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청년역’에서 만난 사람들

▲열차 ‘내연 602’가 출발에 앞서 정차해 있다.ⓒ데일리NK

남북열차 시험운행일인 17일, 남측 참가단은 역사적인 날에 들떠 있었다. 잠을 설친 참가단은 이른 아침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청년역까지 관광버스를 타고 달렸다.

북측 도로 풍경은 남측과 사뭇 달렸다. 남측의 우거진 숲과 달리 북측은 민둥산이 대부분이었고 간간히 늙은 소나무가 보일 뿐이었다.

◆육로로 금강산청년역으로 출발

도로 주변은 대부분 논이나 밭이었으며 북한 주민들은 농사일에 바빴다. 묵묵히 남측 관광버스를 감시하듯 응시하는 북한 군인들과 달리 일손을 멈추고 바라보는 몇몇 주민들이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한 마을을 통과할 때 환한 웃음으로 손을 힘차게 흔드는 북한 어린이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파란색 운동복 차림의 북한 어린이는 남측 사람들을 보고 신기한 듯 웃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절반 쯤 달렸을까.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논과 밭 주변 언덕에 다연장포와 자주포가 들어가 있는 여러개의 벙커가 있었다. 벙커옆에서 졸고 있는 북한 병사가 잠시 시선을 집중시켰다.

◆남측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북측 참가단

▲금강산청년역 전경 ⓒ데일리NK

20여 분을 더 달려 북측의 금강산청년역에 도착했다. 금강산청년역에는 북측 50여명의 참가단과 역 인근에 위치한 영웅고성고등중학교 학생 등 100여명이 남측 대표단을 환영했다. 학생들은 남녀 구분 없이 얼굴이 까무잡잡하게 그을려 있었다. 학생들은 동원됐다는 것을 반영하듯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

북측 참가단의 분위기는 남측과 사뭇 달랐다. 북측 김용삼 철도상과 박정성 철도성 국장 등 몇몇 간부만이 역사적인 날을 만끽하며 남측 참가단과 분위기를 맞출 뿐 여타의 참가단은 다른 일에 바빴다. 열차원인 북측 보장성원은 50명 가운데 20여명이었다. 참가단 대부분은 기자들과 열차 운행과 관련된 행사 진행 요원이었다. 남측 참가단과 함께하는 북측 참가단은 10명이 채 안돼 보였다.

행사 요원들은 역 주변 사진 촬영을 못하도록 했으며 특히 북측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감시했다. 이를 반영하듯 북측 참가단은 남측 인사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북측 참가단과 동원된 학생들 모두 하나같이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다.ⓒ데일리NK

▲동원된 학생들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다.ⓒ데일리NK

기자는 북측 기관사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행사 내내 그의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종 인터뷰를 거부했으며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여러 차례 그에게 소감 등을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의 옆에서 여러 차례 말을 걸자 이를 본 북측 요원이 기자에게 “인터뷰 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 이러면 어떻게 합네까”라며 나를 제지했다.

그러나 기념행사가 끝나갈 무렵 기관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측 이용섭 건교부 장관은 탑승에 앞서 기관사에게 소감을 물었다. 소감을 묻자 기관사는 이 장관 옆에 있는 김용삼 철도상을 힐끗 보며 눈치를 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그는 “6∙15정신에 기초해 북남 통일을 앞당기는데 이바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뿐이었다.

◆57년 만에 혈맥을 잇는 열차시험운행

금강산청년역에서의 행사를 마치고 마침내 ‘내연 602’ 열차는 ‘뿌우우’ 기적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남쪽에서는 경의선 열차가 문산역에서 개성역으로 북쪽에서는 동해선 열차가 금강산청년역에서 제진역으로 출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열차가 서너 차례 덜컹거리다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역을 빠져 나갔다. 행사 내내 무표정했던 북측 학생들은 이번에는 어색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배웅했다. 역 주변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출발하는 열차를 호기심에 찬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열차가 출발하자 학생들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데일리NK

▲남북 기관사가 열차 핸들을 같이 잡고 있다.ⓒ데일리NK

이내 열차는 역을 벗어나 57년 만에 맨살을 드러내는 철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열차는 30km정도의 느린 속도로 차분히 운행됐다. 열차에 오른 남북 승객들은 서로 환담을 나눴다. 서로 어색한 듯 말을 건넸지만 금세 친해져 역사적인 열차운행에 대해 서로의 소감을 나눴다.

열차 내부는 1970년대 남한의 열차를 연상케 하는 낙후된 느낌이었지만 깔끔하고 소박한 분위기였다. 북측인사와 남측 인사가 4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마다 설치된 선반에는 북측이 준비한 음료수와 과일이 놓여 있었다. 명칭이 생소한 딸기 단물 1병, 일경 금강수(금강산 샘물), 사이다 1병 등이 준비돼있었다. 북측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열차 내부의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눈에 띄었다. 객차 출입구 문 정중앙 위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기관차 측면에 있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라는 붉은 현판과 오버랩 됐다.

남측 승객들은 시종 바깥 풍경에 시선을 놓지 못했다. 반세기만에 남측 참가단에게 동해선 철로 주변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바깥 풍경은 금강산 육로와 큰 차이는 없었다. 드물게 숲이 우거진 산이 있었지만 논과 밭, 민둥산 등이 보였다.

간간이 군부대가 보였고 연병장에 수십명이 모여 철봉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특히 대공포가 배치되어 있는 방공호 바로 옆 논에서 일 하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삼일포역을 지나자 멀리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한 아름다운 돌산과 북한의 명승지인 삼일포와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런 이색적이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한번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북측은 외부 모습을 절대로 촬영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북측의 완고한 요청에 의해 남측 관계자는 여러 차례 북측 지역을 촬영할 수 없다고 주지시켰다. 기자는 북측 지역의 이색적인 풍경을 찍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사진을 찍을 경우 모든 일정이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관계자의 말이 떠올라 찍지 못했다.

◆감호역에서의 세관검사, 사진 일일이 검사 받아

▲북측이 준비한 음료수와 과일 ⓒ데일리NK

▲열차 내부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데일리NK

열차는 감호역에서 세관검사를 받기 위해 멈췄다. 북측의 마지막 분계역으로 통행 세관검사가 이뤄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아니나 다를까 북측은 세관검사를 하면서 남측 기자들과 참가자들의 카메라를 일일이, 사진 하나하나를 직접 검사했다. 외부 지역 사진이 있을 경우 가차 없이 지워버렸다.

세관 검사를 마친 뒤 열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열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곧 DMZ에 들어섰고 역사적인 군사 분계선을 통과했다. 객차 내에선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침내 열차시험운행 종착역인 남측 제진역에 도착했다. 요란한 고적대 음악소리와 한반도기를 흔드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열차를 반기자 그제서야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북측 대표단은 남측이 준비한 환영 행사와 만찬에 참석하는 등 3시간 정도 머문 뒤 열차를 타고 북측으로 돌아갔다.

반세기가 넘게 단절됐던 열차가 휴전선을 통과하는데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민족의 혈맥을 잇는다는 의미를 부여받기에는 충분했다. 분단을 상징했던 끊어진 철길이 이제는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는 교두보가 된 것이다.

기자는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열차시험운행에 모든 일정을 처음부터 되짚어 봤다. 반세기 넘게 단절됐다가 개통됐다는 의미에서 하루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북측이 승인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한번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이번 열차시험운행이 과연 역사적인 일인지, 통일의 시작인지 아리송한 의문이 남았다. 먼저 사람들부터 자유롭게 만나야 통일인지 뭔지 할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날은 언제쯤 올까.

▲남북 참가단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데일리NK

▲역 주변의 단층집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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