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잇따른 유화 제스처..北 호응할까

핵 프로그램 신고를 놓고 북한과 미국 간 신경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우호적인 발언을 하고 나서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특히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물론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 등과 연쇄 전화통화를 갖고 가급적 조기에 6자 수석대표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와 함께 북핵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국면 전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최근 북핵 협상을 강도 높게 비판한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 인권담당 특사를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다.

레프코위츠 특사는 앞서 17일 미국기업연구소(AEI) 주최 특강에서 북한이 부시 행정부가 끝날 때까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북핵 협상을 인권 및 경제지원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라이스 장관은 레프코위츠 특사를 “6자회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6자회담에 대해 말한 권한도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인 뒤 “부시 대통령은 6자회담에 대한 우리의 정책이 무엇인지 직접 밝혔고 나는 대통령의 입장을 알고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미국 내 일각의 대북 강경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추진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기존 방침이 확고함을 거듭 천명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여기에 미 국무부 대(對)테러담당 델 데일리 조정관은 22일 북한이 원하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언질을 내놨다.

그는 1970~80년대 이뤄진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데 장애물이 될 것 같지 않다면서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 핵문제 진전에 따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이 확고하기 때문에 당장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데일리 조정관의 발언은 북한에 보내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외교소식통은 “미 정부 고위인사들의 발언은 북핵 협상과 북.미 관계정상화 현안이 모두 북한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음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22일 ‘선택의 권리와 자유는 미국에만 있지 않다’ 제목의 개인 논평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해제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한 뒤 “이런 조건에서 우리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의무사항을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라고 강조했다.

결국 북한과 미국이 서로 자신들의 의무를 먼저 이행하라는 요구를 제기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국면인 셈이다.

현재 핵심 현안인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 북한은 ‘우리 기준에 맞는 신고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미국 등은 ‘완전하고도 충분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제2차 핵 위기의 발단이 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에 대해 북한은 ‘없는 것을 어떻게 있다고 하느냐’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은 ‘증거에 입각한 확실한 해명’을 촉구하고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에서 태도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조선이 “미국이 자기의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때만 조선반도 비핵화 과정이 전진할 수 있다”며 “저들이 응당 해야할 바는 하지 않고 우리가 핵신고를 안해서 비핵화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낮도깨비 같은 소리”라고 말한 것도 미국의 의무이행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들이 해야할 바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은 미 행정부의 재량사항이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를 실행하기 45일전까지 미 의회에 ▲이전 6개월간 북한이 국제테러활동 지원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향후 북한이 국제테러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확약했음을 증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한편, 한국과 미국은 6자회담의 협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2월 중순 이전 6자 수석대표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은 핵 신고 문제에서 별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회의를 열 경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국면 전환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상황이지만 송민순 장관이 최근 미국, 중국, 러시아의 외교 고위당국자들과 잇따라 전화통화를 갖는 등 외교채널을 통한 협의를 해본 결과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면서 “가급적 조기에 협상이 재개되는 방향으로 관련국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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