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 회담전략

정주호 특파원 정준영 기자 = 13개월 만에 개막하는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6개국이 어떤 전략으로 공방을 벌일지를 놓고 베이징(北京) 외교가 안팎에서 벌써부터 관측이 무성하다.

대척점에 서 있는 북미 양국의 입장이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번 회담이 어느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나머지 4개국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느냐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의 경우 의장국으로서 중재자 역할이, 우리 정부는 북핵 폐기에 최우선을 두면서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이 각각 기대를 모으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북한 편에 가까이 서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본이 다시 납치자 문제를 꺼내들 경우 북미 공방에 그치지 않고 북일 간에도 전선이 형성되면서 회담의 초점이 흐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더욱이 방코델타아시아(BDA)에서 시작된 대북 금융제재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등장해 있고 10월 북한의 핵실험이 회담 틀을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6개국이 뒤엉킨 난제들과 달라진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

◇ 한국, `낮은 수준’ 합의라도 일궈야 = 우리 정부는 지난 9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키로 합의하고 11월에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종전 선언’ 언급을 받아내는 등 회담 재개를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북핵에 따른 긴장 지수가 높아지면 최대 피해자는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이른바 `조기 수확’ 방안을 바탕으로 낮은 수준의 합의라도 일궈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핵 폐기로 가는 첫걸음에 해당하는 초기 이행조치라도 합의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난다면 북미 간 간극이 더 벌어지면서 어렵게 살려놓은 회담의 모멘텀마저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6일 “지금까지의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는 각 대표단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치적 결단’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은 이런 맥락에서 핵심 이슈인 BDA 문제를 6자회담에서 분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BDA를 둘러싼 금융제재 공방이 9.19 공동성명 이행방안을 논의할 6자회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불신의 골이 깊어진 북미 양자가 서로 간극을 좁혀 접점을 모색할 수 있도록 남북 관계와 한미 공조를 활용한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에 치중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 신축성 발휘할지 관심 =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국내적으로 대북 강경론과 대북 협상 실패론이 공존했던 미국은 11월 중간 선거를 기점으로 신축성과 유연성을 보이면서 꺼져가던 회담의 불씨를 살렸다.

대북 강경파의 상징적인 인물이던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과 존 볼턴 주 유엔 대사가 각각 경질되거나 사임하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 유연성과 신축성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에서도 얼마나 탄력적으로 임할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기본 입장의 변화라기 보다는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성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베이징에서 얼마 만큼의 재량권을 행사할 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적지 않은 편이다.

힐 차관보는 17일 베이징에 도착한 직후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BDA 해법을 위한 워킹그룹 회의에 대해서는 6자회담과 별개라며 철저히 선 긋기를 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보유국 주장을 하며 핵 군축협상을 하자는 논리로 치고 나올 경우 난감한 상황이 초래될 것임을 우려하고 BDA가 6자회담 본안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BDA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판이 베이징에서 6자회담과 동시에 벌어지는 데까지는 양해를 했지만 외교적,정치적 문제로 여겨지는 핵 문제와는 달리 불법행위에 따른 법률적 문제라는 종전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달 북미 회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도 ▲영변 핵시설 가동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등 초기 조치의 이행을 요구하면서 그에 따른 보상으로 9.19 공동성명에 나온 에너지 지원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 북한, 핵보유국 주장 고수할지 주목 = 북한의 관심은 여전히 제재 해제에 쏠려 있고 회담 전략은 핵보유국 주장에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런 입장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16일 베이징 도착 일성으로 “우리에 대해 가해진 제재가 해제되는 게 선결조건”이라고 밝히고 “지금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 것에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지난 4월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의 동결자금을 내 손에 갖다 놓으면 되며 그 자금을 손에 쥐는 순간 회담장에 갈 것”이라고 말한 것과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재의 경우 문제는 김 부상이 언급한 제재가 BDA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핵실험에 따른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까지 포함하는지에 있어 보인다.

일단 BDA와 관련된 금융제재를 지칭한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만일 유엔 제재까지 문제 삼는다면 회담에 난관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다른 참가국들이 부담을 갖는 핵 보유국 주장을 꺼내면서 이번 회담의 성격을 핵 군축회담으로 규정하려 할 경우에도 어려워지긴 마찬가지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핵 보유국 주장을 꺼낼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회담 카드로 제기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려 할 때는 회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구체적 합의 끌어내는데 역점 = 의장국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미간 구체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북한의 후견국으로 중재자 역을 자임했던 중국으로선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 대북제재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던 와중에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극적으로 이끌어내 13개월만의 회담재개를 성사시켰다.

6자회담 및 BDA 실무회의 동시 개최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던 중국은 회담 내내 북한과 미국을 오가며 불신이 팽배한 양측의 간극을 메우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4일 “냉정한 태도, 인내심, 시간, 타협이 필요하다”며 “중국은 각 참가국의 이익과 입장을 고려해 객관적이고, 전면적이고, 형평성 있게 이 문제를 다룸으로써 중국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6자회담에선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수 있지만 회담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BDA 회의에선 중국은 당사자가 아닌 탓에 개입이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중국은 북미의 금융실무 논의 결과가 6자회담에 미치는 영향을 적절히 차단하면서 대화 모멘텀을 계속 유지시키는 쪽으로 외교 역량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적절한 상응조치를 내놓는 것도 중국의 역할이 될 수 있다.

◇일본, 납치문제 꺼내 또 `왕따’ 되나 = 일본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핵 문제와 함께 북한의 ‘아킬레스 건’이랄 수 있는 일본인 납북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측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조치를 촉구하면서도 “일본으로서는 납치문제가 큰 현안이며 미국으로부터 전면적인 협력과 지지의 의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중국이 북.일, 북.미간 개별문제는 회담 내 워킹그룹을 설치, 협의할 것을 제안함에 따라 납치문제를 다룰 수 있는 워킹그룹을 이끌어낼 수 있으면 일정의 성과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런 입장에 전혀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고 미국의 금융제재 완화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납치문제가 공식의제화될지 여부에 대해선 일본 자신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회담에서 일본은 독자 대북제재에 대해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있더라도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보조 중재자로 제재완화 주문할 듯 = 러시아는 지난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대북 설득을 위한 제재를 강조하면서도 “향후 6자회담에서는 지난해 9.19 공동성명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방안을 논의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그간 상호 타협과 양보의 정신, 그리고 평화 및 정치적인 방식으로 북한 핵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회담의 장기교착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때문이라는 시각을 갖고 미국측에 제재 완화를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북한 핵문제에 핵심 이해당사자는 아닌 편이어서 회담의 종속변수로 중국, 한국을 보조해 북한, 미국간 관계를 중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디어를 적극 개진하거나 북한에 상응한 호혜조치를 제시하는데도 다소 인색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자국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의 건강상 이유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회담 직전에 수석대표직을 세르게이 라조프 주중대사에게 맡긴 점에서도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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