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 첫 적용한 ‘국민보호책임’

지난 19일 밤(현지시각) 시작된 서방 연합군의 리비아 군사공격이 유엔의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r2p)’ 개념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직은 다소 생소한 이 개념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안보리)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결의를 하면서 명분을 마련하긴 했지만, 엄연히 주권이 있는 독립국에 대해 해당 국민 보호를 이유로 국제사회가 공격을 감행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국민보호책임이란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인권유린 등의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했을 때 국제사회가 개입해 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즉 국가가 집단학살이나 전쟁범죄를 자행하고 인종청소 등 비인도적 범죄를 제어하지 못할 때 국제사회가 대신 나서서 해당국 국민을 보호할 공동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9월 제 60차 유엔총회서 열린 191개국 정상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이 원칙을 채택한 이후 이번 리비아 사태에 대한 안보리 결의 1973호에 처음으로 적용됐다.


앞서 2008년 짐바브웨나 미얀마 사태 등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당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멋대로 대선을 진행해 대통령직에 오르면서 결선투표를 연기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무시해버렸다. 이 와중에 국민은 수만 %에 이르는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에 시달렸지만 국제사회는 짐바브웨의 주권을 우선시해 개입하지 않았다.


미얀마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이클론이 덮쳐 국민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이었지만 미얀마 군사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해 참사는 더욱 심해졌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재민 방치를 비인도적 범죄로 규정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어디까지나 자연재해라면서 개입을 반대했고 결과적으로 강제적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파리 방문 중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이번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국제사회가 국민보호개념을 적용해 나선 첫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이 개념을 처음 적용하면서 이제 국제사회는 주권보다 인권을 우선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 됐다.


‘역사의 종언’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지적처럼 독재자는 더 이상 국가 주권의 원칙 뒤에 숨을 수 없고 국제사회는 인권보호와 민주적 정통성 확보를 위해 내정간섭의 권리뿐 아니라 의무까지 갖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국제사회가 각국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사례는 많았지만 명분은 달랐다.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안보리는 이를 침략으로 규정해 다국적군을 편성해 공격했고 1992~95년 보스니아 전쟁, 수단 다르푸르 사태, 소말리아 분쟁 등에도 평화유지군이 파견됐지만 이번 리비아 공격과 같은 명분은 아니었다.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국가에 국제사회가 적극 개입한다는 단초가 된 이번 사례는 그러나 북한이나 미얀마 등 다른 나라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군사개입을 위한 새로운 명분이 만들어졌지만 실제 군사개입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개념이 자칫 오.남용될 소지도 그만큼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이장희 교수는 “유엔 안보리 결의 1973호에 따른 유엔의 이번 대(對)리비아 군사공격은 ‘국민보호책임’에 근거한 만큼, 어디까지나 달리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반군 측 민간인에 대한 보호 수준에 그쳐야지 카다피 정권 전복이나 군사적 점령을 시도한다면 과도한 개입이며 그것은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국적군의 이번 군사 공격을 보면 카다피의 비민주적 통치에 반대하다 무차별 살상을 당하고 있는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목적인데, 수준이 과도해 카다피로부터 유엔결의 위배나 비도덕적이란 역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