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北 추석문화…정치색 없는 유일한 ‘명절’

북한 주민들에게 추석명절은 사실상 유일한 민속명절이다.


북한에서는 흔히 김부자 생일이나 당과 군, 국가관련 기념일과 대비해 양력설, 음력설, 정월대보름, 추석을 4대 ‘민속명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양력설, 음력설에는 김일성 동상 참배 등 수령우상화 행사가 의무화 되고 있고, 정월대보름에는 ‘조상’이나 ‘가족 친지’의 의미를 되새기는 문화가 없다. 결국 북한 주민들이 아무런 정치적 압박감 없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가족 친지와 만나고 조상을 기리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명절은 사실상 ‘추석’ 뿐이다.


북한에서는 전통 민속명절이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배격하다가 1972년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후 부터 조상묘소에 대한 성묘를 허용했다. 1989년에서야 비로소 추석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추석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에 당일 이른 새벽부터 도시 거리는 명절 분위기로 들뜬다. 평양, 평성, 청진 등 대도시에서는 인민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새벽 4시부터 대중교통이 움직인다. 주민들의 이동과 성묘를 보장하기 위한 특별조치에 따라 지역 통근열차와 버스가 편성되는 것이다.


통근열차는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에서 만든 일명 ‘붉은별’이라는 전기기관차로, 80명 정원의 객차 6~7량을 갖추고 있다. 원래 시내 노동자들의 출퇴근용으로 지정된 것이지만 전력 부족으로 인해 평소에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다가 추석 하루동안 운행이 집중된다. 통근열차는 지역별로 순환거리를 조절하여 추석하루 오전 4시~9시, 오후 6시~9시 사이에 20km 이내의 거리를 순환한다.


청진의 경우 청진버스공장에서 1989년에 제작한 ‘집삼호’ 10여대가 움직인다.제작된지 오래된 버스들은 언제 어디서 고장으로 멈춰서겠는지 모를 형편이다,’집삼’이라는 명칭은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1949년 방문했던 함경북도 경성군 한 마을의 이름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이렇게 ‘셋이 모여 혁명을 모색했다’하여 ‘집삼(集三)’으로 불린다.   


통근열차나 버스는 보통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한다. 통근객차의 내부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평소에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악취가 나는 판에 소매치기라도 나타나면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추석 당일에는 각급 기업소에 등록된 버스나 화물차, 승합차 등 이른바 ‘써비(스)차’들이 총출동한다.


써비차란 요금을 받고 주민들을 태우는 개인 영업용 차량을 뜻한다. 돈 있는 개인들이 기업소 소유로 차량을 등록해 놓고 일정금액을 기업소에 바치며 개인영업하는 경우도 있으며, 기업소 차원에서 특정사람을 지정해 개인영업을 하게 하고 이익금의 일부를 떼가는 경우도 있다. 


추석이면 한산하던 시내 도로가 북새통을 이룬다. 무궤도 전차, 버스, 화물트럭, 승용차, 오토바이, 자전거 등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성묘길에 나서는 인파까지 더해지면 한바탕 시끌벅적하다.


그나마 하루세끼 밥술이나 뜨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형편에 맞게 써비차라도 이용할 수 있지만, 빈곤층 주민들은 날도 밝기전부터 성묘길에 나서야 한다. 남자들은 낫을 비롯한 벌초 도구와 술병을 챙기고, 여자들은 성묘음식을 등에 지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복잡하고 힘든 성묘길이지만 그래도 부모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에 나서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북한의 빈부격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날이 바로 추석이다. 간부들의 풍요로움과 서민들의 빈곤함이 엇갈린다.


간부집의 추석 풍경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냄새가 온 동네에 퍼지고 인사차 찾아드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간부들에게도 추석은 나름대로 중요한 행사다.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친인척들이나 하급간부들이 집에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친척과 하급간부들은 추석을 이용해 간부집을 찾아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맛보기도 하고, 자신의 애로사항을 부탁하고 해결받기도 한다. 특히 자식들의 직업과 관련된 청탁이 빈번하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돈 코르네오네가 딸의 결혼식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검은 청탁’을 받는 장면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의 추석 준비는 몇일 전부터 시작된다. 일단 간부 아내들은 추석준비에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남편이 술, 고급담배, 과일·육류·채소·생선 등 음식재료 등을 냉장 컨테이너차로 집까지 실어다주면 부인들은 동네에서 음식을 잘하는 여성들을 불러다가 음식을 만들게 한다. 물론 이렇게 ‘도우미’ 역할을 하는 여성들에게는 일정한 식량과 부식물을 나눠준다.


하급 간부들인 경우는 추석을 앞두고 발바닥에 불이난다. 상급 간부들의 추석 준비물을 미리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상으로는 추석에는 국가차원의 특별공급은 없지만, 힘있는 당간부들의 경우 도(시)당 차원에서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경리과를 통해 추석에 필요한 물자를 나눠 갖는다. 돼지고기, 닭고기, 수산물, 술, 담배, 과자류, 야채류 등을 챙기는 것이다. 


간부들은 일반주민들과 달리 추석 아침에도 김일성동상 참배에 나서야 한다. 간부들끼리 집단적으로 김일성동상을 찾아 일일이 참석자의 이름을 체크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자 성묘길에 나설 수 있다. 북한이 추석에도 간부들의 김일성동상 참배를 강요하는 논리는 바로 “김일성은 조선민족의 시조(始祖), 모든 인민의 아버지”라는 주장 때문이다.


간부들에게 추석은 자신의 정치적 ‘파워’를 과시하는 날이기도 하다. 간부들이 어떤 승용차를 타고 성묘에 가는지 여부를 놓고 세인의 관심이 쏠린다. 그들의 고급승용차는 ‘빵~빵~’ 경적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며 좁은 도로를 빠져나간다. 이를 지켜보는 일반 주민들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증오심이 엇갈린다.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아우디, 크라운, 폭스바겐 등 검은색 승용차가 지나갈 때마다 거리에서는 짧은 긴장감과 탄성이 교차한다.     


간부들의 추석비용이 모두 공짜는 아니다. 승용차를 이용해 성묘를 다녀오려면 최소 20L 이상의 기름이 소비된다. 아무리 당 경리과를 통해 여러 음식재료를 빼놀린다 해도 자기 돈을 더 들여야 한다. 간부 체면상으로 일반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없으니, 돼지고기 닭고기는 물론이고, 마른명태, 이면수, 털게, 문어회 등 수산물에 귤·사과·파인애플·바나나·감 등 남방과일까지 마련한다. 도당, 시당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추석 명절을 위해서만 최소 300~400 달러는 우습게 지출한다.


하루살기에 바쁜 서민들은 일단 근심속에서 추석을 맞이한다. 사실상 1년에 한번 밖에 가지 않는 성묘를 성의없이 준비하자니 마음이 무겁다. 때문에 추석 며칠을 앞둔 서민들은 더욱 장사에 열을 올린다. 간부집 추석준비에 품팔이를 나가는 여성들도 있다.


그렇게 준비한 음식이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흰떡 1~2kg, 쌀밥 1kg정도다. 여기에 돼지고기 500g, 두부 5모, 술3~5병, 콩나물, 고사리 등 반찬이 마련된다. 사실 이만한 준비도 쉽지 않다. 보름에서 한달 정도의 식량과 맞먹는 비용이다.


간신히 음식재료를 마련한다 해도 음식을 만드는 일이 만만치 않다. 대도시라고 해도 상수도와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차례상 준비 자체가 짜증나는 일이 된다. 평양, 평성, 청진 등 대도시 주민들은 손수레에 20Kg의 물통을 싣고 수 Km나 떨어진 산에 가서 지하수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물을 길러오는 것이 차례상 준비의 절반”이라고 말한다. 북한 당국은 추석 당일 밤에는 주민 전력공급을 증가시키려 힘을 쓰지만 정작 음식준비로 바쁜 전날에는 전력공급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추석이 대목인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추석을 앞두고 가장 활력 넘치는 계층이 바로 상인들이다. 장사 중의 장사는 역시 떡장사라고 할 수 있다. 떡 장사꾼들은 추석 전전날부터는 아예 잠을 자지 않는다. 여러가지 모양을 떡을 만들기 위해 온 가족이 달라 붙어 반죽을 하고, 떡을 찌고, 이를 다시 포장한다. 평양에서는 몇년전만 하더라도 쟁반위에 떡을 올려놓고 팔았는데 요즘에는 스티로폼 용기에 떡을 담아 얇은 비닐로 덮어 시각적·위생적 효과를 높인 포장방식까지 등장하고 있다.


추석 전날 밤이 되면 상인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린다. 준비한 물품을 다 팔아치우고 두둑한 현금을 챙겨 돌아가는 상인이 있는가 하면, 장사가 신통치 않아 팔던 물건 그대로 머리에 이고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건이 남는 사람은 다음날 성묘를 포기해야 한다. 못다 판 물건을 다음날 성묘객을 상대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짧은 추석의 하루가 막바지로 접어든다. 이날 만큼은 형제가 많은 집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형제들끼리 모여 성묘에서 남은 음식을 반주삼아 술잔이 돌기 시작하면 그래도 사람사는 온기가 퍼진다.


그러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날 없다’는 조상들의 격언은 북한을 예외로 두지 않는다. 어떤 집들은 밤이 새도록 형제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보안원(경찰)까지 출동하는 일도 있다. 싸움의 대부분은 ‘돈’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이 힘겹다보니 형제들간 ‘누가 부모를 모셔야하는 하는가’라는 논쟁이 명절 가족모임에서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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