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공동체통일방안’ 20주년 회고와 평가

화해.협력의 기조속에 통일로 가는 중간단계로서 남북연합을 상정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11일로 발표 20주년을 맞는 가운데 1989년 당시 이 통일방안 마련에 직.간접 참여한 인사들이 10일 오후 한 자리에 모여 그 의의와 성과를 회고하고 평가한다.

당시 통일원장관으로 주도적 역할을 한 이홍구 통일고문회의 의장은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리는 20주년 기념 토론회에 앞서 배포한 기조연설문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폭넓은 국민적 합의에 바탕해 탈냉전, 민주화시대에 걸맞았을 뿐 아니라 남북협력 시대를 여는 전략적 목적에 부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년만에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지금의 국제환경에서 우리는 통일방안에서 명시한 원칙, 즉 하나의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해 두 정치체제의 공존을 상호 수용하고 교류협력 한다는 원칙에 새삼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난 20년에 걸쳐 남북이 이룩한 공식합의들인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남북정상선언을 “예외없이 원칙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남과 북이 함께 천명함으로써 비핵화를 비롯한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키고 “머지 않은 시기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당시 국회 통일정책특별위원장이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발표문에서 “그해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양 등의 방북을 계기로 극소수 정권 담당자가 좌지우지하던 통일논의가 민간에 개방됐다”며 “여야 4당간의 진지한 토론과 진보.중립.보수 세력의 입장 수렴 등을 거쳐 1989년 9월 11일 국회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특별연설로 통일방안이 발표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통일방안에 대해 “북한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합을 하기 위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한 가운데 분단종식을 위한 현실적이고 실천적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하고 “이후 3대에 걸친 정권을 거치면서도 그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국토통일원 정책자문위원이었던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우리의 통일방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격변하는 독일의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1989년 여름 수십만명의 동독인이 탈출하는 등 흡수통일 징조가 보이자 남한은 통일방안을 제시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

이 사태는 반면 북한에 대해선 동.서독의 교류와 개방이 동독의 물락을 불러왔다는 반면교사로 작용,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경계심을 유발했다고 한 전 장관은 분석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남북관계 측면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돼 부분적인 실현을 보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통일방안의 핵심 전제는 남북한의 미.일.중.러와의 교차수교였는데 “남한은 성공한 반면 북한은 미.일과의 관계 개선 문제에서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핵무기에 대한 집착과 개방에 대한 위구심때문에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 전 장관은 지적했다.

당시 민주평통 이념제도분과위원장이었던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를 이용한 적극적인 대북 접근 전략을 구사해 다방면적 남북대화를 실현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한 점을 평가했다.

이 방안은 그러나 “북한의 전략적 변화를 유도하는 데는 미흡했다”고 그는 지적하고 “북한 당국은 남한의 적극적인 대북 접근 정책을 체제 전복 기도가 깔려있다고 보고 이를 생존을 위한 전략 수립 등 ‘시간벌기 전술’에 역이용했다”고 분석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