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NK 선정 2008년 북한 10대 뉴스

10년만의 정권교체.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새판 짜기’에 돌입했고 김정일은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남한 정권 ‘길들이기’로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의 실패를 되밟지 않겠다는 듯 ‘상호주의’에 근간한 원칙적 입장에 따른 대북정책을 펼쳤고, 북한은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이행을 요구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에 따라 북한은 올 한 해 줄기차게 비방 공세를 펼쳤고, 남한은 유연한 입장을 고수해 경색국면이 장기화됐다.

특히,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에 따른 북핵과 경협의 연계 방침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찬성 등은 ‘이명박 역도’라는 거친 표현을 동원한 북한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고, 급기야 당국자 추방에 이어 개성공단 육로통행 제한 등 ‘12·1조치’까지 이어졌다.

7월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은 남북간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어진 간첩 원정화 사건은 남한 내 대북여론까지 악화시켰다. 더불어 김정일 건강이상설과 대북 삐라 문제가 남북한을 강타, 갈등이 어어졌다.

① 펼쳐보지도 못한 MB ‘비핵·개방·3000’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햇볕정책’에 대해 ‘일방적 퍼주기’로 평가하며, 남북관계에 있어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특히 남북경협을 북핵 진전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원칙과 북한인권 문제 등 김정일 정권이 민감해하는 사안에 대해 적극적 개입을 선언했다.

이에 정부 출범 초기 침묵하던 북한은 4월1일자 노동신문 ‘논평원 글’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지칭하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본격적인 공격에 나섰다. 북한은 6·15와 10·4선언의 계승·이행을 요구하며 비방 공세를 이어갔고 급기야 12월1일 개성공단에 대한 제한적 조치까지 단행했다.

이는 남남갈등을 유발했다. ‘폐쇄론’까지 불거졌던 통일부가 축소·유지로 일단락됐지만 장관·교육원장 인선을 두고 또다시 내홍을 겪었다. 이에 따라 ‘대북정책’을 앞장서 추진해야 할 ‘수장’들이 ‘정책과 능력’이 아닌 ‘정치공세’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그동안의 보수적 대북관에 따른 야당 등의 공세에 인사청문회 하루 전 사퇴했고, 통일교육원장으로 유력시되던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6·15 공동선언을 ‘이적문서’로 주장했던 과거 발언이 문제시돼 ‘햇볕론자’들의 집중 포화에 인선이 무산됐다.

② 北 ‘통미봉남’ vs 南 ‘한미동맹’

북핵 신고문제를 두고 미·북 접촉이 늘어나면서 북한은 남한을 배제하는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가속화했다. 북핵문제는 미국과 협상한다는 전략에 따른 조치였다. 이는 남한의 북핵-남북관계 연계 정책과 결부돼 남한에선 구(舊)여권과 좌파진영 내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를 의식한 듯 이명박 정부는 당선 직후 미 부시 대통령을 예방했고, 부시 대통령도 답방하면서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북핵문제 역시 한·미는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는 등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미국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도 한국과의 동맹을 우선한다는 원칙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권문제와 관련해선 부시 행정부나 오바마 행정부 간 큰 차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③ 북한 식량난 논란의 진실

국내외 대북 지원단체 등에 의해 황해도 아사자 발생 소식 등 북한이 90년대 중반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한편에선 북한 식량문제가 과장됐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가 급부상했지만 ‘일방적 퍼주기’ 논란을 의식한 정부는 ‘북한의 요청, 국민합의, 자연재해’ 등에 따른 대북 지원원칙을 밝혀 지원을 미뤘다.

이후 인도적 지원에 대한 여론 등이 높아지자 정부가 옥수수 5만t 지원을 북측에 제안했지만 북측이 이를 거부하고 당국간 대화통로 역시 차단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인도적 지원조차 외면하고 있다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율배반적으로 이 기간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혁명업적’이나 ‘선군 영도’를 기리는 ‘모자이크 벽화’나 ‘혁명사적지’, ‘혁명사적 표식비’ 등 우상화물 제작과 건립을 계속하는 정책을 추진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④ 고(故) 박왕자씨 피살사건과 북한의 ‘책임회피’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해안초소 가까운 곳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박 씨가 식별이 가능한 오전 5시15분께 정지 또는 천천히 걷던 상태에서 100m 이내 거리에서 피격됐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남한 정부가 금강산 관광의 잠정 중단을 발표하자 북한은 이튿날 박 씨의 사망에 ‘유감’만을 표명하면서도 책임은 관광객에게 있다며 남한의 현장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관광중단을 “도발”이라고 비난해 우리 국민들의 대북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⑤ 간첩 원정화와 황장엽 협박범 구속

지난 8월 발생한 ‘간천 원정화’사건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탈북자로 위장 입국해 군 장교와 접촉, 군사기밀을 빼낸 것으로 밝혀져 ‘한국판 마타하리’로 부각되며, 지난 10년의 햇볕정책이 낳은 새로운 유형의 간첩이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원정화는 특히 전 노동당 비서인 황장엽 씨의 소재를 추적하고 군 장교들의 신상정보와 미군부대 위치정보 등을 수집해 북측에 넘긴 혐의로 계부 김동순(63), 황모(26) 대위와 함께 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징역 5년형을 선고했으며, 원정화의 항소 포기로 형이 확정됐다.

원정화 사건 이후 군부대 내 편향적 북한인식이 문제시됐고, 친북단체인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김승교 상임대표 등 실천연대 간부 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황장엽 ‘도끼 협박범’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남한 내 반북 여론이 높아졌고 이념문제가 불거졌다.

⑥ 김정일 와병과 후계 논란

김정일이 8월14일자 군부대 시찰 보도를 끝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안보이면서 시작된 그의 건강이상설은 북한정권 수립 60주년(9·9절) 열병식 불참을 계기로 기정사실화됐다.

그는 10월초 주민들의 축구경기 관람과 군부대 시찰 보도를 계기로 외부활동을 재개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으나 공개된 사진들에서 종래와 달리 왼손의 움직임이 거의 없어 뇌혈관 질환의 후유증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의 건강이상설은 외부 세계에 북한체제의 장래에 관한 무성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김정일의 아들인 정남·정철·정운 등의 ‘3대 세습론’과 매제인 장성택 부각, 집단지도체제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이 각종 매체를 동원, 김정일의 ‘사진행보’를 연이어 공개하면서 건재를 과시하고는 있지만 철저한 폐쇄 사회인 북한의 특성상 ‘김정일 건강이상’의 실체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⑦ 남북관계 경색 속 논란이 된 대북 전단(삐라)

북한은 10월2일 남북군사실무접촉에서 ‘삐라’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개성공단 사업의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남북관계 전면중단” 등 경고성 발언을 잇따라 쏟아낸 후,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등을 담은 ‘12·1조치’를 단행했다.

지구상 최악의 정보차단국인 북한이 최대주권인 김정일의 건강이상과 가계 등의 내용을 담은 ‘삐라’가 살포되자 혹시 모를 내부 동요 등을 우려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선 ‘삐라’가 ‘핵무기’를 압도했다는 평가도 들렸다.

북한의 ‘삐라 살포 중단’ 주장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 간 채택된 ‘6·4합의서’에 포함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모든 선전활동 중지’와 ‘방송과 게시물, 전광판, 전단 등을 통한 선전활동과 풍선, 기구를 이용한 각종 물품 살포 중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북한도 각종 매체를 통해 ‘이명박 역도’니 ‘역적 패당’이니 현 정부를 향한 비난 강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이 당국 간 합의사항을 어기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정부와 여당 등의 중재와 야당 등의 주도로 ‘삐라 규제법’까지 거론되는 등 중단 여론 등이 거세지자 민간단체 등의 삐라 살포가 일시 중단됐지만 북한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⑧ 냉각탑 폭파와 테러국 해제…南강경목소리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에 이어 부시 미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에 착수하자 북한은 6월27일 영변 원자로 냉각탑의 ‘폭파쇼’로 부시 행정부에 화답했다.

이후 재개된 7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에서 ▲6자의 전문가로 검증체제를 구성하고 ▲검증조치는 시설방문, 문서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및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타조치를 포함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관련 검증에 대해 자문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핵 검증의정서에 시료채취 포함 문제로 대북 태러지원국 삭제가 지연되자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 중단이라는 ‘벼랑끝 전술’로 맞서 결국 10월11일 ‘시료채취 불가’ 원칙을 고수한 채 미국으로부터 명단 삭제를 얻어냈다.

‘검증의정서’ 마련을 위해 12월8일 수석대표회담을 재개했지만 6자간 이견만 확인한 채 폐회했다. 당시 남한 정부는 그동안의 ‘중재자’의 모습에서 탈피,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과 검증의정서 채택을 연계하는 ‘포괄적 합의방식’을 주장하는 등 목소리를 높였고, 북한은 “남한이 훼방꾼으로 변신했다”고 비난했다.

⑨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과 남남갈등

유엔 총회는 12월18일(현지시각) 본회의를 열고 ‘북한인권결의안’을 4년 연속 채택했다. 이날 표결 결과 찬성 94, 반대 22, 기권 63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일본, 유럽연합(EU) 등 51개국과 함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 인권문제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에 북한인권결의안을 상정해 본 회의에 상정시켰다. 우리 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한국 정부는 2005년 유엔 총회에 상정된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을 행사했고, 2006년은 북한의 핵실험 단행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출마 등의 이유로 ‘찬성’을 했지만, 다시 2006년에는 ‘기권’을 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북한 박덕훈 유엔주재 차석대사는 ‘정치적 음모의 산물’이라고 비난하면서 결의안을 전면 거부했고, 진보연대 등 친북단체들이 “대북 대결정책”이라며 철회를 강하게 요구해 남남갈등이 불거졌다.

⑩ ‘12·1조치’로 승부수 띄운 북한

북한은 6·15와 10·4선언의 계승 요구를 바탕에 깔고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에 따른 남측의 대응과 대북 전단 살포, 남한 정부의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공동제안 등에 반발하다 개성관광 중단과 개성공단 체류인원 감축 등을 포함한 ‘12·1조치’를 단행했다.

12·1조치는 개성공단 남측 상주 인력을 880명으로 감축하고 개성을 왕래하는 경의선 육로 통행 시간대와 시간대별 통행 가능 인원을 대폭 줄이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북한이 12·1조치를 ‘1차적’이라고 밝혀 후속조치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 체류·통행 추가 제한,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에서의 군사적 긴장고조, 군당국간 통신 차단, 민간 교류 차단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은 개성공단이 돈줄인 동시에 김정일이 직접 승인한 사업인 만큼 낮다.

북한이 행동에 나서면서 남한 내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하라’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져 당분간 남남갈등의 파고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기다리는 것도 때론 전략”이라는 발언처럼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원칙도 분명해 당분간 남북간 경색국면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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