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소 철문 열리자 죄인 시체부터 눈에 들어와”

아침부터 칙칙한 잔비가 내리는 교화소(감옥, 징역형을 받은자들을 구금하는 시설) 철문 앞으로 옷이 축축이 젖은 채 초라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19살 된 한 소년이 있다. 그가 본의 아니게 살인죄를 짓고 교화소에 입소하는 나 리준하다.

터벅터벅 걸어서 철문 앞에 멈춰서 보니 어마어마하게 크고 시커먼 철문이 앞에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서 있는데 갑자기 공기를 째는 날카로운 초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가리 떨구라!”

엉겁결에 머리를 숙였는데 ‘꽈르르릉~~’ 하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교화소 철문 열리는 소리였다. 그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하며 뒤통수에 타격이 왔다.

“이건 어디서 굴러먹던 어방둥이(모자란 사람) 새끼야?”
“대가리 숙이고 빨리 기어 들어가!”

아픔을 생각할 사이도 없이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데 뒤에서 그 철문 닫히는 아츠러운 소리에 머리끼가 오싹해왔다. ‘꽈르릉~ 꽝~’ 너무 무서워 눈도 뜨지 못한 채 서 있는데. “야 임마! 날 따라와” 하는 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한 보안원이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돌아서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무작정 걸음을 옮기며 이리저리 살펴보니 오른쪽에 크고 시커먼 붓글씨로 <도주자는 쏜다!>, <도주는 자멸의 길이다!>라는 글이 무시무시하게 써 있었다. 두려움에 떨며 계속 따라가면서 왼쪽을 보니 팔에다가 위생표(+)를 붙인 죄인들이 자주82호라는 큰 차에다가 통나무 같은 것을 마구 적재하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무인 줄로만 알았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죽은 죄인들의 시체였다. 순간 가슴이 후두둑 뛰면서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는 죽었구나’ ‘감옥에 가면 80%는 모두 허약에 걸려 죽는다던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안원을 따라서 나는 ‘사’라고 불리는 보안원들의 사무실 앞에 이르렀다. 그 보안원이 들어가면서 뭐라고 말을 하자 곧 소위를 단 군의라는 자가 나왔다.

“돌아 섯! 바지 내렷!”

집안도 아닌 밖에서, 그것도 여러 죄인들이 지나다니는 장소에서 바지를 벗으라고 하니 참 기가 막혔다. 주춤거리다가 팬티만 남겨두고 바지를 벗었다.

뒤에서 노려보던 군의라는 자가 갑자기 내 급소를 걷어찼다.

‘악~’

너무 큰 통증에 허리를 펼 수 없어 꼼짝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군홧발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억울하고 분하기가 말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코와 입으로 피를 쏟으면서 팬티를 벗고 위생검열을 마쳐야만 했다.

렌트겐(X-ray) 촬영실에 가서 촬영까지 마치고 나자, 그 보안원은 “야, 신입반장! 이 새끼 입소시키는 문건 작성해!” 하고는 날 데리고 신입반이라는 데로 데려갔다.

뒤따라가면서 보니 감방 복도에 연기가 꽉 차서 눈을 뜰 수 없었다. 각 감방을 데우는 화구간(불을 떼는 곳)이 복도에 있는데 불이 잘 붙지 않아 연기가 심하게 났었다.

이윽고 신입반이라고 쓴 복도 한 끝에 있는 감방 앞에 이르렀다. 그자가 문을 열고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기에 나도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신을 신은 채로 들어섰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나의 귀뺨을 때렸다.

“이 새끼 어디라고, 신발 벗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군의라는 새끼한테 얻어맞은 것만 해도 분해 죽을 지경인데, 같은 죄인이 날 죄인 다루듯 한다는 생각에 분을 참을 수 없어 주먹을 휘둘렀다. 그자가 피를 뿌리며 방바닥에 엎어지자 앞에 앉아 있던 8명의 죄인들이 나에게 몰매를 안겼다.

구류장에서 150일을 앉아 있던 터라, 다리맥이 다 풀린 나는 저항도 못하고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 너무 목이 말라 눈을 떠보니 병방(수인들 치료실)이라는 곳이었다.

아마도 정신을 잃었던 나를 여기에다 눕혀놓은 모양이다. 너무도 분하고 억울하여 입술만 깨물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위생원(수인이 맡아서 일한다)이 와서 맥을 짚어보는 것이었다.

“너 몇 살이냐?”
“19살입니다”
“너무 어리구나. 어린놈이 무슨 죄를 지었냐? 도적질?”
“아닙니다”
“그럼?”
“145조 2항입니다”
“음, 어쩌다가 어린 나이에 살인을 쳤냐?”

내 입으로는 도저히 사람을 죽였다고 할 수가 없어서 법조만 얘기해 줬는데 그 위생원은 알고 있었다.

“위생원도 살인으로 들어왔습니까?”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침을 잘못 놔서 사람이 죽었다. 실수로 간을 찔렀거든. 원래는 의사였다”

가슴팍을 보니 리학모라고 쓴 이름과 죄수번호가 보였다.

“여기서 4년을 살았다. 이제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
“그래요?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허~ 좋기야 좋지”

“준하야 여기서 살아 나가려면 참는 법을 배워라! 음~ 여기 이런 말이 있다. 못 본 척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면 살아 나간다. 내 보기엔 너도 사람 됨됨이가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살아서 여기를 나가겠거든 오늘 같은 행동은 삼가해라. 옆에서 너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고 또 네가 자리를 잡았는데도 계속 억울하다면 싸우고 분하면 분노를 터뜨려라. 그러기 전에는 절대 니 맘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두 겉보기엔 다 거친 죄인들 같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집단인 만큼 정이 흐른다”

잡부 일을 하는 죄인이 와서 의사 선생을 찾는다고 알려주자 그는 곧 나갔다. 위생원은 나갔지만 웬일인지 그가 한 말이 귀에 쟁쟁했다.

“사람들이 사는 집단인 만큼 정이 흐른다”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삶의 희망이 보일 듯했다. 한참 누워있노라니 전날 저녁 기차역에서 눈물짓던 어머니의 얼굴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지금 어머니는 뭘 하고 있을까?’

내 생각은 어느새 고향을 떠나던 그날의 기차역으로 이어졌다. 족쇄를 차고 두 명의 계호원과 함께 기차역 보안원 대기실로 들어가던 나는 친척을 배웅하러 나왔던 친구 영춘이를 만났다.

“준하야!”

나를 보자 반가움에 달려오던 영춘이가 계호원들의 싸늘한 눈총을 받고는, 눈이 둥그래서 나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를 호송하던 계호원들이 말을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내가 떠나기 전에 어머니를 만나면 혹시 도주라도 할까 두려웠는지 심리적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집에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눈물이 글썽해 있던 영춘이가 내 눈짓을 보고는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우리 엄마한테는 물론 길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라도 알리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다행히 그날 내가 타고 떠날 기차는 사정에 의해서 1시간 반 동안 지연되었다.

영춘이가 어머니와 함께 제일 먼저 도착하고 그 뒤로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님들 몇 분, 어머니 친구들과 동네 아주머니들이 도착하였다.

계호원들은 역내 보안원실 문을 걸어 잠그고 만나지 못하게 하다가 담배와 술 같은 뇌물을 받고 나서야 만나는 것을 허락하였다.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눈물만 흘리며 말을 못했다.

“울지 마시오, 어머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앓지 말구 건강해야 합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일 뿐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준하 엄마! 울지마오. 우리 준하는 어릴 때부터 돌 꼭대기에 올려놔도 살아날 놈이라고 했는데 어딜 가든 살아올 거요”

모두들 고무와 격려의 말로 어머니를 위안했고, 떠나는 나에게 힘을 주었지만 나는 그분들을 떳떳한 눈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제발 이 순간이라도 족쇄를 좀 풀어주시오”

어머니의 간청을 듣고 성혁 계호원이 마뜩치 않은 눈으로 보다가 마지못해 내 손목의 족쇄를 벗겨 주었다.

“영춘아, 성준아, 그리고 광일아, 내가 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라. 앓지 말고! 부모님들 말씀 잘들어라! 그리고 우리 엄마 나 올 때까지 니들이 잘 좀 돌봐드려라”

“준하야, 어머니 걱정말구 가서 몸조리 잘해라. 교화소라는 델 가면 다들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던데……. 기다릴 테니 죽지 말고 꼭 살아가 돌아와야 한다”

친구들은 물론 바래주러 나온 모든 분들이 걱정해주고 나름대로 힘을 주었다. ‘빵~’ 하고 경적이 울렸다. 나는 반쯤 열린 창문으로 족쇄를 찬 손을 내밀고 모든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보았다.

“모두들 앓지 말고 몸 건강히 계십시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따라오면서 “준하야~ 준하야~” 하고 부르짖었다. 기차가 점점 속력을 내는데도 어머니는 내 손을 더 억세게 틀어쥐었다.

‘이러다가……’ 하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나서 얼른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 앉아 버렸다.

“준하야~”

순간 나는 이때까지 참고 참았던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머니의 애원에 찬 부르짖음이 귀전에서 멀어져 갈수록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격정으로 목이 메여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누군가 불을 붙여 담배를 입에 물려주기에 정신없이 빨아들였다.

한참 눈물을 떨구며 담배연기를 삼키고 나니 마음은 좀 진정되는 듯했지만 그래도 이 찢어지는 가슴을 어찌하랴. 내 마음이 이리도 아플진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교화소로 보내는 어머니의 그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며 열아홉 해를 남편 없이 혼자 살면서 오직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산 어머니. 먹을 것이 없어서 온 가족이 하루아침에 굶어죽곤 하던 그 어렵고 힘든 고난의 행군 시절 당신은 굶어서 얼굴이 부석부석해지면서도 내 죽그릇에 당신의 몫을 덜어 주던 어머니,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사랑하는 자식을 다른 데도 아닌 교화소로 보내야만 하는 어머니의 그 심정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날 역전에서 자식을 애타게 부르며 철길 옆에 엎어져서 우는 어머니를 보고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정신이 들자 신입반장이 나를 다시 신입반으로 데리고 갔다.

“이 개새끼야, 맞고 나니 정신이 좀 드냐? 맛 좀 더 볼래?”

참았다. 아니 참아야만 했다.

“이제야 풀이 좀 죽었구나. 이 새끼야 신임반장 3년 하면서 너 같은 새끼는 처음 본다. 어디다 대고 감히 반장한테 대들어?”

한참 핏대를 돋우던 그는 죄명이 뭐냐고 물었다.

“145조 2항입니다.”
“흥~ 살인자 새끼니까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뎀비지.”

그래도 참았다. 기운이 없기도 했다. 이어 내 이름, 집주소, 나이, 친척관계 등을 물어 문건을 만들어서는 나가버렸다.

“준하! 너 저기 제일 뒤에 가서 앉아라.”

부반장이라는 사람이 지정해주는 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머리를 깎아야 하니 또 옷을 벗으란다. 나는 구류장에 가위가 없어서 머리를 깎지 못하고 왔었다. 시키는 대로 옷을 벗고 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 가 앉았다.

쑥덕쑥덕.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 내 머리카락이 그렇게 아깝다고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다. 반질반질하게 중머리를 하고 앉아 있노라니 창문 짬 새기로 들어오는 찬 기운에 머리가 시렸다. 내 교화소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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