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조선노동당 기관지로 <노동신문>을 발간하고 당원과 당조직에 배포한다. <노동신문>이 주로 다루는 내용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상과 당 정책 및 국제정세 등이다.
1면에는 김부자의 위대성 선전, 저서나 노작 등을 싣고 2면에는 당 간부들의 활동, 당조직의 사업성과를 싣는다. 3면과 4면에는 행정사업과 ‘모범사례’로 주민들에게 선전할 만한 사람들, 이른바 ‘숨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다. 5면에는 남한정세와 친북단체 등의 ‘투쟁소식’, 6면에는 국제뉴스와 정세분석 등을 다룬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이후에는 <노동신문>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노동신문>을 찢거나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했다. 그때부터 <노동신문>은 김일성을 신적 존재로 숭상하는 도구로 되어왔다. 수매소에서 파지를 수거할 때도, <노동신문>은 따로 분류하여 수매했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은 모두 곱게 오려내어 따로 보관한 후 파지로 내놓아야 했다. 상황이 그 정도니 김일성, 김정일의 일당독주체계를 확립하던 시기에는 주민들이 <노동신문>을 가지고 담배를 말아 피우거나 물건을 포장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비상사건이었다.
‘김일성교’ 몰락의 시작
김일성의 사망 후 북한에서는 김부자 숭배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고 김정일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하락했다. 그것은 북한주민들 속에 만연되었던 미신에 가까운 개인숭배에 대한 혁신적인 변화였다. ‘김일성교’의 교주 김일성이 영생할 줄로 알았고 영생할 것이라고 선전하던 노동당의 교육이 허황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자 북한주민들 사이에 “수령도 사람이라서 죽었고, 우리도 사람인데 같은 인간으로서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신격화되었던 김부자의 허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신문>은 남한의 종이에 비해 훨씬 질이 떨어지지만 어떤 면에서는 ‘좋은 면’도 있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상황 때문에 담배공업도 한심한 상황인데, 보통사람들은 궐련을 피우지 못하고 직접 담배농사를 지어서 피우거나 시장에 나가서 잎담배를 사서 말아 피운다. 공장에서 만든 담배는 비싸기만 할 뿐 품질이 형편없어서, 사람들은 잎담배를 사서 <노동신문>을 찢어낸 종이로 말아서 피우는 것이다.
이미 신화는 깨졌다
북한에는 이런 소문이 있다. 김정일이 자기신분을 숨기고 지방에 내려가 한 노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노인은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며 담배쌈지를 꺼내 <노동신문>에 담배를 말아서 피웠다. 그 광경을 보고 김정일은 “다른 종이도 많은데 왜 <노동신문>으로 말아서 피우는가?”라고 물었다. 노인은 담배를 깊숙이 빨아 들이키며 “그래도 이놈의 <노동신문>으로 말아 피워야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김일성 사망 후 김일성을 대신하여 ‘위대한 영도자’의 자리를 차지한 김정일의 사진이 <노동신문>의 지면을 메웠지만, 담배를 제대로 말아 피울만한 종이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노동신문>이 담배종이로 쓰였다. 장마당에 나가면 신문지 한 장에 5원, 종이가 더욱 부족한 농촌에 나가면 <노동신문> 10장에 옥수수 1kg으로 교환되었다. 도시의 장사꾼들은 <노동신문> 꾸러미를 들고 농촌으로 가서 식량과 교환하기도 했다.
현실에 눈떠가는 북한주민들
북한주민들의 김부자에 대한 절대적 신앙심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일성이 죽은 다음인 1994년경이라고 생각된다. 보위부 책임지도원이라는 사람이 담배를 말아 피우는데 놀랍게도 그의 담배쌈지에 김일성의 초상화가 있는 <노동신문>이 일정한 크기로 잘라져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일반 주민들이 <노동신문>으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것을 통제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사고 중에도 비상사고였다. 담배종이로 잘라져있는 노동신문을 직시하자 그도 멋쩍은 듯 딴전을 피우면서 말을 돌리는 것이다. 그의 행동이 하도 부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는 체 넘어가고 말았다.
이렇게 북한은 내부로부터 확실히 변하고 있다. 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를 강요하는 허위와 날조를 북한주민들은 스스로 깨닫고 있으며, 외부세계의 영향으로 주민들의 의식 또한 날을 따라 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주민들은 담배연기와 함께 허무하게 불타 사라지는 <노동신문> 조각처럼 ‘김일성 교주의 영원한 영생’ 역시 허황된 환상이었음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