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주는 누구인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북한의 외교전략수립을 총괄해온 ‘북한 외교의 제갈공명’이다.

북한 관료로는 젊은 나이인 47세인 1986년부터 당시 외교부 제1부상에 임명된 강석주는 얼굴마담격인 장관을 제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보고체계를 갖춘 채 북한의 외교정책을 좌우했으며 특히 ‘미국통’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강 제1부상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 역시 1993년 북미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를 맡으면서부터로 1994년 제네바에서 합의한 북미기본합의문에 직접 서명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외교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최고 영예인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으면서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이후 강 제1부상은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 등에 동참하는 등 북한의 대미외교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방북했을 때는 농축우라늄 개발 의혹을 시인하라는 압력에 맞서 “우리(북)는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 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제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강 제1부상은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고별오찬을 비롯해 20 01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과의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등 외교 실세임을 과시했다.

강 제1부상을 직접 지켜본 한 전직 고위관료는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가장 두터운 신뢰를 받으면서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을 책임지고 이끈 인물”이라며 “그는 분명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미관계를 풀어야만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최고 지도자의 신임을 받으면서 미국과의 협상 최일선에 섰던 강 제1부상이지만 지금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 속에서 ‘대화가 없는 시절’을 보내며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는 것조차 힘든 지경에 처했다.

강 제1부상이 지난 7월 열린 재외공관장회의에서 “우리 외무성은 더 이상 우리 정책집단에 발디딜 자리가 없고 우리가 서 있던 땅이 완전히 잘려 나갔다”며 “건설적 기간에 우리와 협력했던 그들은 숙청당했다”며 북미회담 과정에서 자신과 협상했던 미 국무부 관료의 부재를 아쉬워 하기도 했다.

특히 회의에 참석해 한 발언의 모두에서 “이러한 종류의 모임에서 내가 연설하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발언은 북한 권력내부에서 힘을 잃어버린 협상파의 위상을 재확인해주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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