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철(72)은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노동신문 최근호(1ㆍ24)는 “70살이 넘은 김철은 이미 연로보장(정년퇴직)을 받은 지 오래된 몸이지만 오늘도 변합없이 시를 쓴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시인은 오늘도 ‘어머니’에 대한 시를 쓴다”며 “영원한 삶을 주고빛나는 미래를 준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노래, 우리 당을 받들어 언제나 올바로 걸어갈 신념의 맹세를 심장의 붉은 피로 변합없이 적어 간다”고 전했다.
신문은 그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인 ‘고난의 행군’ 때 황해제철연합기업소,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를 비롯한 각지 공장과 광산, 협동농장을 찾아가 시를 창작하고 읊으며 노동자들을 독려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 신문은 “나이 많은 몸으로 매일과 같이 경제선동을 하다 보니까 건강이 나빠져 자리에 누울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그는 병원으로 가지 않고 부닥치는 난관과 시련을 과감히 뚫고 나가는 인민들 속으로, 강성대국 건설로 들끓는 현실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때 그는 시 ‘나의 군인선서’, 가사 ‘조선사람의 노래’ 등 수십 편의 작품을 창작했다.
함북 출신인 김철은 6ㆍ25 전쟁 후 작가학원에 들어가 문학수업을 받던 무렵 ‘더는 쓰지 못한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던 그는 1960년대 초반 러시아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국 지방 노동자로 쫓겨났다. 게다가 건강까지 잃어 한 때 폐인이 되다시피 했지만 1970년대 말 작가동맹 작가로 복귀했으며 1982년 시 ‘어머니’로 재기했다.
‘어머니’는 노동당을 어머니에 비유해 충성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나의 조국’(김상오)과 함께 전후 북한 시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으로는 시집 ‘갈매기’(1958)와 ‘철의 도시에서’(1960)를 비롯해 ‘광부의 말’(1980), ‘붉은 화살’(1983), ‘동갑의 모습’(1987), ‘용서하시라’(1991) 등이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평양에 간 형 김한(서양화가)씨를 만나기도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