여 관할권을 가진 국가로는 북한과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있다. 앞에서 본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 같이, 대한민국 법원이 북한에서 발생한 범죄에 관하여 관할권이 있다고 본다면,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이러한 범죄들에 대하여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하는데 있어 법적으로는 하등의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현실적으로 처해진 분단 상황으로 인하여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할 것인바, 이를 당사국이 소추의사가 없거나 소추능력이 결여되어 수사나 소추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경우 사법제도가 존재하기는 하나, 독재의 무기로서 사용되는 측면이 있고, 재판소의 구성도 판사 1인과 인민참심원 2명으로 구성되어 사실상 당의 정책에 따른 재판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등 사법부의 독립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사실상 김정일 등에 대하여 앞서 논의한 범죄로 재판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국내 사법절차에 인권 기준 위반 등 중대한 절차의 위배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국가가 해당 범죄를 진지하게 수사 또는 소추할 의사가 없는 것이 증명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수의 견해인바, 북한에 대하여는 해당 국가의 소추의사나 소추능력이 결여되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 할 것이다.


Ⅵ. 맺으면서
김정일 등 북한 지도자에 대한 ICC의 기소를 실현하기 위하여 어떠한 준비작업이 필요할 것인가?


먼저,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사실관계의 조사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ICC의 관할범죄의 구성요건에 부합하는 기초사실을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로마규정 및 범죄구성요건에서는 각 범죄행위별로 세부적인 구성요건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ICC 및 여러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국제관습법상 인정되는 범죄들의 구성요건의 해석 및 적용과 관련한 다양한 판례가 축적되어 있는바, 이를 면밀히 검토하여, 각 구성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실관계를 조사하여야 할 것이다. 가령, 김정일 등 북한 지도자는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는데 반하여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는 로마규정상의 어떠한 범죄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


다음으로, ICC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루기 때문에, 설령 북한에서 각종 인도에 반하는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을 김정일 등 북한 지도자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서, 김정일 등이 북한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만으로 당연히 김정일이 이러한 각종 범죄행위가 발생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정일 등 북한 지도자들이 북한에서 발생한 각종 범죄행위에 관하여 형사책임을 지기 위하여는 그들이 이러한 범죄행위를 인식하고 있었고, 나아가 이를 계획하거나 지시하였다는 등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북한 내부의 지휘 및 보고체계, 의사결정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김정일에 대한 주의 환기뿐만 아니라 향후 재판에서의 고의를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정일 본인에 대한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인권침해 및 인도에 반한 죄의 발생 사실을 고지하면서 그 처벌 및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NGO 등에서 구체적 증거를 담은 실태조사 보고서 등을 첨부하여 김정일 개인에게 송부한다든지, 국가 지도자 간의 회담시에 개별적으로 북한의 반인도적 상황에 대하여 경고를 하는 등의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ICC의 재판 또는 임시 재판소에 의한 국제형사재판에 이르기까지는 국제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바, 국제회의나 인권기구 등을 통하여 북한의 실태를 널리 알려 국제사회의 개입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ICTY가 설립되기 이전에도 유엔에서 수차례 비난 결의를 채택하는 등 유고 전범의 처벌에 관하여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국제형사재판과 관련하여 마치 닭과 달걀의 문제와도 같이, 정의가 우선이냐 평화가 우선이냐 하는 쉽게 풀리지 않는 논쟁이 있는 점을 감안해서, 과연 김정일 등을 ICC에서 기소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데 있어 현명한 조치인가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는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평화와 정의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라거나 양자택일을 하여야 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정의가 뒷받침되지 아니한 평화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최선의 방향을 찾기 위한 신중한 검토와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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