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아이 자존심보다 더 나은 삶 역점둬야

6.2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22일 시민단체 211개가 모여 만든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는 ‘무상급식 관련 조․중․동 보도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조․중․동이 무상급식을 ‘부잣집 자식들에게도 공짜밥을 주는 것’ ‘반서민 정책’ 등으로 호도하며 무상급식의 취지와 본질을 흐리고, 무상급식을 실현하기 위한 생산적 논의를 가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부모 소득에 상관없이 100% 무상급식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소득층 자녀만 무상급식 해야 하는가’이다.


서울대 이준구 경제학과 교수는 <무상급식은 사회복지정책이 아닌 가치재>라는 글을 통해 무상급식은 ‘가치재(merit good)’이므로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가치재라는 것은 특정한 상품의 경우 모든 국민이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혜택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가 직접 생산, 공급하는 상품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의료, 주택, 교육서비스가 가치재의 좋은 예”라며, “의무교육은 교육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급식도 초등교육의 일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다고 봐야”하며, 또한 “모든 아동이 균형 잡힌 식단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도 급식은 가치재의 성격을 분명하게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가치재인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우선 ‘가치재’를 재화의 종류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부터 논란이 있다. ‘가치(merit)’의 뜻이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의료, 주택, 교육’을 가치재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공하는 방식에서, 국가가 일괄적으로 제공할 경우 부작용을 낳는다. 가장 극심한 부작용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났으며 영국병이라 불렸던 유럽사회의 과도한 사회복지 시스템이 낳은 부작용들도 그의 예이다.


중앙일보의 문창극 논설위원은 급식은 “내 아이의 점심은 내가 책임진다는 개인이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는 자존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중앙일보 3월 15일자, ‘공짜 점심은 싫다’)


문 논설위원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개인이 해야 할 일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구별되어 있다”며, “치안과 국방, 학교를 세우는 일 등 개인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을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 대신해주지만 국가는 그 한계를 더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자녀 양육 문제에서 가정의 책임이 무너지고 국가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경우 독립적인 개인은 사라지고 의타적인 인간만이 넘치게 될 것”이라며, “개인이든, 국가든 진정한 번영은 독립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무료 급식 문제는 단순하게 먹는 문제, 편리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이자 이념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부모의 소득에 상관없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측의 중요한 다른 이유는 ‘선별적 복지’로 받게 되는 아이들의 상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 역시 이와 관련, “빈곤층의 자제에게만 무료급식의 혜택을 제한하면 그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는 그냥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며 “부유층의 자제에게도 무상급식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빈곤층의 자제가 그런 정신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에 드는 추가적 비용은 가치 있는 투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받게 될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필요 없는 가정에게까지 무상급식이 주어지게 된다면, 그건 저소득층의 아이가 더 받아야 할 복지 혜택을 빼는 것이 될 수 있다. 국가 재정과 교육 예산은 함부로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 안에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무상급식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지급되는 ‘불필요한 돈’을 우리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데 써야 한다.


23일 참여연대에서 진행한 ‘왜 친환경 무상 급식인가’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전북 장수중학교 김인봉 교장의 발언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그는 “3년에 걸쳐 무상 급식을 하면서 학교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면서 “무상 급식은 밥상에서 만큼은 차별받지 않는 모두가 평등한 급식실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별 급식을 할 당시 면제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자녀들은 학교에서 아무리 관리하고 배려하더라도 3년 다니다보면 친구들이 알게 된다”면서 “이런 학생들은 대체로 공부도 못하기 때문에 성적에서 차별받고 돈에 위축되어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말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자녀로 알려지게 되면서 받는 고통’보다 “이런 학생들은 대체로 공부도 못하기 때문에”라는 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불필요하게 쓰이는 예산을 줄여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육만이 그 아이를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자존심보다는 이들의 더 낳은 삶을 위한 투자가 무엇인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설사 눈칫밥을 먹게 된다하더라도, 교육 예산이 저소득층 아이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데 사용된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더 밝을 수 있다.


‘선별적 복지’로 인해 받는 아이들의 상처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구청에서 부모와 상담을 통해 아이의 점심값을 결정한다고 한다. 부모가 고소득자이며 일정정도의 값을 내지만, 소득이 기준 이하면 무상으로 점심을 제공한다. 그러나 학교에선 학생이 끼당 얼마의 점심값을 내는지 전혀 모른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무료·할인 급식자가 유료 급식자와 식별된다거나 차별되지 않을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급식티켓 색깔과 모양을 모두 동일하게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해 선별지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없다고 한다.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등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은 그동안 학계에서 이뤄지던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논의를 시민사회단체와 각 가정으로 확산시켰다. 모처럼 복지정책에 대해 철학적인 부분부터, 효율성까지 토론되고 있다. 이 토론이 가치를 달리 하는 세력들을  헐뜯는 수단이나 지방선거 표를 얻기 장치로 사용되기보다, 더 나은 사회로 이끌기 위한 생산적인 토론이 됐으면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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