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시민사회’ 형성, 남한 준비해야

▲ 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고르바쵸프

구소련과 북한은 단순하게 말하면 ‘공산국가’다. 과거 북한 공산주의는 소련에서 ‘강제수입’된 것이었다.

원래 북한 체제는 소련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필자가 경험한 소련, 즉 1960-80년대의 소련은 북한과 거리가 아주 멀다. 이 사실을 잘 알면 구소련의 경험이 현재의 북한에 맞지 않는 면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소련 정치범 9백 명 이하, 북 20만 명 정도

1950년대 중엽, 스탈린 사망 직후의 소련과 남로당 숙청 직후의 북한은 억압과 통제의 수준이 대체로 비슷한 나라였다. 그러나 그 이후 소련과 북한은 반대 방향으로 걷게 되었다.

1956년 이후 소련 정부는 김일성이 ‘수정주의’로 비판한 개혁정책을 통해 옛날 스탈린 체제를 단계적으로 철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소련 사회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1970-80년대 소련은 비록 민주국가는 아니었지만 소련 사람들은 북한 사람과 비하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소련 책방에서 외국책, 신문, 잡지(주로 좌파 간행물)는 팔렸고 일반인도 돈만 있으면 공산권 안에서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 외국 방송을 쉽게 청취하는 단파 라디오는 마을 상점에서도 많이 팔았다. 국제결혼이 허용됐고 특별한 경우에는 합법적인 해외 이주까지 가능했다.

물론 KGB(비밀경찰)는 반체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체포했으나,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체포를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소련의 국내 민주화 운동의 통계에 따르면 1970년대 수용소에 갇힌 정치범 수는 6백~9백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보다 인구 10배 더 많던 소련에 정치범의 수는 100-200배로 낮은 편이었다.

자유로운 논쟁 있었던 ‘모스크바의 부엌’

소련은 정치활동은 공산당만이 가능했지만 비정치적인 성격을 띤 단체들의 활동은 가능했다. 1980년대 말 소련 민주화 운동의 저명한 인물들 중에는 비정치적 단체들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은 사람이 많았다.

작가들이나 학자들, 예술인들은 스스로 협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물론 당국의 감시를 받긴 했지만 공산체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으면 괜찮았다. 이러한 활동은 ‘시민사회’의 싹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60년 이후 소련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물론 당 간부나 장교들은 공산체제에 대해 비판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출세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집이나 술자리에서 정부나 국가 지도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해도 문제되지 않았다. 구소련 ‘모스크바의 부엌’은 자유로운 논쟁의 장소였다. 중산층 아파트에서 친구들은 저녁에 부엌에서 만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다.

북한 ‘시민사회’ 형성, 남한 도움 필요

1980년대에 들어와 소련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생활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고, 소련 체제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시작됐을 때 소련 사람들은 다 같이 변화를 희망했다.

1985년 당시 러시아 록음악의 거두 한국계(카레이스키) 최빅토르는 이러한 분위기를 표현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는 “우리 마음이 필요한 것, 변화! 우리 눈이 필요한 것, 변화! 우리 혈관에서도, 변화!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고 노래 불렀다.

물론 구소련은 공산권에서 자유주의 경향이 제일 강한 나라는 아니었다. 헝가리나 폴란드는 보다 더 자유스러웠다. 1989년 이후의 과도기를 보면 공산주의 시대 말기에 자유가 많았던 나라일수록 민주화, 시장화의 성과도 많았다. 지금 유럽에서 잘 적응하는 동유럽 국가는 주로 공산주의 시대에도 시민사회의 기반이 있었던 나라들이다.

그러나 공산권 중에서도 유례 없는 억압 아래에 있는 북한 사회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기반 자체가 없다. 이 때문에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도 결국 개혁과 민주화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사회에 정치적 또는 비정치적인 단체가 형성되는 데 남한의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 객원칼럼니스트(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