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4.19 직후 ‘대남사업체계’ 바꿔

▲ 4.19 당시 시위대의 모습 <사진:4.19혁명회>

해마다 4월 19일이 되면 북한에서는 영화 ‘성장의 길에서’가 방영되곤 한다.

3부작으로 60년대 중반 김정일의 지도 밑에 만들어져, 당시 최대걸작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남한의 한 청년이 4.19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감옥살이를 하고 다시 반정부 투쟁에 나서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나온 노래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는 남한과 관련된 행사나 모임에서는 곧 잘 불린다.

해마다 4월 19일과 5월 18일이 되면 TV방송에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4.19와 5.18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서 남한 인민들의 반미, 반정부 민주화 운동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4.19를 기념할 때는 김종태, 최영도 등 통일혁명당 관계자들에 대한 추모모임도 가지는데, ‘남한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우다 파쇼분자들에게 학살되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북한은 4.19 이후에 들어섰던 윤보선 정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4.19 이후에 민주적 정권이 들어섰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빼앗겼다고 믿고 있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되었고, 국가에서 그렇게 가르쳤다.

4.19에 대한 북한의 관점은 해마다 배포되는 강연제강이나 궐기모임, 교과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이승만이 친미매국노가 되어 조선전쟁을 도발했으며,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른 정치 무능아(無能兒)로 평가하고 있다.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의 썩은 정치에 불만을 품은 남조선 인민들이 거리에 떨쳐 나와 서울광장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을 끌어내리면서 봉기가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4.19가 반미운동이었다고 주장하는 북한

북한에서 4.19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전체 남한 인민들이 단합된 힘으로 친미정권을 몰아낸 거족적인 반미구국항쟁이며,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구어낸 또 하나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본다.

비록 주체역량이 부족해 민주정권을 다른 파쇼정권에게 빼앗겼지만 ‘4.19혁명을 발화점으로 남조선에서는 친미적인 매국정부가 막을 내렸고, 전국적인 판도에서 민주주의 역량이 단합하여 지금까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강조하는 4.19의 의의는 ▶남한의 노동자, 농민, 지식인, 청년학생들이 연합하여 승리한 최초의 범민족적인 투쟁이고 ▶남한 인민들이 자기 손으로 정권을 뒤엎음으로써 ‘매국정부’는 인민들의 심판을 받는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보여준 데 있고 ▶미국의 식민지 통치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고 ▶남한에서 반미, 반정부운동이 새로운 높은 발전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

“군벌관료주의자 때문에 적화통일의 기회를 놓쳤다”

북한은 4.19혁명의 실패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었다. “4.19봉기는 남조선 인민들을 하나로 묶어 세워 지도할 만한 주체적 역량이 부족했다”며 “정권을 쟁취한 인민들이 민주주의 독재를 실시하여 자기의 이익을 대표하는 진정한 인민의 정권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인민군대에 스며든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오판으로 혁명에 유리한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우리는 통일할 기회를 두 번 놓쳤다. 한 번은 4.19 때고, 다른 한 번은 5.18 광주폭동 때다. 우리가 전면전쟁으로는 미국 때문에 승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남조선에서 인민들이 들고 일어날 때 밀고 내려갔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당국의 4.19 평가에 대해 이런 의혹을 가지기도 했다. “4.19봉기자들이 반미, 반정부 투쟁에서 승리해 정권까지 차지했는데 왜 우리와 통일이 안 됐는가?” 북한의 ‘병영식’ 교육만 받다 보니 ‘민주주의=반미’라는 엉뚱한 공식을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남한에 와서 살다보니, 남한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4.19 직후 대남 적화통일구상을 재정립

60년대에는 군(軍) 내부에서도 군단마다 정찰국을 따로 두고 대남공작원들을 파견, 정보를 수집했다. 중앙당에서는 대남사업부가 있고, 심지어 사회안전부도 자기의 라인을 가지고 대남공작사업을 했다. 대남공작사업을 제각기 진행하다 보니 통일성을 보장할 수 없고, 서로 경쟁을 벌이느라 적지 않은 피해가 늘어나게 되었다.

4.19 당시에도 김창봉(민족보위상)을 비롯한 군부우두머리들이 당에 보고를 하지 않고, “좀더 지켜보고 남한을 치자”며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판단한 김일성은 당, 군부가 제각기 진행하던 대남 공작사업을 노동당 대남사업부에서 총괄하도록 체계를 바꿨다.

또한 “남한에 혁명역량을 꾸리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혁명정당을 강화하고, 그 주위에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 각 계층의 군중을 묶어 세워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다.

또한 북한 인민들에게는 남한 인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며, 조국통일의 대사변(大事變)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조선노동당의 지도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