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세계와 미국의 핵우산.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인 일본이 히로시마(廣島) 핵폭탄 투하 64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6일 전했다.
이날 히로시마에서는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64년전의 원자폭탄 투하 당시를 되돌아보고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평화기념식전’이 열렸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일본이 비핵 3원칙을 견지, 핵무기 폐기와 항구 평화 실현을 위해 국제사회의 선두에 설 것을 다시 한번 맹세한다”고 강조했다. 비핵 3원칙은 일본 정부가 1968년 1월 발표한 것으로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참석자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프라하 연설에서 핵폐기 노력을 선언한데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핵없는 세계 구현을 다짐했다. 시민단체들도 피폭 64주년을 맞아 이런 취지의 회의를 갖는 등 비핵 무드 확산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히로시마에서는 2차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북한에 대한 대비라는 명분으로 일본의 핵 억지력을 주장해 온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방위성 사무차관의 강연이 열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일본회의 히로시마’라는 지역 단체의 주최로 열린 ‘히로시마의 평화를 의심한다’는 제목의 강연회에는 1천명 가까운 청중들이 운집하는 등 일본의 보수화 바람을 실감케 했다.
한 참석자는 “핵무기 없는 세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인 위협에는 만전을 기해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최근 미국측과 ‘핵우산’과 관련한 정기협의를 갖기로 했다.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제기된 안보 위협에 대해 미국의 핵우산을 통해 억지력을 강화 유지하는 방안을 찾는 게 주요 의제다.
또 8·30 총선을 앞두고 여권내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북핵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핵보유론이나 북한 기지 타격론이 제기되는 것도 일본 정부가 겉으로 내세우는 비핵화와 상충되는 것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