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시장사수’ 민심, 대한민국이 적극 지원하자

북한의 2010년 신년공동사설은 ‘당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는 제목으로 시작됐다.


공동사설이 과거 김일성 생전에 발표되던 ‘신년사’를 대체한 것이니만큼 지금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공약’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노동신문, 청년전위, 조선인민군 등 북한의 3대 조직 기관지의 ‘공동사설’ 형식을 빌어 연간 목표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북한은 내부적으로 ▲경공업 공장들의 현대화 ▲농업생산 증대 ▲인민생활 부문에 대한 국가적 투자 확충 및 대외무역 확대 등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00자 원고지 80장에 육박했던 2010년 공동사설은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경제는 지난해 11.30 화폐개혁의 후유증으로 1년 내내 허우적거렸다.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폐쇄했던 시장을 다시 허용하며 당 재정계획부장 박남기를 총살하는 등의 극단적인 민심수습 정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널뛰기를 멈추지 않던 식량가격은 여전히 북한 내부의 불안요소로 읽혀진다. 농사 결과도 신통치 않아 보인다. 북한 내부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2월 초 황해북도 지역 협동농장에서는 농장원 1인당 쌀 30kg, 옥수수 80kg를 내년치 식량으로 나눠줬다. 북한당국 기준에 따르면 성인 1인당 하루 500g정도 식량 소비가 정량인데, 겨우 260일 치만 지급한 셈이 된다.


노동신문은 1년 내내 CNC(컴퓨터 수치제어)기술로 주체철, 주체섬유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국영상점들에는 먼지만 수북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 10만호 주택 건설’ 사업의 결과는 측은할 정도다. 평양 내 주택건설 사업은 재활용 벽돌로 골격만 세워놓고 미장과 마감은 분양받는 사람이 ‘알아서 하라’는 전시행정으로 마무리 중이다. 북한은 연초부터 조선대풍그룹과 국제개발은행을 통해 외자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구체적인 유치 결과에 대한 소식은 전해진 바가 거의 없다. 


공동사설은 올해가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발표 30주년임을 상기하며 “전민족적범위에서 자주통일기운과 화해와 협력, 단합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3월 천안함 공격이라는 ‘완전범죄’를 시도하다가 꼬리가 밟혔고, 11월에는 급기야 백주대낮에 연평도에 포격 도발을 감행해 남북관계를 전면적 군사대치 상황으로 내몰았다.


대외관계 부문에서도 “조(북)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겠다”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일관하다”는 식의 립서비스를 남발했으나 결국 북한 스스로 우라늄 농축 개발 의지를 공표함에 따라 6자회담을 통한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쯤되면 북한의 공동사설이 김정일이 생각하는 ‘국정운영 목표’의 공식화 수단이  아니라, 북한내외를 속이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1년 내내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이 공동사설에서 제기된 목표가 초과완수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동안, 사실 김정일은 ‘후계작업 공식화’라는 정치적 목표에 올인해 왔다. 자신의 건강악화, 만성화된 경제난, 체제 이완,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등 최악의 상황에서 아들 김정은에게 ‘재빨리’ 권력을 물려줘야 하는 복합적 난관을 돌파한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것이다.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지지가 관건이었을 것이다. 그는 병약한 몸을 이끌고 두 차례나 방중길에 나서면서 3대 부자 세습에 대한 중국의 암묵적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나 천안함과 연평도를 공격했을 때 중국정부가 보여줬던 태도는 ‘물밑지원’ 수준을 뛰어 넘어 ‘물심양면’으로 비쳐질 정도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북한이 “핵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까지 언급하며 노골적인 ‘북한 감싸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종합적로 올해 김정은 후계작업은 사실상 아무런 저항없이 순조롭게 공식궤도에 올라섰다. 화폐개혁이 낳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등장에 반발할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중국이 ‘침묵’의 지지를 보이는 동안, 한국과 미국은 눈앞에서 전개되는 북한의 3대세습을 그저 놀란 눈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김정일은 천안함과 연평도 공격, 우라늄 핵개발 공개 등을 통해 북한내부와 한·미·일의 혼(魂)을 쏙 빼놓으면서 후계자 김정은이 가져야할 정치적 부담을 대폭 줄이는 효과도 얻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외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명사상 창시 ▲당(黨) 및 국가 운영에서의 독보적인 업적 확보 ▲북한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 제시 등 김정일이 과거 후계자 시절 정식화 해놓았던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남북간에 전면전이 벌어져 북한의 핵무기가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닐 것만 같은 군사적 긴장감은 결과적으로 김정은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줬다. 북한이 김정은의 존재를 공개하면서 줄곧 ‘선군정치의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왔던 점과 맥을 함께하는 대목이다. 더 새로울 것도 없는 사상, 조직이론, 국가발전전략 등은 모두 생략한 채 남조선과 미국의 적대정책에 맞서 북한을 구원하는 ‘장군’의 역할만 강조함으로써, 앞으로 후계자 김정은의 검증과정을 대폭 간소화 할 수 있게 됐다. ‘군사적 긴장감을 통한 북한 권력층의 내부단결 도모’는 그저 덤에 불과할 정도다.
         
올해 공동사설의 내용만 놓고 따져보자면 김정일의 성적표는 낙제다. 그러나, ‘신속한 후계작업 전개’라는 체제유지 목표를 놓고 따져보면, 김정일은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아들에게 북한을 상속하는 데 있어서 내외의 어떠한 반대도 없이 원하는 스케줄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11년에도 김정일의 체제유지 및 후계작업 전략은 계속해서 순항할 수 있을까? 


기왕에 김정은의 존재를 공개한 마당이라 이제 북한의 후계작업은 ‘시간싸움’으로 번질 전망이다. 북한식 속도전이 절실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이 과연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만성적인 경제난의 부침에 따른 내부민심의 향배가 점차 심각한 불안요소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후계작업이 결승선을 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은 경제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경제난이 불러오는 체제이완 및 민심동요는 결국 김정은의 공과를 따지고 들어오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김정일의 건강 문제로 ‘과속’을 불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김정은의 나이, 경력, 출신배경 등의 약점까지 자리하고 있다. 결국 내부통제를 강화해, 일사분란한 후계자 옹립 과정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점은 김정일과 김정은, 북한의 간부들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미국, 중국 등 북한 문제에 첨예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주변국들조차 북한 내 ‘민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민심을 건드리는 일을 아예 금기시 하기도 했다.


지난 60년간 북한에서 민심에 따른 사회개혁이나 진보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학습효과일 지도 모른다. 더구나 북한 주민들 역시 ‘민심’의 파괴력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거의 모든 북한 주민들이 “장군님의 후계문제는 장군님이 결정하실 문제로, 우리가 왈가불가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북한에도 살아 꿈틀대는 민심이 있다. 지난 10년동안 시장을 통해 ‘민심’이 농축돼 온 것이다. 장군님이 정치를 하던, 청년대장이 정치를 하던 당신들 일은 상관치 않겠으니, 시장만은 건들지 말라는 것이 지금 북한 전역에 형성되어 있는 ‘민심’이다. 북한 민초들에게 김정은의 능력이나 출신성분 따위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과연 백성들이 자유롭게 먹고 살도록 놔둘 것인가, 아니면 장군님처럼 전쟁준비나 시키면서 못살게 굴 것인가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정일도, 그의 측근세력도, 김정은 본인조차 상상하지 못하는 엉뚱한(?) 잣대를 마음에 품은 민초들의 눈길이 새로운 후계자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선군정치를 포기하면 김정은로의 후계명분이 약화된다는 점에서 김정일은 계속해서 선군정치를 유의미한 환경 조성에 이용할 것이다. 그러자면 시장에 대한 탄압과 통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제 북한에는 90년대 대기근 시절 집에 앉아 굶어 죽어가던 순박한 백성들은 더 이상 없다. 그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일은 ‘죽거나, 도망치거나, 싸우거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와 다름없다.  


김정일의 3대 세습 욕망과 북한 주민들의 생존 욕구는 서서히 충돌지점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것은 사상이나 정치적 지향과는 전혀 무관한 원초적인 생존싸움이다.


김정일은 2011년 공동사설에서도 ‘강성대국’ ‘이밥에 고깃국’과 같은 장밋빛 청사진으로 주민들을 현혹하려 할 것이다. 주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착각의 늪에 빠져서는 안된다. 


정부는 2011년 대북정책의 기조로 ‘북한 주민을 우선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우리는 2011년을  북한 주민들을 현실적으로 돕고 지지하는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유혈사태 없는 북한의 체제전환이나 평화통일의 기반마련 차원에서도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