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초상화 ‘최대한 웅장하고 자애롭게’

북한에는 공공건물이나 가정집에서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흔히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재난 속에서도 인민들이 이들 초상화를 먼저 구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초상화에 대한 당국의 관리와 주민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초상화는 어떻게 제작, 관리될까?

이철호(35, 1999년 탈북)씨는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김 부자의 초상화는 엄격한 원칙에 따라 최대한 웅장하고 크게, 자애롭게 그리고 일반인과 차별화시키면서 부족한 점은 지우고 긍정적인 면은 부각시킨다”고 전했다.

이씨는 평성예술대학 졸업 후 1993년부터 1999년까지 개천철도 미술창작사와 인민군25후방총국에서 김 부자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1호 창작가’로 활동했다.

그에 따르면 김 주석의 ’원본’ 그림은 만수대창작사에서, 김 위원장의 초상화는 조선인민군미술창작사에서 대부분 그려지고 여타 창작사에서는 여기서 나온 작품을 수작업으로 ’복사’한다.

이 복제도 미대 졸업 후 시험을 통과한 ’1호 창작가’만 할 수 있다.

1호 창작가는 미술 전공자들의 목표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고 미대 졸업생의 80% 정도가 1호 창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북한에서 활동하는 1호 창작가는 모두 2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특히 만수대창작사와 인민군미술창작사에는 주로 평양미술대학 졸업생들이 들어가고 그 밖의 미대생은 도(道)미술창작사, 철도미술창작사, 사회안전부미술창작사 등에 배치된다.

이씨는 “김 부자의 초상화 작업을 할 때는 최대한 정중하게 그려야 한다”며 단정한 옷차림을 갖추고 흡연과 잡담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른 모습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심할 경우 정치범으로 끌려가기도 한다면서 “같은 창작사에서 일하던 한 인민예술가는 술을 마시고 작업한 것이 발각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회고했다.

또 “김일성 위주의 작품에서 김정일 중심으로, 노동당이나 사회주의 등의 사회적 주제에서 군대·군사·통일 등 호전적인 방향으로 그림이 바뀌고 있다”며 김 주석의 그림은 줄여나가는 대신 김 위원장과 인민군의 모습은 부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각 창작사는 노동당 위원회에서 관리하게 되며 매달 당위원회 선전비서가 작품을 심의한다.

여기서 불합격된 작품은 다시 그리게 하고, 불합격 작품이 많이 나오면 1호 창작가 자격을 박탈하기도 한다.

김 부자를 주제로 한 ’1호 작품’에 들어가는 원재료는 모두 수입된 뒤 만수대창작사에서 다시 가공해 공급된다.

또 완성된 작품을 옮길 때는 기존 열차에 ’1호 작품 모심 열차’라는 칸을 별도로 마련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자동차와 안전원도 배정돼 있다.

공공건물에 걸린 작품은 해당 단위에서 6개월마다 보색(保色)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해 1호 창작가의 방문 작업도 잦다.

이씨는 “그림이 훼손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당 조직책임자가 처벌을 받기 때문에 순회(출장) 나가면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며 “1호 창작가는 통행증을 따로 떼지 않고 창작가 증명서만 제시하면 다른 지방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똑같은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재미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린 그림에 인사를 할 때는 일종의 긍지를 느꼈다”면서 “작품 할당량을 끝내고 봄, 가을에 보름씩 주어지는 야외 자유습작 기회와 국가미술전람회 출전 때는 작가로서 자유로웠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입국 후 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