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일찍 눈뜬 청소년기

▲청소년 시절의 김정일 출처:김정일 문헌

김정일은 평양 제1초급중학교와 남산고급중학교(고교과정)에 다녔다. 당시 김정일은 평양 중구역에 있는 김일성의 창광산 구 관저(일명 5호댁)에서 살았다. 김정일, 경희, 경진, 평일, 영일 등 김일성의 다섯 자녀가 모두 남산고급중학교를 거쳐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갔다.

초급중학교 2학년 때 김정일은 학교 소년단 위원장에 뽑혔고, 남산고중에서는 민주청년동맹 부위원장(위원장은 교사가 맡는다)을 지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일 전기들은 그의 학업성적이 전 과정 전 과목에서 최우등이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적고 있다.

김정일의 학과성적이 정확히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전 남산고중 교원 출신 증언자와 김정일과 중․고등학교 생활을 함께 한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축구와 낚시, 사냥에 관심이 있었고, 남산고중 시절 이미 오토바이나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김정일이 스피드를 즐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훗날 김정일의 첫 번째 동거녀가 되는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은 김정일관저에 들어가 김정남(성혜림과의 사이에 태어난 김정일의 큰아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성혜랑은 북한을 탈출하여 서방의 한 국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과거를 회고하며 쓴 책 <등나무집>에는 청소년 시절의 김정일을 ‘남산고중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시끌벅적 이기영(조선작가동맹위원장, 성혜림의 시아버지)네 골목으로 들어서곤 하던 10대의 수상님 아들’ 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어릴 때의 내성적인 성격도 이 무렵 바뀌었다. 러시아에 사는 그의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김정일이 아무 친구와도 잘 사귀었고 무엇이든지 정열적으로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과공부가 김정일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러한 김정일을 걱정한 김일성은 여느 아버지처럼 아들의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가(家)의 측근이 증언한 일화가 있다.

김정일이 남산고중에 다닐 때다. 하루는 김일성이 정일의 담임교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담임이 오자 김일성은 김정일을 데리고 관저 앞마당까지 나가 정중히 맞이했다. 김일성은 자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서 담임에게는 담배를 피우도록 권했다. 김정일이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대화가 김정일의 ‘학습정형’(학과공부)으로 옮겨갔다. 담임은 김정일에게 “오늘 각 과목의 숙제가 무엇이며, 어느 정도 했느냐”고 물었다. 김정일이 우물쭈물 했다. 그 날 각 과목의 숙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김일성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어려워 마시고 한 달에 한번은 꼭 들러 주시오. 오늘 방문하시지 않았으면 나는 이런 것도 모를 뻔했습니다.”

김일성이 담임을 집으로 불러 정중하게 모신 것은 김정일이 수상의 아들이란 점 때문에 우쭐해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남산고중 재학 중일 때인 1959년 1월, 김정일은 소련공산당 제21차 대회에 참가하는 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소련을 방문했다. 이때 김일성의 서기였던 황장엽도 수행했다. 당시 황장엽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총비서) 서기실 서기였다. 우리식으로 하면 대통령 수석비서관 정도에 해당된다.

황장엽에 따르면 소련 방문기간 중 열일곱 살의 김정일이 김일성의 일정을 자신이 주도해서 짤 정도로 ‘맹랑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다음은 황장엽의 회고다.

그는 공식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숙소에 남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는 내게도 남아달라고 부탁하고는 했다. 그와 얘기를 하면서 받은 인상은 그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권에 대한 욕망이 상당히 컸다는 것이었다.

저녁에 김일성이 돌아오면 김정일은 부관들과 의사, 간호원 등 수행원들을 집합시켜놓고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받고 이런저런 지시를 하곤 했다. 김일성을 수행한 대표단 중에는 중앙당 정치국원들도 많았는데, 김정일이 김일성의 사업을 직접 관장하고 부관들과 수행원들에게 구체적으로 일을 지시한다는 것은 상식을 초월한 행동이었다. 나는 어쩌면 이 소년이 자기 삼촌(김영주)을 내쫓고 권력을 승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

“김정일이 자기 삼촌을 내쫓고 권력을 승계할지도 모른다”는 황장엽의 예견은 나중에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김정일은 70년대에 들자마자 본격적으로 삼촌 김영주와 권력투쟁을 벌인다. 이 권력투쟁은 ‘누가 더 김일성을 우상화하는가’ 하는 데 집중되었고, 이 ‘게임’에서 김정일은 김일성과 빨치산 노간부들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된다.

요컨대 김정일은 우리나라 재벌 2세들처럼 그저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황태자’가 아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는 김일성의 사심(私心)과 김정일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욕망이 함께 어우러져 권력 대물림이 이뤄진 것이다.

The DailyNK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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