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뭄바이의 악몽…테러리즘 끝은 어디?

인도의 경제 수도로 알려진 뭄바이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테러는 지난 11일, 퇴근 시간대인 6시 24분 경 첫 폭발을 시작으로 일어났으며 통근 열차의 1등 칸만을 골라 인근 역에서 모두 8차례의 폭발이 이어졌다고 한다.

인도 경찰은 이번 사건을 카슈미르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 단체 ‘라스카르-에-토에바(LeT・성스러운 군대)’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LeT는 2001년 인도 국회의사당을 공격한 배후로도 지목되었으며 2005년 10월 뉴델리 폭탄 테러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경제 성장의 상징인 뭄바이는 2000년 이후에만 무려 6번의 테러 공격을 받았다. 특히 이번에 1등 칸만을 골라 폭약이 터진 것은 부유층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서 급속한 경제 발전의 수혜자는 따로 있으며, 차별과 멸시 속에서 하층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인도 무슬림들의 비참한 처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LeT는 카슈미르에서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10여개 무장 단체 중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LeT는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이번 테러와 관련 인도 정부가 파키스탄에 공식적인 입장을 피력하진 않았지만, 인도는 카슈미르 무장 단체를 파키스탄이 지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파키스탄이 무장 세력의 훈련은 물론 자금과 무기를 공급해 분리주의 운동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인도로 침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파키스탄은 그들과 ‘정신적인 교감’만 하고 있을 뿐이라며 무장단체와의 관계를 부인해 왔다. 이런 시각을 의식해서인지 파키스탄은 이번 테러가 발생하자 즉각 외무부 성명을 통해 ‘야비한 테러’라며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카슈미르 분쟁, 인도-파키스탄-주민 3자가 얽힌 분쟁

카슈미르는 인도 서북쪽 파키스탄과 국경이 인접해 있고, 크기는 한반도와 비슷하다. 카슈미르 독립 투쟁은 아시아에서 가장 비극적인 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카슈미르 분쟁은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지역 주민 3자가 얽힌 분쟁이다. 분쟁의 연원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국경 지역에 위치한 카슈미르의 영유권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카슈미르를 지배한 왕은 힌두교인이었던 반면 지역 주민 절대 다수는 이슬람교인들이었다. 힌두교 왕은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카슈미르 지역을 인도의 영역으로 귀속시켜 버렸다. 이에 주민들이 반발하고 이웃한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이 개입하면서 인도와 충돌하게 되었다. 결국 파키스탄이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인도가 관할함으로써 카슈미르는 분단되는 운명에 처하였다. 그러나 인도령이 된 카슈미르 주민들이 인도로부터의 독립을 강력히 원하면서 인도 정부는 이를 탄압하고 있는 상황이다.

카슈미르의 분단은 마치 한반도의 분단과 비슷하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일방적으로 그어버린 휴전선은 아침에 일을 나간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카슈미르의 휴전선이 그나마 사람의 왕래를 허용하기 시작한 것도 2003년에 와서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평화 협상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휴전선을 오가는 버스를 허용하여 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는 길이나마 조금 열어 주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상황에 따라 중단 사태를 거듭하면서 제 구실을 못하는 실정이다.

카슈미르 무장 세력의 조직적 저항은 1985년이 주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1985년 총선 당시 지역 주민들은 완전한 선거 부정을 통해 친인도 성향의 정당이 승리하였다고 믿고 있다. 그때부터 그들은 인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채 무장 투쟁만이 카슈미르의 진정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1989년 무장 봉기는 그러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상호 교전에 따른 사망자만 8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카슈미르의 미래에 대해 다소 다른 주장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일부는 ‘파키스탄에 병합하자’는 주장과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국가를 세우자’는 것이다. 우열을 가리긴 어렵지만,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으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후라야트 회의’는 카슈미르를 대표하는 가장 유력한 단위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카슈미르의 미래에 대해 파키스탄, 인도의 관련성을 무시하지 않으며 3자가 만나서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이 되어서야 머리를 맞대었으며 휴전을 선언하고 평화 협상을 시작하였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의 분단이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카슈미르를 관통하는 통제선(휴전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인도도 카슈미르의 영토를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의 합병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분리 독립까지 고려하는 눈치다. 그러나 인도는 카슈미르의 자치를 확대할 순 있어도 결코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드러운 국경선 개념 실현될지는 미지수

지난 5월에는 양자 간 평화 협상이 시작된 이래 가장 비극적 사건이 발발하였다. 무장 괴한들이 마을에 들이 닥쳐 주민들을 불러 모아 총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학살 사건으로 주민 34명이 살해되었다. 분리 독립을 추구한 무장 세력들조차 일제히 이 사건을 비난하였으며 아직까지 아무도 자신이 한 일임을 밝히는 단체는 없지만 인도 경찰은 평화 협상을 파탄 내려는 이슬람 무장 세력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이번 테러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저질러진 만행이라 할 수 있다.

인도인들은 끊이지 않는 테러에 몸서리를 치고 있으며 카슈미르의 주민들은 인도 군인들에 의한 고문과 학살에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카슈미르의 주민들은 인도 군인들의 만행을 저주한다. 군인들은 무장 세력과의 전투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한 상태다. 인도군은 마을 깊숙이 벙커를 설치하고 주민들을 밀착 감시하고 있다.

카슈미르의 운명은 현실적으로 카슈미르 지역 주민들의 힘보다는 파키스탄과 인도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좌우될 공산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궁극적으로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기 때문에 단번에 획기적인 결실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양쪽 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하거나 강경일변도의 대립으로 치닫는 데는 반대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도나 파키스탄 모두 현재의 통제선을 ‘부드러운 국경선(soft border)’ 개념으로 설정해 가자는 데에 견해를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통제선을 중간에 두고 갈라진 카슈미르만이라도 자유롭게 이어줌으로써 국경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는 양측이 조금 더 양보하고 신뢰를 구축해 간다면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카슈미르 지역 주민들이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협상이 진작에 진행되었더라면 희생을 줄임은 물론 타협안의 성사가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애당초 주민들이 바랐던 것도 그저 헤어지지 않고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것이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동안 지역 주민들의 원한은 켜켜이 쌓여 갔다. 그런 토대 위에서 일부 분별력을 상실한 강경 세력은 평화 협상 자체를 무산시키는 극단적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과연 ‘부드러운 안’이 잘 실현될 수 있을지 복잡한 카슈미르의 상황은 그 잃어버린 시간과 역사적 굴곡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이종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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