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1운동 “평양서 시작”

북한은 올해 90주년을 맞은 3.1운동도 계급혁명의 성격을 띤 인민봉기로 규정, `3.1인민봉기’로 일컫고 있다.

특히 3.1운동의 발원과 핵심 인물 등에 대한 해석에서도 남한과 사뭇 다르다.

북한은 민족대표 33인이 주동이 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시발된 사실을 부정하고 발원지를 평양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핵심인물도 고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연계시켜 김일성 가계의 우상화에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도 1983년 발간한 ‘백과전서’에선 기술조차 하지 않다가 1999년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서 “1919년 3.1인민봉기 때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여학생”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다.

북한은 3.1운동에 대해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 10월혁명(1917.10)의 영향을 받아 수십만의 서울시민이 반일투쟁을 시작하여 발생한 것”으로 기술해 왔다.

그러나 1980년부터 평양 장대재에 있던 숭덕여학교에서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됐다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지난해 3월 1일 “역사적인 3.1인민봉기는 평양에서 있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TV도 “이날 평양에서는 12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신호로 해서 수천명의 청년학생과 시민들이 당시 장대재에 있던 평양 숭덕여학교 운동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낮 1시가 되자 한 청년학생 대표가 연단에 올라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시위를 벌였다”고 ‘평양 발원’을 주장했다.

북한은 또 3.1운동이 “탁월한 수령의 영도”와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어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민족대표 33인의 그후 행적에 대해선 “철두철미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배신행동이었으며 일제 강점자들에 대한 비굴한 투항행위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3.1인민봉기 기념보고회’ 등을 개최해 왔으나 1990년대부터는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고 있으며, 공휴일로 지정돼 있지도 않다.

북한은 다만 기념일을 맞아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반외세 투쟁”과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3.1운동 89돌을 맞아 `반외세 자주의 기치높이 조국통일 위업을 힘차게 다그치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과 일본을 맹비난하면서 “온 겨레는 민족자주의 이념과 애국애족의 기치인 6.15공동선언을 높이 치켜들고 반외세 자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조선우표사는 3.1운동 90돌을 맞아 독립만세를 외치며 궐기하는 모습을 담은 기념우표를 최근 발행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27일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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