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황장엽 그는 누구인가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당 비서, 87)이 10일 오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황 위원장은 주민들이 굶주리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주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는 김정일 독재에 환멸을 느끼고 1997년 망명했다. 당시 황 위원장은 북한은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고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황 위원장이 망명한 지 13년이 지난 오늘 북한은 후계자 김정은을 열병식 주석단에 등장시키며 3대 세습을 공식화했다. 결국 황 위원장의 숙원인 북한의 민주화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과제는 후대에 몫으로 남게 됐다.


황 위원장은 1923년 1월 23일(음력 1922년 12월 7일)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광청리 삼청동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이공계에 뜻을 가졌지만 색맹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고, 일본의 패망에 대처하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모교인 평양상업학교에서 교사로 재직중이던 황 위원장은 교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당에 가입해야한다는 동료 교사들의 권유로 1946년 11월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이후 1948년 6개월 과정의 중앙당학교 이론반에 들어가면서 부터 사상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는 회고록에서 “야간대학생이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뒤떨어진 공부를 메우기 위해 잠도 안 자고 매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1949년 모스크바종합대학 철학부 졸업을 거쳐 1953년 북한으로 입국해 김일성종합대학 철학 강좌장, 1958년 중앙당 서기실 이론서기에 발탁됐다.


이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내각 참사관 등을 거쳐 42세 때인 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1972년 최고인민회의 의장, 1979년 조선노동당 비서, 1984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등 지내는 등 그의 북한 내 입지는 굳건했다.


황 위원장은 1965년 김일성대학 총장 임명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일 졸업 후 김경희와 김일성의 처남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연이어 김일성의 후처 소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상황에 김일성은 대학총장을 자기 심복으로 교체할 생각을 갖고 있었고 김정일이 황 위원장을 추천함으로써 임명되었다고 설명했다.


황 위원장은 김정일과의 첫 만남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권에 대한 욕망이 상당히 컸다”고 기억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황 위원장이 1959년 소련공산당 제21차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을때 고급중학교 졸업반이던 김정일이 동행해 아침마다 47세로 원기왕성한 아버지가 나갈 때도 부축을 하고 나서는가 하면, 신발을 신겨주었다.


또 저녁에 김일성이 돌아오면, 김정일은 부관들과 의사, 간호원 등 수행원들을 집합시켜 놓고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받고 이런저런 지시를 하곤 했는데 김일성을 수행한 대표단 중에는 정치국원들도 많았고 김정일이 김일성의 사업을 직접 관장하고 부관들과 수행원들에게 구체적으로 일을 지시한다는 것은 상식을 초월한 행동이었다고 설명했다.


황 위원장은 당시 어쩌면 이 소년이 자기 삼촌을 내쫓고 권력을 승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더불어 김정일이 성격이 과격하고 질투심이 강하며 수단을 많이 부리는 것으로 봐서 앞으로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나라의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황 위원장은 북한의 경제난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정일을 계속 추종한다는 것은 역사와 민족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죄과를 범하는 것임이 명백했다고 회고했다.


황 위원장은 김일성의 비공식 중국방문을 단독 수행하고 김정일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개인교사’ 역할을 할 정도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신임이 두터웠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에도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지만, 주민들이 굶주리는 상황에서도 주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는 김정일 독재에 대한 실망으로 1997년 2월 북경주재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1997년 4월20일 서울로 입국하게 된다.


망명 뒤 황 위원장은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수령 독재를 비판하고 북한 민주화의 당위성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특히 올해 3월말 미국을 비밀리에 방문한 황 위원장은 미행정부와 의회, 민간단체 인사들을 두루 만나 북한 실정을 고발했다. 이어 4월에는 일본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김정일의 독재 정도가 10배는 더 강하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던 황 위원장은 김정일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직·간접적으로 살해 위협을 당해왔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국가정보원은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위장탈북해 국내에서 황씨를 살해하려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로 김모(36)·동모(36)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북한의 끊임없는 협박과 암살 기도는 오히려 황 위원장의 김정일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북한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확신을 주었다. 최근까지도 그는 저술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김정일 정권과 북한의 3대 세습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비록 황 위원장이 이날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북한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평가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