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대표 심상정)가 주도하고 있는 ‘종북주의’(從北主義) 청산을 위한 혁신안을 두고 당 내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내달 3일 전당대회에서 ‘일심회 관련자 제명’과 ‘편향적 친북주의 청산’을 안건으로 하는 당 혁신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 내 다수파인 자주파가 혁신안 부결을 공언하자 심상정 대표는 30일 혁신안과 비대위 재신임 문제를 연계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조승수 전 의원이 주도하는 급진 평등파는 26일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 출범식을 개최해 평등파도 각 계파별로 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은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종북주의 청산으로 불거진 자주파와 평등파는 결국 한 배를 타기 어렵다는 것. 사실상 ‘적과의 동침’을 해온 자주파와 평등파가 결국 이혼 위기까지 몰린 이유는 결국 양측의 이념적 차이를 넘어선 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
▲NL과 PD의 위험한 동거=민노당 내 갈등의 축인 자주파는 NL(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계열로, 평등파는 PD(민중민주·People Democracy)계열로 분류된다. 양측은 80년대 이후 한국 사회 변혁운동의 양대진영으로 자리잡아왔다.
NL계열은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은 민족 분단에서 비롯됐고 여전히 한국은 미 제국주의 식민지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반미투쟁을 전면에 내세운다.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자주적 통일을 내세운다.
PD계열은 한국 사회의 핵심적 모순은 독점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분단도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확대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통일도 남과 북의 억압 받는 노동자들의 해방을 통한 통합 과정을 주장한다. 변혁의 중심세력으로 노동계급을 내세우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NL계열을 자주파로 부르지만 이는 말 장난 같은 것이다. 주사파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들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하고 북한 조선노동당을 지도기관으로 여겼다. 민노당에서 ‘북한 추종주의’나 ‘종북주의’ 현상이 나오게 된 것은 이러한 사상적 경향성이 뿌리 깊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NL계열은 80년대 중반 이후 전국 세력화에 성공해 운동권 진영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반면 PD계는 사회주의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진보정당 추진 논의는 NL계열 내에서도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현재 민노당은 PD계열이 주도하고 일부 소수 NL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2000년 1월 창당했다.
범PD계열이 주도하던 민주노동당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좌파계열 전반에 분 친북화 바람과 2002년 대선을 전후해 전농, 한총련 등 NL계 전국조직들이 합류하면서 지금의 NL 다수 구도를 형성했다.
NL계열의 핵심 조직이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책임자였다가 지금은 전향해 북한민주화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현 민노당 내 자주파로 구분되는 핵심인물들은 과거 민혁당 출신들”이라며 “민노당 건설 과정부터 민혁당이 깊숙히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편집위원은 “초기 NL진영의 약 30%와 PD진영이 함께 민노당을 건설했다”며 “이후 대선을 기점으로 NL진영의 60~70%가 대거 동참하면서 민노당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종북(從北)주의’ 청산 왜 불거졌나= 대선 참패 이후 당권을 쥐고 있던 자주파 책임론이 급부상하면서 ‘종북주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평등파는 ‘코리아 연방공화국’ ‘북핵 자위론’ 등 편향적 친북노선이 민심이반으로 이어져 대선 참패로 이어졌다며 자주파의 친북노선을 문제삼았다.
그 동안 민노당은 북핵에 대해서는 ‘자위론’을 펴고,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에 적극 동조하는 등 사실상 ‘조선노동당 이중대’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평등파는 통일문제보다는 노동∙인권 문제 등을 중시하면서 북한 핵개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자주파의 반대로 비판 성명서 하나 내지 못하자 평등파는 감정적인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후 지도부 선거 때마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대결이 노골화 됐다.
이처럼 평등파는 북한 정권이나 인권문제, 북핵 문제에 대한 자주파의 태도에 비판을 제기했었고 자주파는 민족문제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평등파를 공격했다.
평등파인 조승수 전 의원은 “북한 정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종북(從北)주의’ 노선을 택하는 당내 자주파(NL계)의 지향과 성격은 창당정신과 맞지 않다”면서 “이들은 사실 북한의 통일전선조직의 하나로 당을 생각한다”며 분당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주파인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평등파가 한국과 북한을 민족적 특수관계에 앞서 주권국가 간 관계로 설정하는 것은 영구 분단에 동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자유선진당 같은 발상”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로부터 최악의 인권국가로 지목된 북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넘어 북한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대변하는 자주파가 변화가 불가능한 이상, 평등파와의 결별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