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줄 알고 호적정리 죄송”…”다 이해한다”

1차 이산가족 상봉때 바람과 흐린 날씨로 취소됐었던 야외상봉이 2차 상봉에서는 예정대로 진행키로 결정됐다.

전날 저녁에 내린 비로 야외상봉 장소인 외금강호텔 옆 잔디광장이 젖어 야외상봉이 취소될 것으로 우려됐으나 점심 이후 날씨가 개면서 야외상봉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30일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있는 금강산엔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환한 햇살이 비쳤다. 오전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1차 때처럼 야외상봉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남과 북측의 이산가족 상봉행사 지원단 관계자들은 정오께 잔디밭 상황을 놓고 협의한 끝에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2시간동안 야외상봉을 결정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오후에 날씨 상황을 고려해 당초 오후 4시부터 하기로 했던 야외상봉을 앞당겼다”며 “이산가족들이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남북 이산가족들은 금강산 호텔 2층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전날 만남과 오전 개별상봉때 보다 친숙한 분위기였다. 삼색 찰떡, 오리구이, 락하생죽(땅콩죽) 등 북측 음식으로 마련된 이날 점심에서 가족들은 ‘봉학맥주’로 서로의 잔을 채워주며 ‘위하여’ ‘건강하세요’ 라는 건배사를 연발했다.

이날 12시 30분 공동중식을 위해 호텔 여성접대원 60여명이 오전 9시경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빵, 잼, 버터 등 양식을 비롯해 삼색찰떡, 남새합성, 오리구이, 삼색나물, 밤조개샐러드, 양배추말이 김치, 소고기찜, 생선호두튀기, 흰밥, 생선감자국, 삼색단설기, 과일화재, 오갈피차 등이 식탁에 올랐다.

이날 금강산호텔에서 북의 큰 딸 리혜경(75) 씨와 개별상봉을 한 김유중(100) 할머니는 전날보다 한결 차분한 모습이었다. 김 할머니는 “딸이 북에서 잘 사는 걸 확인해서 그런가 큰 걱정도 안 들고, 잠도 잘 잤다”고 말했다. 딸 혜경 씨는 이날 개별상봉에서 남측 가족들에게 남편과의 만남 등 가족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혜경 씨는 “북에 건너가 의대를 수석 졸업한 뒤, 평양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다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던 남편을 소개받아 결혼했다”고 말했다고 김 할머니는 전했다. 리 씨의 남편은 수단대 학장을 역임한 뒤 정년퇴임했다.

김 할머니는 개별상봉에서 남측 가족들의 사진을 정리한 앨범을 큰 딸에게 전달했다. 선물을 받은 혜경 씨는 “밤새 가족들과 앨범을 보고 또 보겠다”며 “이번 상봉이 동네 사람들한테도 관심사라 자랑하겠다”고 말했다고 김 할머니는 전했다.

또 북측 아버지 전기봉(85) 씨를 만난 남측 딸 전향자 씨도 “잘 지내고 계신 걸 보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조국통일상을 받은 공화국영웅이자 김일성종합대 교수박사를 지낸 아버지가 전날 단체상봉에서 북측 기자들로부터 집중취재를 받는 등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마음이 놓인 듯 했다.

향자 씨는 “3살 때 헤어져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만나자 우리 가족일 걸 알았다”고 첫 만남의 느낌을 설명했다. 기봉 씨는 “2남 3년에 손주들까지 북쪽 가족이 모두 20명”이라며 “남쪽 손녀와 손녀사위, 증손녀까지 만나니 기쁘고 좋다”고 딸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번 행사에서 유일한 부부상봉자인 북쪽 남편 로준현(81) 씨와 남쪽 아내 장정교(82) 씨는 개별 상봉시간 내내 손을 놓지 않았다. 정교 씨는 “젊어서 만나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나이 들어 만났네요”라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쉬워하자 준형 씨는 “다른데로 시집갔거나 아니면 죽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번 상봉에서 남쪽 아내가 온 사람은 나 하나였는데, 북쪽 상봉단 사람들이 (어떻게 긴 세월을 혼자 살았느냐면서) 놀라더라”고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남쪽 딸 선자(64) 씨는 준비해온 양복을 아버지 몸에 맞게 줄이기 위해 개별상봉 시간 내내 열심히 바느질 했다. 공동중식에서도 이 부부는 손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딸 선자 씨는 “건강이 좋아야 통일되면 만날 수 있다”면서 아버지를 꼭 안았다.

6·25 때 아버지를 대신해 북의 의용군으로 끌려간 작은 아버지 어성우(76) 씨를 만난 어윤천(55) 씨는 이날 오전 개별상봉에서 작은 아버지께 고개를 숙였다.

윤천 씨는 “지난 94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작은 아버지의 호적을 (함께) 정리했었다. 돌이가신 줄 알고 그렇게 한 거지만 이번에 정중히 사과드렸다”며 “작은 아버지께서 ‘다 이해한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작은 아버지와 함께 끌려간 다른 작은 아버지 어영우(85) 씨의 생존소식도 들었다. 윤천 씨는 “북에 살아계시는데 이번에 상봉장에서 오지 못하셨다고 한다”며 “(개별상봉) 두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 금방 지나갔다”고 말했다.

전날 남측이 주최한 만찬에서 백세주를 즐겨 마신 성우 씨는 이날 상봉 때 조카 가족들에게 ‘백두산 들쭉술’, 도자기, 대형 식탁보 등을 선물로 가져왔다.

북측 이산가족 최병욱(80) 씨는 겹경사를 맞았다. 60년만에 두 동생과 재회한데 이어 상봉 이틀째인 30일 팔순 생일을 맞았다. 조카 유신호 씨는 “모르고 있었는데 외삼촌이 1930년 9월 30일생이라 오늘 팔순을 맞이하셨다”며 “돈은 우리가 부담할테니 조그마한 케이크라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 최병오 씨도 어떻게 오늘 넘어가기 전에 이동 편의점에서라도 케이크를 구할 수 없냐고 하소연을 했다.

한편, 전날 북측의 형님이 동명이인으로 드러나 가족 상봉이 무산됐던 남측 이종학(77), 종수(74) 씨 형제는 이날 오전 10시께 먼저 남측으로 돌아갔다. 북측 리종성(77) 씨는 북측 상봉단과 함께 귀환해야 해 숙소에 홀로 머물렀다고 북측 관계자는 전했다.

북측 관계자는 “리 씨가 상심이 매우 큰 듯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날 야외 상봉 행사를 끝으로 이틀째 날 행사를 마치는 이산가족들은 다음날 1시간여의 작별상봉을 끝으로 사흘간의 상봉행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