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김정은 왕조의 장성택 변수







▲김정일과 장성택이 지난 23일 방북중인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과 찍은 사진.ⓒ연합

북한 김정일이 23일 북한 내 이동통신 사업자인 이집트의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올해 들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배석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대북경협을 담당해온 현대그룹 회장단 일행 이외에 김정일이 외국 기업인을 접견한 사실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외국기업의 투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 입장에서 해외 투자유치는 통차지금 확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장성택이 이 자리에 동석한 점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해외투자 유치를 통한 김정일의 통치자금 관리에도 장성택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택은 지난해 7월 만들어진 북한의 외자유치 전담창구 ‘합영투자원회’를 총괄하면서 중국의 대북 투자 계약을 집중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수도건설부장 직책으로 평양의 10만호 살림집 건설을 책임지고 있다.


정보 당국이 파악한 바로는 중국에 진출한 북한 무역기관들 상당수가 장성택 라인으로 교체됐다고 한다. 기존 업자들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장성택과의 연줄을 찾는데 혈안이 돼있다고 한다. 북한 내부 돈줄이 장성택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장성택은 지난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다. 군내 인맥이 취약한 그에게 영향력 확대를 위한 디딤돌이 생긴 것이다. 그는 당 행정부장으로 체제 유지의 손발 역할을 하는 국가보위부와 인민보안성, 검찰에 대한 당적 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공식 직책뿐만 아니라 그는 김정은의 후견인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후견인 역할은 어떤 공식 서열도 압도한다. 일부에서는 조력자 역할에 그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통치술과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의 후계 과정을 지근 거리에서 돕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 김정일 시대에 접어 든 이후 장성택과 같은 지위를 누려본 간부는 없다. 김정일 자체가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권력을 분점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을 대신해 체제를 관리한 장성택에 대해서는 유례 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김정일의 현지시찰 수행 빈도 1위는 장성택과 그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동생인 김경희다. 권력 세습 와중에 믿을 것은 가족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3대세습을 공식화 한 작년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김경희의 부각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이러한 정황으로만 본다면 장성택은 북한에서 김정일, 김정은에 이은 3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권력 3인자 역할은 김정일 사망시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권력의 속성 자체가 분점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김정일이 자신의 부재를 직감하고도 장성택이라는 위험 변수를 그대로 둘지에 대한 의문이다. 장성택은 여기서 첫 번째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만약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이 완결되지 않은 조건에서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할 경우에는 북한 권력에서 장성택 변수는 더욱 커진다. 김정일이 짧은 기간에 갑작스럽게 사망한다면 북한 권력은 김정은-장성택 공동 권력 체제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김정은은 아버지의 유고 상태에서 장성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권력의 안정감을 가져올 수 있지만 권좌에 대한 위기감은 고조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 간의 협력과 견제는 필연적이다. 김정은은 해가 갈수록 자신에게 권위와 권한을 고도로 집중시킬 필요성을 느낄게 될 것이다. 


김정은이 권력을 확고히 장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성택의 존재를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때가 오면 권력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장성택이 김정은에게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김정은의 불편함은 가시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사활을 건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이 ‘김씨 왕조’에서 ‘장씨 권력’ 체제로 변화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장성택은 점잖으면서도 사리 분별이 빠르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6군단 반란 사건 주모자를 처형할 때도 군단 정치위원 등 핵심 주동자들은 그가 직접 권총을 당겼다. 치밀하고 냉철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는 권력의 이해관계를 넘어 이미 몰락을 향해 가고 있다. 냉정하고 사리분별이 빠른 장성택이 언제까지 김정은 뒤에 엎드려 있을지, 아니면 먼저 결단을 내리고 움직일지, 권력의 끈을 부여잡고 김정은과 함께 몰락할지, 김 씨 일가를 축출하고 생존을 위해 개혁개방으로 나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