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연구] CEO 김정일―3 국방 우선의 경제관

김정일위원장과 박재경대장

사회주의 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경제에 대한 인식과 관점은 다른 어떤 변수보다 특히 중요하다. 과거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중국의 개혁·개방과정에서도 고르바초프와 등소평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이 체제 개혁의 실질적인 동력이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의 경제 인식은 말로만 보면 이랬다 저랬다 한다.

개혁·개방을 거론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조치들을 취하다가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바람이 불어오든 우리 당과 인민은 결코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것”(북한 잡지 ‘조국’. 2004.12 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체제 고수를 강조하다 너무 나간 듯해 보인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김정일의 경제관 중 일관된 것은 군수분야를 최우선시하는 시각이다. 경제적 관점으로만 따지면 크게 보아 1990년대 초반까지의 ‘사회주의 체제 유지 우선’에서 1998년쯤부터의 ‘이윤 추구 보장’ 쪽으로 이동해왔다.

과거에는 물론이고 99년에도 김정일은 국방공업 발전을 강조했다. 그는 “군사를 중시하는 국방공업에 계속 큰 힘을 넣어야 합니다.… 군사와 국방공업을 떠나서는 경제강국도 건설할 수 없으며 나라와 인민의 안녕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사가 첫째이고 국방공업이 선차(先次·우선)입니다”라고 말했다. 99년 1월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들과 나눈 담화의 한 대목이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자신의 경제정책 구상과 방향을 ‘선군(先軍)시대 경제건설노선’으로 이름 붙였다. 이는 “국방공업의 우선적 발전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건설노선”(노동신문 2003.11.12)으로 요약된다. “사탕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김정일의 평소 언급과 맥이 닿아 있다. 북한의 선전 매체들은 “사탕은 생활에 필요한 주식물 이외의 식품을, 총알은 군수품을 대표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청년전위 2001.11.9)라고 해석하고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경제가 어려운 때에 자신이 공장이나 농촌 등 민생현장을 외면하고 군 부대 일변도의 시찰 행태를 보인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았음을 역설했다.(평양방송 2002.3.4) 심지어 김정일은 2000년 정초 “(김일성 사후) 선군정치를 한 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면서 “내가 경제사업에만 힘을 넣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망했을 것”(민민전방송 2001.4.26)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방분야를 빼면 달라진다. 92년 1월에 발표한 “사회주의 건설의 력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이라는 김정일의 담화는 사회주의 정권을 떠나서 사회주의 경제제도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김정일이 97년 중반까지 발표한 주요 논문 및 담화의 키워드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고수다. “당사업과 경제사업에 힘을 넣어 사회주의 위력을 더욱 강화하자”(93. 2), “사회주의는 과학이다”(94. 11)라는 것들이다. 분배를 희생해서라도 사상 무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이런 인식은 97년쯤부터 약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97년 9월 발표한 ‘당면한 경제사업의 몇 가지 문제’라는 김정일의 담화는 “국가에서 농민들과 약속한 것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북한 주민들의 집에 딸린 텃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직접 처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표현도 나온다. “정치 도덕적 자극을 앞세우라고 하여 물질적 자극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성대국론’이 본격 제기된 98년 이후에는 보다 구체화됐다. 당면 최대과제로 경제활성화를 통한 경제강국 건설이 제시됐다. 이는 ‘김정일시대’를 상징하는 98년 헌법수정에서도 반영됐다. 수정헌법은 경제사업의 내각권한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에 원가·이윤·수익성 등의 가치법칙을 연상시키는 용어를 적극 수용했다. 99년 10월 자강도의 ‘압록강타이어공장’ 현지 지도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여기서 김정일은 “사회주의 시장이 없어지고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자본주의 무역을 하고 있는 조건에 맞게 기업소 경영관리는 사회주의 원칙에 기초하고, 무역은 자본주의 나라들과 상대해야 한다”고 했다. 경영은 사회주의식으로, 무역은 자본주의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2001년 1월 이른바 ‘신사고’ 노선과 중국 방문을 통해서는 더 나갔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강조하게 됐다. “끊임없이 전진하는 현 시대의 요구에 맞게 경제를 추켜세우고 발전시키자면 대담하게 공업을 최신설비와 기술로 장비시켜야 한다”(노동신문 2001.1.4)고 언급했다. 곧이어 1월 중순 상하이 방문에서는 중국 경제와 발전을 ‘천지개벽’이란 말로 극찬하더니 “이번에 북으로 돌아가면 젊은 피로 싹 바꾸겠다” 고도 했다.(실제 경제전문가를 눈에 띄게 교체하지는 않았다.)

북한 당국은 2003년 6월 10일에는 ‘경제 개혁’이란 용어도 썼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 개편한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발표한 자리에서다. 최근 들어서는 과학기술 발전과 공장설비 현대화도 유독 강조되고 있다. 2003년 11월 10일자 노동신문에서 김정일은 “현 시기 과학기술을 빨리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혁명과 건설에서 가장 절박하고 필수적인 요구로 나서고 있다.… 당의 과학기술중시 노선을 관철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는 과학기술과 생산을 밀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군사’를 우선시 하기 때문에 김정일의 인식과 노선을 실용주의 노선이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구나 최근의 경제개혁을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출처:nkchosun.com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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