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 재일교포 2세에서 北 ‘퍼스트레이디’까지 등극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에서는 최소한 고영희가 1998년부터 군부대 등 김정일 현지시찰에 동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온다./RENK

북한 당국이 3대세습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작한 기록영화 ‘선군조선의 위대한 어머니’의 주인공 고영희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다.


1952년 6월 26일 일본 오사카에서서 태어났다. 고영희의 출생 당시 이름은 ‘고희훈’으로 ‘다카다(高田)히메(姬)’라는 일본이름도 갖고 있었다. 북한으로 이주한 후 ‘고영자’로 이름을 바꿨다가 이름안에 ‘자(子)’를 쓰지 못하게 했던 북한 당국의 정책에 따라 마지막으로 ‘고영희’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제 식민지시대 일본 육군이 직할하는 히로타 재봉소에 근무하던 고경택으로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던 밀항선박을 운영했던 것이 탄로나면서 1962년 고영희를 데리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였던 고영희는 1970년대 ‘기쁨조’로 활동하다가 김정일의 눈에 띄어 유선암으로 사망한 2004년까지 김정일과 동거하며 정철, 정남, 여정 등 2남1녀를 낳았다.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에서는 최소한 고영희가 1998년부터 군부대 등 김정일 현지시찰에 동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온다.


고영희는 특히 김정일의 목숨을 구하면서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년간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함흥(72호)초대소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김정일은 혼자 산책을 하다가 경호부관이 몰래 음주하고 있는 모습을 적발하고 불호령을 냈다.


당시 만취했던 부관은 김정일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총을 겨눴는데, 그때 이 광경을 목격하고 부관을 제지한 것이 고영희였다. 그 이후부터 김정일은 고영희에게 “당신 덕분에 살았다”면서 종종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고영희는 그립 무게가 35g 밖에 되지 않는 경량(輕量)권총을 소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후지모토 씨의 증언이다.


김일성 사망 직후 권총을 앞에 놓고 고민하는 김정일을 보고 “무슨생각을 하는 거냐”고 고함을 치며 권총을 치우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후지모토는 고영희가 인내심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며 음식 솜씨도 좋은 북한 최고의 현모양처(賢母良妻)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이 먹는 메기탕 등은 고영희가 직접 요리했다고 한다.  기록영화에서도 고영희가 북한군 조리병에게 ‘감자 꽈배기 레시피’를 전수해줬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정일은 고영희가 유선암 투병 생활을 할 당시 그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고영희가 암 수술을 위해 프랑스로 출국했던 1993년 무렵, 김정일은 입원 중인 고영희에게 편지를 받고 서글프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영희가 암투병 전에는 김정일은 종종 연회에서 자신의 애창곡 ‘그 때 그 사람’을 고영희와 같이 부르는 등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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