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입장과 협상전략

관련국들이 1년 이상 교착상태에 빠졌던 6자회담을 재개키로 합의한 데 대해 미국은 환영하면서도 회담을 섣불리 전망하기보다는 회담의 기본취지와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태도는 북한의 협상전략과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6자회담 틀내에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는 물론 대북지원 카드를 꺼내 보이며 회담 성과를 유도하는 한편, 이미 진행중인 대북제재는 별개로 수순을 밟아가며 북한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막상 6자회담이 열려 북한과 미국이 1년여만에 협상테이블에 대좌하게 되더라도 협상이 순풍에 돛단듯 진행되기보다는 협상주도권과 의제를 선점하기 위한 양측의 치열한 샅바싸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행정부는 이례적으로 지난 달말 베이징에서의 북한, 미국, 중국 대표간 비공식 회동이 알려진 뒤부터 6자회담 재개 합의에 무게를 두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흘리며 북한이 조율도중에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는 퇴로를 조금씩 좁혀 나갔다. 일종의 협상몰이를 한 셈이다.

미국은 회담 일정 확정이 계속 늦어지자 “단순히 회담 개최 시기보다 성과를 내기 위한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성과있는 회담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여왔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동안 미국과 북한이 날카롭게 대립했던 핵심쟁점에서 뭔가 결정적으로 물꼬를 터뜨릴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이런 가운데 미 국무부는 10일 6자회담이 오는 16~18일 사이에 베이징에서 열려 2~3일간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회담재개를 사실상 공식 확인했다.

이어 국무부는 “우리(미국)는 회담에서 참가국들이 지난 2005년 9월 합의한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재개된 6자회담의 의제를 못박았다.

조앤느 무어 부대변인은 작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약속한 점을 상기시켰다. 이번 6자회담에선 무엇보다도 북핵문제를 핵심의제로 삼을 방침임을 강조한 것.

이는 지난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뒤 북한이 미국과의 핵군축협상을 언급한 점으로 미뤄볼 때 6자회담 테이블에서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협상의 몸값을 올리거나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변질시키려는 북한의 기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입장은 베이징 비공식 접촉에서 미국이 북한에게 2008년 중반까지 핵을 포기할 것을 우선 제안하면서 이런 제안을 수용할 경우 중단된 대북식량 및 중유 지원은 물론 북한이 최고 협상 목표로 삼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다는 보도에서도 뒷받침된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초기 이행조치로 ▲영변 흑연감속로 가동 중단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수용 ▲현재 진행중인 모든 핵프로그램과 핵시설의 신고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비공식 협상에서 북한을 설득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후속조치를 대북협상과 별도로 진행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베이징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율이 한창이던 지난 1일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1718호 후속 이행조치의 하나로 대북금수 사치품 목록을 확정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핵폐기에 진전이 없을 경우 제재는 계속된다는 미국 정부의 원칙을 북한에 전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북사치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의 핵심지도층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이같은 조치는 북한 지도부에 조속한 핵포기 결단을 직접적으로 촉구한 메시지로도 받아들여진다.

부시 대통령은 또 8일엔 무기수출통제법, 원자력법, 수출입은행법 등 미 국내법상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이 핵실험을 할 경우 자동발동되는 법률상의 제재조치에 서명, 발효케 하며 대북압박수위를 높였다.

물론 이들 법에 따른 대북 무기 수출과 핵기술 협력, 자금지원 등의 금지조치는 북한의 핵실험 이전부터 시행돼오고 있는 것이어서 추가제재의 실효성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지만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미국의 대북제재는 계속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면서도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추가제재 관련 서명 후 “이번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은 대북 당근책과 채찍론을 동시에 꺼내들고 북한과 밀고당기며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여 성과를 구체화하기 위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재개되는 6자회담 테이블에서 미국이 당근을 더 내놓을 지, 채찍을 더 꺼내들지는 전적으로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게 미국측 주장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