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상봉 사례

2000년 8월 제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이후 12차 상봉까지 11명의 납북자와 10명의 국군포로가 남쪽의 가족을 만났다.

북한은 납북자와 국군포로에 대해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북측에 보금자리를 꾸린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어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

그러나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 때부터 상봉대상자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출신을 포함시켰고 북측도 이들의 생사.주소확인과 상봉에 호응했다.

남측이 이산가족 생사확인자 명단에 납북자.국군포로를 끼어넣어 전달하면 북측이 이를 ’모른 체’하고 생사확인을 해 일부 가족의 상봉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11차례의 이산상봉에서 11명의 납북자가 남쪽의 가족을 만났고 납북자가 사망해 북쪽의 남겨진 가족들이 남쪽의 가족을 만난 경우도 2명이 있다.

또 납북자의 생사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6.25전쟁 때 헤어진 가족을 찾아 상봉을 한 경우도 1명 있었다.

납북자 상봉의 첫 테이프는 2차 상봉 때 동진27호 갑판장 강희근씨가 끊었다.

강씨는 남쪽의 어머니 김삼례씨와 상봉했으며 3차(2001.2)에서는 1969년 12월 납북된 대한항공(KAL) YS-11기 승무원 성경희씨가 어머니 이후덕씨를 만났다.

5차(2002.9) 상봉에서는 1968년 4월 나포된 창영호 선원 정장백씨가 어머니 이명복씨를, 6차 상봉(2003.2)에서는 1972년 12월 나포된 오대양 61호 선원 김태준씨가 어머니 박규순씨를 만났으나 김태준씨와 함께 납북된 형 의준씨는 사망으로 확인됐다.

7차 상봉(2003.6-7)에서는 1967년 5월 나포된 창성호 선원 윤경규씨가 어머니 이강삼씨를, 8차 상봉(2003.9)에서 동진27호 김상섭씨가 남쪽의 어머니 오말신씨와 각각 만났다.

9차 상봉(2004.3-4)에서는 동진27호 양용식씨가 아버지 양태형씨를, 1971년 서독에서 납치된 유성근씨가 함께 납치됐던 두 딸 경희.진희와 함께 형 창근씨와 동생 종근씨를 만난 데 이어 이번 12차 상봉에서는 동진27호 정일남씨가 남쪽의 어머니 김종심씨와 상봉했다.

납북자의 사망이나 확인 불가로 그의 재남가족이 북쪽의 가족을 만난 경우도 있다.

풍복호 선주였던 최원모씨가 생사확인 불가로 그의 아내 김애란씨는 4차 상봉 에서 반세기 동안 생사여부를 알지 못했던 북한에 사는 두 언니를 만나고 돌아왔다.

7차 상봉 때에도 오대양61호 선원 김용철씨의 사망으로 그의 아내 강경순씨가 북쪽의 언니와 조카를, 10차(2004.7)에서는 1968년 납북된 가덕호 박종업씨의 사망으로 그의 어머니인 윤영자씨와 형 박인천씨가 북측의 언니와 조카를 만났다.

납북자 상봉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1987년 나포된 동진호 선원의 상봉이 4차례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북한이 한 때 동진호의 송환을 적극 검토했던 데다 가장 최근 납북돼 생존자도 많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관대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 조선적십자회는 동진호가 납치된 지 6일만인 1987년 1월21일 “조사 후 돌려보내겠다”는 송환의사를 밝혔으나, 뜻하지 않게 김만철씨 일가 탈북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이들의 송환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편 국군포로는 2차 상봉 이후 10명이 남쪽의 가족들과 만나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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