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제너럴 셔먼호 격침 환기

북한의 매체들은 제너럴 셔먼호 격침 139돌을 맞은 2일 당시 사건을 상세히 전하면서 침략선이 남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침략의 첫걸음-셔먼호의 침입’이라는 기사에서 셔먼호 사건을 ‘미제국주의자의 첫 조선 침략’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1986년 9월2일 대동강변에 셔먼호 격침비를 세웠으며 그 바로 옆에 1968년 1월에 나포한 미국의 첩보선 푸에블로호를 정박시켜 대미(對美) 항전의 ‘전리품’으로 전시하고 있다.

평양방송도 이날 셔먼호 사건을 소재로 방송을 내보내고 “만약 미제가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한다면 당시의 참패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자비한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과 북 모두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한말 구미 열강의 침략 사례로 기록하고 있지만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은 셔먼호 격침비까지 세우고 매년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조부인 김응우(1848.6.17∼1878.10.4)가 1866년 8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불법 침입한 셔먼호를 침몰시키는 데 앞장섰다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셔먼호는 원래 상선이 아니라 남북전쟁에서 활약했던 군함으로 원래는 ‘프린세스 로열호’였지만 남북전쟁에서 공을 세운 셔먼 장군을 기리는 의미에서 ‘제너럴 셔먼호’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미국은 1832년 7월 미국의 대선주 에드먼드 로버트가 조선과 통상의 필요성을 제기한 보고서를 본국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1845년 2월12일 프라트 미 하원 해군위원회 위원장이 이른바 ‘조선개방안’을 제안한 이후 1860년대에 본격적인 실천단계에 이르렀다고 우리민족끼리는 주장했다.

이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셔먼호의 대동강 침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셔먼호는 1866년 7월초 대동강 하구에 도착해 통상을 빌미로 관군을 감금.납치하고 주민을 상대로 약탈과 살육을 벌였지만 관찰사 박규수의 반격으로 배는 불에 타고 승무원 23명 전원은 몰살하고 말았다.

셔먼호 사건 이후 미국은 조선을 상대로 손해 배상 및 통상을 요구해오다 1871년 포함외교 차원에서 미국의 아시아 함대가 강화도 침략을 단행하면서 신미양요가 일어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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