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굴욕의 날?’…무시당한 ‘회담 연장’ 요구

3일 오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백화원 영빈관에서는 김정일로선 기억하고 싶지 않을 2007년 최대의 ‘굴욕’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노 대통령의 숙소가 마련된 ‘백화원 영빈관’을 손수 찾은 김정일은 불쑥 “오늘 일정을 내일로 미루고, 하루 일정을 늦춰 모레 아침에 가는 게 어떠냐”며 회담을 하루 연장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김정일의 제안을 거부하고 예정된 회담 일정에 따라 4일 오후 귀경하겠다고 결정했다. 김정일은 “내일 오찬을 시간 품을 들여서 편안하게 앉아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식사하시는 게 좋겠다”는 말로 호응할 것을 바랐지만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헤프닝으로 끝나고 만 이 사건에 대해, 김정일로선 노 대통령이 설마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는 노 대통령과 김정일 사이 대화 내용에서도 감지된다.

김정일의 제안을 받은 노 대통령이 “나보다 더 센 데가 두 군데 있는데, 경호, 의전쪽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하자 김정일이 “대통령이 결심 못 하시냐, 대통령이 결심하시면 되는데…”라며 다소 불쾌한 표정을 내비쳤다.

일단 이유야 어찌됐든 노 대통령이 김정일의 ‘깜짝 제안’을 거부한 것은 매우 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깜짝 제안’이 남한 대통령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 하는 모습을 연출해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사전에 준비했다 미뤄진 행사를 모두 소화하고 싶어서였는지 그 속내는 알수 없다.

그러나 정상간 회담에서 사전 준비접촉도 없이 회담장에서 불쑥 일정 자체를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외교 관례상 맞지 않는 태도다. 물론 김정일의 이 같은 행태는 그동안 남북관계에 있어 남한 정부가 보여준 태도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난 10년간 인도적 대북지원에 총 1조7천644억원(민간포함)어치를 퍼줬지만, 정작 남북관계는 끌려가기만 했다. 대부분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해도 요구하면 들어주는 처지였다. 납북자 문제도 북한의 공허한 약속을 탓하기만 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북한은 고자세로 일관했다. 물론 북한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8월말 예정됐던 정상회담을 통보형식으로 10월 초로 미뤘고, 공개 의제도(내부 합의는 알 수 없지만) 설정하지 않았다. 2일 예정됐던 환영식 장소도 당일 오전에야 4.25문화회관으로 변경됐음을 전달해 왔다.

회담 일정도 ‘들쭉날쭉’ 예상하기 힘들다. 예정됐던 일정은 모두 김정일에게 맞춰 변경되기 일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납득하기 힘든 사실이다. 정상간 회담에서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한 명만 배석시킨 것도 외교 관례상 맞지 않다.

우리 정부는 이를 ‘북한사회의 특수성’이라며 문제삼지 않아왔다. 일국의 대통령이 이 같은 행태를 계속 간과한다면 스스로의 격을 낮추는 꼴이 된다. 노 대통령의 이번 회담 연장 제의 거부는 그나마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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