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 우상화’ 북한의 3가지 아킬레스건

일본의 북한인권 단체 RENK가 입수해 제공한 기록영화에서는 고영희 우상화와 관련한 북한 당국의 복잡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백두혈통’ 논리를 앞세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입장에선 김정은의 생모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해갈 수는 없다. 김정일 또한 권력승계 과정에서 생모인 김정숙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 작업을 펼치며 부자 세습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영희의 경우 출신과 직업, 결혼 관계에까지 우상화 선전에 불리한 요건들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이번 기록영화에서 고영희의 이름은 물론 나이, 출신지 등 개인의 이력에 대해서는 일체 밝히지 않았다.


다만 30년 가까이 김정일의 곁을 지켜온 충실한 혁명 동지, 김정은의 생모라는 점만을 내세웠다. 고영희의 우상화를 둘러싼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세 가지로 정리해본다.


①백두혈통 흐리는 ‘째포’ 출신 어머니


먼저 고영희는 재일교포 귀국자 출신이다. 데일리NK 도쿄지국은 독자 취재를 통해 고영희의 부친은 일제식민지 시대 일본 육군이 직할하는 히로타(廣田) 재봉소에서 근무하던 고경택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는 밀항선박을 운영했던 것이 탄로나면서 일본에서 강제퇴거를 명령 받았고, 결국 1962년에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결국 1952년생인 고영희의 출생지는 일본 오사카이며 11살 때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간 셈이다.


실제로 북한 내에서는 2009년부터 고영희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민심이 악화됐다고 한다. 재일교포 귀국자들은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째포’라는 비아냥 속에 많은 차별과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백두혈통의 후계자라고 하는 김정은의 생모는 일본인 이름까지 가졌던 일본 출생이고, 외조부 역시 일본 육군 밑에서 일하다가 한국과 밀항 사업을 벌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북한에서 따지는 출신성분으로는 최악 중에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북한에서 고영희의 일본 출생 사실은 ‘최고 기밀’로 지정됐으며 발설자는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영화에서는 고영희를 ‘평양 어머님’이라고 지칭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등 고영희의 출신을 교묘하게 속이려 하고 있다.


②김정일의 세번째 부인이자 동거녀에 불과


다음으로는 고영희가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 아니라 동거녀에 불과했다는 점에 있다. 고영희가 실제 김정일과 호적상 혼인 관계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봉건적 사고가 남아있는 북한에서는 결혼을 여러 차례 하는 것을 도덕적 흠으로 여긴다. 그러기 때문에 김정일 또한 최고지도자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여자관계가 복잡한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


그의 공식 본처는 김영숙으로 두 사람은 1974년에 결혼했다. 김정일은 김영숙과 결혼해 설송이라는 딸을 낳았다. 그러나 김영숙은 김일성이 맺어준 인연으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이외에는 부인으로서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김정일은 김영숙과 결혼하기 전에 유명 여배우였던 성혜림과 장기간 동거했다. 김정일은 친구의 누나이자 유부녀였던 성혜림에게 반해 김일성 몰래 함께 살기 시작했다. 성혜림은 1971년 김정일의 첫째 아들인 김정남을 낳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극도의 불안과 신경 쇠약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고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일본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였던 고영희는 1975년경부터 김정일의 비밀파티에 불려 다니며 총애를 받다가 동거하게 됐다. 사망한 2004년까지 김정일과 함께 살며 사실상 정부인의 역할을 했다. 고영희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정철과 정은, 여정을 낳았다.


이후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이자 네 번째 부인은 김옥으로 알려졌다. 어쨌건 북한 기준에서 김정일의 정식 부인은 김일성이 맺어준 김영숙이라 할 수 있고 나머지 세 여인은 동거녀에 불과하다. 김정일의 애첩 출신을 ‘인민의 어머니’로 둔갑해야 하는 딜레마가 여기서 발생한다.


③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혁명 경력 전무


마지막 결점은 고영희가 배우 출신으로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사업과 관련한 어떤 경력도 없다는 것에 있다. 북한 당국이 실제로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당과 국가의 일꾼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풍조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영희는 무용수 출신으로 남한에서 흔히 말하는 ‘기쁨조’로 활동하다 김정일의 눈에 띄었다. 북한 주민들은 무용수를 남한에서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비하하는 것과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간부들 사이에서는 이미 고영희가 재일동포이며 만수대 예술단 소속으로 ‘조국의 진달래’의 주역 무용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한다. 더욱이 ‘조국의 진달래’ 화보와 출판물이 전국에 보급된 상황이기 때문에 주연배우였던 고영희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김정숙의 경우는 항일 빨치산 출신이었던 점을 활용해 ‘백두의 여장군’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우상화 선전을 하고 있지만 고영희에게는 혁명 사업이나 당, 국가 사업 경험이 전혀 없다는 맹점이 있다. 이번 기록영화에서도 고영희는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옆에서 수행할 뿐 별다른 활동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결국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김정은을 낳았다는 사실 외에는 고영희를 우상화 할 수 있는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다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