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동수역 ‘NLL기준 원칙’ 변화조짐

남북 정상간에 이뤄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 간 본격 협의를 앞두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남북이 첨예하게 맞서온 NLL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서도 서해에 평화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발상의 전환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 지대의 핵심요소인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하는데 있어 NLL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1차 남북총리회담(14∼16일)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을 논의할 남북공동위원회를 제안한 뒤 국방장관회담(27∼29일)에서 공동어로수역의 위치 등에 대해 북측과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공동어로수역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정부 입장은 ‘NLL 기준 등거리ㆍ등면적 원칙’으로 여겨져 왔다.

등거리ㆍ등면적 원칙은 공동어로수역의 경계를 NLL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같은 거리만큼 떨어지도록 하고 어장의 면적도 남과 북이 같도록 한다는 것으로, 국방부는 그동안 장성급회담 등에서 이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원칙에 최근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북측과의 합의를 통해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등거리ㆍ등면적 원칙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어획량 등을 따져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해야 하는데 NLL을 기준으로 등거리로 한다면 그림이 잘 안 그려질 수 있다”고 말해 등거리 원칙이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 지금의 NLL 위쪽으로는 북측 육지까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할만한 물리적 공간이 없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등거리 원칙은 포기하되 공동어로수역을 NLL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동일한 면적으로 조성한다는 등면적 원칙만 고수하는 쪽으로 정부 입장이 정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17일 국정감사에서 ‘공동어로구역은 NLL기준으로 등거리.등면적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으냐’는 질문에 “아직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꼭 그것이 상호주의 원칙 아래 등거리ㆍ등면적으로 정해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유연성을 발휘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공동어로수역을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에 1곳, 백령도 북쪽과 서쪽을 중심으로 1곳 등 2곳을 설치하는 방안을 실무선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의 공동어로수역은 NLL 남쪽, 백령도 북쪽과 서쪽의 공동어로수역은 NLL 북쪽에 각각 같은 면적으로 조성되게 된다. 등거리는 아니지만 등면적 원칙은 지켜지는 셈이다.

그러나 북측이 이 같은 정부의 구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NLL을 기준으로 같은 면적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하자는 방안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지금의 NLL을 사실상 인정한다는 것이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해상 평화를 도모한다는 큰 목표를 위해 기존의 NLL에 연연해하지 말고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정부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NLL무력화’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정부가 공동어로수역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취할 지 주목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