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철수와 北核 해법의 정치적 함의

미 대통령 오바마가 종전을 선언하고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치른 전쟁에 의문을 쏟아내기 바쁜 듯하다. 과연 미국은 무엇을 이루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라크에서 희생된 7만명이 넘는 사람들과 4400명이 넘는 미군 희생자들 그리고 지난 7년간 미국이 쏟아 부은 7500억 달러라는 자금의 규모와 함께 더욱 극명하게 부각된다.



전쟁이 가져 오는 민간인들의 희생은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기에 전쟁은 그 자체로 비난의 선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이 더 큰 희생을 막는 평화의 수단이자 보루가 되었던 세계사의 냉엄한 역사 또한 외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미국의 전쟁을 무의미한 것으로만 치부하기 전에 더욱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간이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평화와 안전이 필요하다. 그것은 고래로 인류의 행복을 갈망한 정치사상가들의 고유한 주제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의 잔인한 세계에서 평화와 안전을 위한 영원의 정답을 얻고자 한 홉스도 마찬가지다. 국제정치학자들이 고민하는 주제도 역시 같다. ‘어떻게 하면 세계가 평화와 안전을 달성할 수 있을까’, ‘전쟁은 어떤 경우에 발생하며 국가는 어떤 경우에 공격적이 되는가’와 같은 주제는 결국 예측력을 높여 평화와 안전의 붕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불안과 인류 위협의 최대 요인은 ‘핵무기’로 집약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냉전’은 무분별하게 양산된 핵을 통제하는 ‘평화의 구도’가 되었다. 즉 냉전의 쌍방은 핵 사용이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의 붕괴와 함께 평화의 구도는 깨졌으며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갖혀 있던 핵이 뛰쳐나오면서 세계의 안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무엇보다 핵이 비이성적 독재자나 ‘상호억지’가 작동하지 않는 테러 세력의 수중에 듦으로써 초래될, 핵 통제력의 상실 및 핵 사용의 비예측성이 급격히 증대한 것이다.



핵에 대한 유혹은 그 가공할 위력만큼이나 강력했다. 아프리카의 맹주를 꿈꾼 남아공은 스스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였고 중앙아시아의 우크라이나도 소련의 유산인 핵무기를 러시아에 순순히 양도할 수 있었지만, 중동의 패자로 등극하고자 한 이라크는 야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추후 평화적 해결로 나아가기는 하였으나 리비아 역시 핵 야망을 표출하였고, 아시아에서는 북한이 뒤를 이었으며, 이란은 ‘무주공산’이 된 중동을 제 손아귀에 넣고자 핵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이렇듯 탈냉전의 새로운 혼란기에 세계 평화와 안전을 극도로 위협하며 등장한 핵확산 국가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하는 것이 21세기의 가장 큰 숙제가 된 것이다. 즉 핵무기를 다시 판도라의 상자 안으로 집어넣는 세계 구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핵을 추구하는 정권을 핵을 추구하지 않는 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곧 독재정권을 민주정권으로 대체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혹은 국내의 ‘정치 역학’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한다면,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외부 세계가 무력을 통한 정권 교체까지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미국이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것과 더불어 전쟁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알카에다와의 연계와 같은 부분들이 전혀 사실 무근이 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여 후세인이 국제사회와 벌여온 10여년 간의 대량살상무기 및 핵 대립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연계하려 했다는 모종의 정보 역시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침공이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고 하여 후세인이 쿠르드족에게 독가스를 살포하고 시아파 종족 40만명을 무참히 학살한 것이 논외가 될 수는 없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후세인이 숨겨두었을 것으로 추정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고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뚜렷이 잡아낸다고 하여 미국의 전쟁에 대한 회의와 부정적 여론이 사라지는 것 역시 아닐 것이다. 7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혼란이 가시지 않는 이라크에 더 빨리 평화가 정착되었을 리도 만무하다. 따라서 전쟁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핵확산 국가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하는 것, 그것이 더 큰 본질인 것이다. 그것이, 전쟁을 통한 세계의 안정과 평화 추구라는 최후의 선택을 초강대국 미국으로 하여금 감행하게 한 것이다.  



한국은 핵을 만들어 체제생존과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해치는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다. 상대가 핵을 갖는 순간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적국보다 우위의 방어력을 가져야 하는 군사 전력의 치열한 균형은 일거에 무너진다. 핵확산 국가로서 세계가 경악하는 북한의 주적은 한국전쟁 60주년에 이른 오늘 이 순간까지도 한국이라는 사실을 한국 국민들은 뚜렷이 각인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고려하는 대상은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사람들이 미국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미국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희생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 미국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얼마나 막대한 것인지 뼈아프게 절감하였다. 이라크에서 지칠 대로 지친 미국이 북한 핵에 대해 핵 포기와 폐기가 아니라 혹여라도 적절한 관리나 유사한 타협의 방식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과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를 떠난다면 누구도 한국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무거운 핵탄두를 장착하고도 한국 전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는 탄도탄을 오래전부터 완성해 놓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지니는 더 큰 국제정치적 함의를 한국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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