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하철 비서 ‘먹칠’ 정치숙청 확실

▲ 공장을 현지 지도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그의 측근으로 있다가 숙청당한 인물들은 출판물에 남아 있는 얼굴을 먹칠한 뒤 기록에서 삭제한다. <동아일보자료사진>

최근 북한의 정하철(74) 전 노동당 선동선전비서가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민심이 흉흉해졌다고 동아일보가 대북소식통을 인용, 27일 보도했다.

대북 소식통은 “지금 북한 간부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정 비서의 흔적을 출판물에서 지우고 있다” 며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정 비서가 동행한 사진이 있으면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전했다. 또 정비서의 이름이 나오는 대목은 먹칠을 한 뒤 테이프로 봉인까지 하며 직접 쓴 글은 아예 통째로 잘라낸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는 1967년 김일성의 5.25 교시 무렵 ‘북한판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김일성 교시나 말씀집 등을 제외한 외국 출판물이나, 김일성의 독재에 저촉되는 이른바 반당(反黨) 서적들은 모두 불태워지거나 ‘먹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정비서의 사진이나 그의 이름, 글들을 삭제하고 출판물에서 아예 잘라냈다는 것은 정비서가 북한내에서는 이미 정치적 숙청을 당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정 비서는 김일성종합대 철학과를 나와 노동신문 논설실장과 중앙방송위원장을 거쳐 2001년 노동당 선전선동부장 겸 선전선동비서에 오른 선전통. 선전선동비서는 권력서열로 보면 노동당 조직비서에 이은 당내 2인자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임명받을 당시에 맡고 있던 직책이다. 정 비서는 김정일의 중국 방문 때도 동행해온 최측근으로 꼽혀 왔고 북한 최고 훈장인 김일성훈장도 받았다.

그의 신변에 이상설이 나돈 것은 2005년 12월. 당시 정비서는 농촌지원 총동원 때 대낮에 술판을 벌인 방송위원회 직원들을 집중 검열하는 과정에서 그의 과오가 드러나 평안남도 북창군 득창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고 전해진 바 있다. 또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과의 갈등 및 숙청설도 흘러나왔다.

신문은 또 “그에게 내려진 조치는 ‘반당반혁명분자’로서 이는 북한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출판물 등 모든 기록에서 삭제되며 복권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북한에서 간부들이 매장되는 가장 큰 원인은 술자리 등에서 김정일 또는 체제를 비난했을 경우”라며 “정 비서도 여기에 해당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 비서가 큰 비리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은 선전장비 구입에 해마다 막대한 외화를 아낌없이 쓰고 있어 비리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을 준비하면서 막대한 외화를 사취하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했던 최용해 전 사회주의청년동맹 위원장도 좌천당했을 뿐 ‘먹칠’은 당하지 않았다. 실각했다가 다시 복권된 장성택의 경우도 마찬가지. 즉 김정일이나 체제 비난과 비교할 때 부패 비리에 대한 처벌은 관대한 편이다. 따라서 정비서가 출판물 먹칠을 당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매장됐다는 의미다.

정하철 비서가 외국으로 도주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완전숙청된 것은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한편, 정하철에 이어 현재 노동당 선전비서는 김기남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