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BDA입장 대선회..북핵 해결 의지 재확인

마카오은행 방코 델타 아시아(BDA)의 북한 동결자금 전액을 해제하기로 북한측과 합의했다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의 19일 베이징 발표는 그간 이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 내 기류와는 대단히 다르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 14일 BDA가 북한의 위폐, 담배, 마약거래 등과 관련된 불법행동에 연루됐을 뿐 아니라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거래에도 관여했음을 공개하고, 미국 은행들의 이 은행과의 거래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재무부는 또 일부 유령회사들이 BDA를 통해 수 억 달러를 돈세탁했다고 규모를 제시하는 한편, 출처를 밝히지 않은 달러화 현금을 대량으로 옮기는 수법 등을 썼다고 구체적인 불법거래 행위의 유형까지 설명했다.

이 같은 재무부의 서슬퍼런 발표는 위폐와 돈세탁 문제는 미국 달러화를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이며, 불법금융행동은 끝까지 추적해 근절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BDA문제에 대한 국무부의 입장은 줄곧 ‘재무부 소관이니 재무부에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재무부가 BDA조사 결과를 발표한뒤엔 “재무부 발표로 2.13합의에 따른 미국의 의무는 이행됐다”는게 국무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숀 매코맥 대변인은 지난 15일까지만 해도 ‘이제 마카오당국이 결정을 내릴 차례’라며 마카오당국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글레이저 부차관보가 ‘물증’과 ‘분석’을 통해 축적한 정보를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입장으로 볼 때 BDA 북한 동결자금의 전액 해제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미국측이 확실한 증거를 내밀며 불법이라고 규정한 돈을 마카오당국이 문제없다고 전면 해제 한다면 미국은 마카오에 대거 유입돼 있는 카지노 관련 자금을 빼낼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됐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보좌관은 중국도 그동안 북한의 돈세탁을 인정해온 점에 비춰볼 때 “만일 그들이 갑자기 그게 깨끗하다고 결정한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결국 BDA의 북한 동결자금 전액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북한이 해제된 자금을 전액 인도적 사업에 쓴다는 단서가 붙었다.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북한은 BDA에 동결된 대략 2천500만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베이징 중국은행에 개설된 조선무역은행 계좌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해제된 돈을 전액 좋은 일에 쓰는 만큼 잘못된 과거는 문제삼지 않는다는 절충안으로 보인다.

재무부가 북한의 불법금융활동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BDA에 미국은행들과의 거래 금지라는 강경조치를 취한 만큼 미국 정부로서도 어느 정도의 체면은 유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들은 다 감안한다 해도 이번 결정은 미국 재무부는 물론, 국무부측이 그간 밝혀온 공식 입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미 국무부 관계자들은 힐 차관보의 베이징 발표를 앞두고 휴일인 18일에도 숙의를 거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무부측이 재무부 관리들을 강력히 설득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힐 차관보는 BDA 관련 발표 내용이 재무부 웹사이트에 게재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소관 부처가 필요한 준비를 할 사이도 없이 서둘러 이를 발표했다는 자체가 이번 결정이 급박하게 내려진 것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BDA 북한자금 전액 해제를 전격 발표한 배경은 물론 ‘6자회담을 깰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불과 몇 백만달러의 동결자금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구도를 이끌어내려는 ‘큰 판’을 깨뜨릴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음직 하다.

재무부 발표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6자회담에의 영향을 우려한 중국측의 압박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중재역할에 대한 의존도가 큰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주장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회담을 원만히 끌고나가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BDA 동결자금 전액해제’라는 북한측 요구를 수용했지만, 진통끝에 내려진 이 같은 최종 결정의 후유증은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북핵 협상 진전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미국 내 강경파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비판의 목소리를 한층 높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잖아도 미국 내 일각에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였던 부시 행정부가 최근 대북 정책을 너무 극적으로 바꾼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실패를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로 만회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속내를 아는 강경파들은 그동안 숨을 죽여왔지만, 미국 정부 스스로 ‘법집행의 문제’라고 강조해온 북한의 불법행동을 묵과하는듯한 타협에 역공을 취하고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런 반발이 BDA 조사를 담당해온 재무부 관리 등의 공감을 살 경우 부시 행정부 내 부처간 갈등으로 비화돼 힐 차관보가 이끄는 국무부 협상팀에 대한 견제가 심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예상되는 이런 역풍과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BDA 북한 자금 전액 해제라는 단안을 내린 것은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강함을 반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같은 중대 결정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물론 부시 대통령의 결단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란 점에서 앞으로 북핵 협상을 둘러싸고 제기될 웬만한 걸림돌들은 무리없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란 역설적 분석을 낳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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