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유훈 고집하면 김정은도 극복대상에 불과

29일 중앙추도대회를 끝으로 김정일 장례기간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났다. 김정일 급사 이후 북한 내부는 별 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북한 매체들은 김일성 사망 당시와 비슷한 내용과 형식으로 김정일의 사망을 애도했고 주민들도 여기에 호응해 통곡행렬을 만들어 냈다.


북한의 20대 젊은 후계자에 대해 밖에서는 불안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북한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김정은을 북한 권력의 유일 계승자로 선포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일을 최고사령관직에 추대하는 정론을 실었다. 노동신문 정론은 북한 매체 중에서 북한 당국의 입장과 노선을 가장 공신력 있게 대변한다. 빠르면 1월에도 최고사령관직에 오를 수 있다.


김일성 사망 후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넘어서야 사용했던 ‘경애하는 지도자’와 ‘위대한 영도자’ 같은 호칭을 김정일 사망 며칠만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 중앙위 수반 같은 그의 공식 지위를 암시하는 용어도 일주일이 안 돼 등장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다. 향후 정치일정은 권력 승계와 유훈통치를 겸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권력 승계는 수령 지위 승계를 정점으로 한다. 수령은 북한에서 절대권력을 의미한다. 때문에 공식 지위가 없어도 유일 지도자로 군림은 가능하다. 조기 승계 배경에는 그가 북한권력의 대표성을 갖는 공식 직위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보다는 아직은 부족한 권위를 현실 권력으로 메우려는 조급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추도대회를 끝으로 김정일의 육신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금수산기념궁전이라는 거대한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정일의 정치는 여전히 평양을 지배하며 북한의 앞날을 제어할 것이다. 실제 김정일 사망 직후 그동안 보여준 북한의 일산분란한 모습은 김정은이 아닌 김정일의 정치가 훨씬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수령 중심의 질서와 유고 대응 매뉴얼이 김정은을 지켜주는 상황이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 최대유산은 핵무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선군정치도 몇 차례에 걸쳐 지속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김정은은 당권과 군권을 집중시키는 절대권력자로 나서고 핵보유 정책은 유지하면서 선군정치를 관철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내부적으로 주민 단속 및 탈북자 처리 정책도 김정일을 뛰어 넘는 폭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3대멸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체포가 어려우면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졌다. 폭동진압 목적의 기동대와 정치대학 학생들까지 투입해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에 대한 공민증 검사, 짐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북한 간부들은 탈북자에 대한 유례 없는 탄압 강도가 김정은의 탈북자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사회질서를 흔들고, 외부 정보를 유입하며, 남한에 가서는 삐라 살포 등 반북활동을 해 아버지를 괴롭혀 병들게 한 악질분자들이라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 운구차량을 부여 잡고 울면서 그가 다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강한 연민을 드러낸 그가 북한 인민의 배부름과 개혁개방을 고민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정일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게 했다는 “위민이라니요? 인민은 무섭게 대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한다.


김정일의 절대권력을 승계하고 그의 유훈으로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은은 분명한 독재자다.  그가 김정일 시대의 계승과 발전을 앞세우는 이상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독재의 아류에 불과할 것이다. 그 가능성은 점점 현실화 되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언제까지 김정은을 상대로 개혁개방 유도 정책을 쓸 것인가? 우리의 대권후보들은 김정은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지금 행보대로 간다면 그도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의 극복대상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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