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인민반장이 있던 마을

평양시 평천구역 원자력총국사택이었던 우리 아파트에서 인민반장은 원자력총국 목수의 아내였다. 우리 아파트는 1층부터 7층, 8층부터 마지막 층(이상하게도 그 아파트가 몇 층으로 되어있었던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까지 56, 57 두 개 인민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57 인민반장이던 7층 3호집 엄마(우리 옆집아줌마)가 관절염으로 운신 못하는 통에 원자력총국아파트 두개 인민반을 목수의 아내인 56 인민반장이 전부 맡아 안았다.

극성스러운 인민반장 때문에 온 아파트가 소란법석

시집 온지 얼마 안 되는 나에게 남편이 자랑삼아 들려준 그 아파트의 유일한 에피소드는 목수의 아내가 인민반장에 임명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남편들이 일류대학 나온 원자력 총국 간부들이어서 그 아내들도 전부 대학졸업생들인데 인민반장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서로가 우기는 통에 원자력총국에서 만만한 목수 아내를 불러 인민반장 감투를 강제로 씌워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인민반장의 등쌀에 아파트 내의 주부들 전부가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원자력총국까지 말려들어 혼쭐이 났다. 동 사무소에서 어떤 통지가 내려오면 그것이 비록 사소한 것일 지라 해도 우리 원자력총국 아파트 여성인민반장은 꼭 인민반회의를 열었다. 직장에서 하루일 끝내고 한두 시간의 퇴근 전쟁을 벌려 집에 간신히 도착한 주부들을 저녁밥도 짓기 전에 인민반회의에 불려가야 했다.

인민반장네 집이나 그의 집이 있는 8층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앞뒤도 맞지 않는 인민반장의 말을 한 시간 이상씩 듣고 있을 때면 과연 개인의 사적인 시간을 이런 식으로 노상 강탈당해야 하나 하는 억울한 생각에 울화통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무슨 행사가 예견되는 시기는 꼭 저녁 시간이었다. 정말 이건 생 고문이었다.

게다가 토요일 저녁만 되면 각 집마다 문을 쾅쾅 두드려가며 일요일 수매사업에 빠짐없이 참가하라고 인민반장이 소리소리 질렀다. 매 세대 당 1원분 이상의 유효자재를 수매하여 수매증을 바치라고 했다. 한 세대도 누락되면 안 된다고 하였다. 우리 인민반이 동사무소에서 제일 꼴찌라고 엄포를 놓았다.

막무가내 인민반장에게 언제나 아쉬운 소리만

그녀는 주부건 세대주건 가림이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짜증부리고 큰소리를 쳤다. 인민반장에게 바른 소리를 탕탕 해대는 배짱 있는 시어머니 모신 며느리 한둘은 인민반장 말을 못들은 척 했다. 인민반 회의도 한 두 번쯤 거르고 수매도 한 두주쯤 훌 넘겨버렸다. 그러나 계모 살이 신세에 있던 나는 그런 배짱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일요일은 해 뜨는 것이 다 지긋지긋했다. 수매 일 때문이었다. 지난 주에 집안을 깡그리 털어 수매품이 될 만한 것은 다 내갔기 때문에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인민반장은 무조건 해내라고 성화였다. 수매거리를 또 억지로 만들었다. 수매소에 가 한 두 시간 줄을 서서 수매를 했다. 다행히 수매계획 1원을 채운 날은 수매전표를 받아내는 인민반장의 표정이 그만그만했다. 50전이나 70전짜리 수매증을 바친 날이면 “아, 요것밖에 안 했나?”하는 무참하기 짝이 없는 욕설이 숨 쉴 새 없이 날아왔다. 그녀의 말에 나처럼 마음 여린 주부들의 가슴이 갈갈이 찢겨나갔다.

지방에 사는 시댁 쪽 친척이 평양시 주변구역 행 여행증을 해 가지고 와 우리집에 머물기라도 하면(평양 여행증은 발급받기 힘들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적지를 주변구역으로 밝히고 평양 친척집에 오곤 했다) 콩나물이라도 한 바가지 사들고 반장의 집에 올라가 사정이 이러저러한데 이곳 분주소 숙박등록을 못하게 되었으니 사정 좀 봐 주십사 하고 공손히 아뢰어야 했다. 그 친척이 인민반장과 약속한 시일 내에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지체될 경우는 달랐다. 매일처럼 집에 찾아와 성화였다. 왜 무단숙박을 시키는가, 동사무소에 제기 하라, 벌금 물고 싶은가, 지방으로 쫒겨 나가고 싶은가 등 손님이 돌아갈 때까지 성화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복도나 마당청소당번인데 바빠서 청소를 못하고 출근했다가 퇴근해온 날이면 어김없이 인민반장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방금 온 가족이 저녁밥상을 마주하는 중인데도 방 복판에 들어와 떡 버티고 서서는 고성을 질렀다. 마당 복도청소도 안하고 어떻게 일 나가느냐고, 7층 복도가 아파트에서 제일 어지럽다고, 이상하게도 그 여자 말투는 사람의 가슴을 긁어 헤집는 무엇이 있었다.

한번은 동 사무소에서 우리 아파트에 위생검열 나왔다가 불합격 딱지를 붙여놓고 간 일이 있었다. 그런 경우 인민반장은 세대주(남편들)모임을 열고 그들과 상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 인민반장여성은 아니었다. 원자력총국 총국장에게 찾아가 소동을 일으켰다. 총국장은 원자력총국 간부국장에게 특별지시를 내렸다.

간부국장은 어느 날 원자력 아파트의 세대주 및 주부들을 새벽 4시에 비상소집 시켰다. 원자력총국 아파트가 동(洞) 차원에서 문제시되었다며 그날부터 수일간 환경정리 작업을 시켰다. 그러자 모든 주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들고일어났다. “인민반장이 무슨 벼슬자리라고 국가 정무원급 기관 책임자를 함부로 찾아가는가” 하고 항의했다. 원자력총국아파트를 온 동에 망신시키고 원자력총국 위신까지 납작하게 만들어놓았다고 인민반장을 꾸짖었다. 동사무소에서 잘 한다 잘 한다 추겨주니까 우쭐해서 돌아다닌다고 힐책했다.

참고 살아온 동네사람들이 드디어 폭발

내가 며칠 후 동사무소에 일이 있어 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갖가지 인민반별 경쟁도표 즉 저금경쟁도표, 인민군지원사업경쟁도표, 유효자재수매경쟁도표, 충성의 외화벌이 경쟁도표, 파고철, 동 수매경쟁도표, 파지수매경쟁도표 등 7~8가지도 넘는 경쟁도표들이 동사무소 복도 벽에 주렁주렁이 나붙었는데 우리 인민반이 모든 도표에서 3등 권 내였고 5등 권내는 충성의 외화벌이인가 하는 딱 한가지뿐 이었다. 그리고 우리 57반 인민반장은 ‘모범인민반장’으로 영예 계시판에 사진과 함께 크게 나와 있었다. 150 여개의 인민 반이 소속된 동사무소에서 3등 권내에 들자니 우리 인민반원들이 인민반장의 등살에 그처럼 악착같이 시달려온 것이었다.

원자력 총국 간부국장의 새벽조기작업 사건이 있은 후, 며칠은 인민반장이 기죽어 지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무슨 일이 내게 있었느냐는 듯 다시 서슬이 퍼래졌다. 우리 인민반 주부들은 또 다시 그녀의 독재 하에 들어갔다.

몇 달 후, 평양에서 전국인민반장대회가 열렸다. 참가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친구네 집에 들렸다가 대회장면을 TV로 방영하기에 보고 있는데 옆에 앉았던 친구가 “우리 인민반장도 저기 참가했는데 안 나올까?”하며 화면을 주시하더니 “저속엔 착하게 생긴 여자가 하나도 없구나!”하고 말하여 주위의 폭소를 터뜨렸다.

“에이, 저 인민반장네 반원들이 얼마나 시달렸겠니? 저 얼굴에 베인 살기(殺氣)들 좀 봐, 우리 인민반장도 아침저녁으로 달달 볶는데, 정말 죽을 맛이야……”

친구네 인민반장도 우리 동네 인민반장 타입인 모양이었다. 혀를 끌끌 차는 그녀의 말에 나도 TV화면에 비쳐지는 대표인민반장여성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하나같이 싸움에 맛들인 얼굴들이었다. 나는 그 얼굴들에서 눈길을 못 떼며 생각해보았다. 저 인민반장들도 우리 인민반장과 똑 같을 것이라고, 그녀들이 반장으로 있는 인민반 주민들은 우리 인민반 주민들 이상으로 들볶이고 야단맞고 상처받을 것이라고.

모범인민반장이 있는 마을-그 마을 사람들은 운이 나쁜 나라에 운이 나쁜 동네까지 겹쳐 운이 더럽게도 나쁜 정말 불행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최진이 前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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