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1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을 발표함에 따라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김정은 체제의 ‘첫 지도부’가 완성됐다는 평가다. 다만 대의원 명단 교체비율이 전기(前期) 대비 폭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변화’보다는 ‘안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이 발표한 대의원 선거 결과에 따르면 이번 대의원 교체비율은 전기대비 10% 증가한 55%로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교체비율이 45%, 2003년 제11기는 50%에 비해 대폭적인 세대교체는 단행하지 않은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대의원 선거 ‘제111호 백두산 선거구’에서 처음으로 대의원으로 추대됐다. 김정은은 대의원 선거를 통해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전면에 배치했다. 또한 김 씨 일족의 ‘가신(家臣)그룹’들을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려 급격한 세대교체보다는 체제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백두혈통’의 원로인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과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는 각각 제30호 용흥선거구와 제285호 태평선거구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김정은과 함께 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여동생 김여정은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의 군부 핵심인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리영길 총참모장, 장정남 인무력부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수길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조경철 보위사령관 등이 모두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려 건재함을 드러냈다.
특히 최근 김정은 수행 빈도가 높았던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휘 제1부부장, 박태성·황병서·마원춘 부부장 등은 이번에 처음으로 대의원 명단에 올려 김정은 시대의 떠오른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 씨 일족의 가신그룹도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리을설 인민군 원수 등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오래된 충신들도 제13기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은 시대에 선택받지 못한 권력층은 선명했다. 김정일 군부의 핵심이었던 리영호 전 군 총참모장, 현철해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명국 전 작전국장,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로성실 전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장 등은 대의원 명단에서 빠졌다.
백두혈통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처형된 장성택 라인의 인물들이 상당수 건재하다는 점으로 미뤄 당분간은 점진적 변화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장성택 측근으로 분류됐던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 로두철 내각 부총리,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경우 명단에 포함됐다.
다만 지난 1월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신년사 관철 평양시 군중대회 이후 두 달 넘게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문경덕 당 비서는 명단에서 빠짐에 따라 해임 또는 숙청이 거의 확실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대의원 명단과 관련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는 데일리NK에 “2009년 김정은 시대가 본격 개막함에 따라 김정은 체제에서 처음으로 실시되는 이번 대의원 선거를 통해 새로운 인물로 교체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친족이나 가신그룹 등을 통해 체제의 안정감을 추구하려 한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한 고위 탈북자는 “장성택 측근이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다 자칫 내부 불안정 요소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들은 언제든지 숙청할 수 있다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 한번 더 기회를 주는 차원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