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선전포고’, 사실은 ‘공갈포고’

▲ 北외무성 성명을 발표하는 조선중앙TV

최근 미국의 ‘북핵 안보리 회부 가능성’ 언급에 대해, 북한당국은 “제재는 곧 선전포고”라는 특유의 위협적인 외교 수사(rhetoric)를 사용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이 불리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단골 메뉴였던 ‘선전포고 간주’가 재등장한 것.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5일 <조선중앙통신사>기자와 대담 형식을 통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관련, “미국이 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끌고 가고 싶으면 가보라”며 “우리는 제재를 곧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노동신문은 북한군 창건 73주년 기념 사설을 통해 “전 인민군 장병들은 전투동원 태세를 유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북한은 2∙10 핵 보유 선언 이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에 회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겠다”며 “제재는 곧 체제위협이므로 자위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북 ‘선전포고’ 관련 발언은 공갈 수단에 불과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는 지난달 3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안보리 제재를 추구할 경우 우리의 입장은 이미 표명됐다”면서 “제재는 정전협정의 파기이며, 이는 선전포고”라고 말했다. 만약 제재가 추진될 경우 북한은 군사적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철 북한 외무성 유럽담당 관리도 21일 평양에서 AP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한다면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선전포고’ 경고는 매우 강경한 태도로 보이지만 사실은 위기감의 발로로 풀이된다.

‘선전포고’를 운운하며 ‘의도된 긴장 상태’를 조성하려는 북한의 시도는 그 동안 수차례 있어왔다. 하지만 ‘제네바 합의’에서처럼 국제사회가 단호한 태도를 유지할 경우,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꿔왔다.

北, 선전포고 발언 3일 만에 美 요구 수용

▲ 1994년 핵위기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

북한은 1차 북핵 위기 당시에도 ‘제재는 선전포고로 본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지난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북핵 위기는 그 해 5월 유엔 안보리가 IAEA 사찰 수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위기가 더욱 증폭되었다. 이때부터 북한은 ‘안보리 결의에 기초해 부당한 대북제재나 압력책동을 강행한다면 선전포고로밖에 볼 수 없다’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극대화되던 시점인 1994년 6월. 북한은 IAEA 공식 탈퇴를 선언하고 “제재는 곧 선전포고이며 자위적 수단(군사수단 포함)을 불가피하게 사용하겠다”는 외교부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발표 이틀 후인 15일, 미국이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을 발표하자 북한은 당시 방북(訪北)한 카터 전 미 대통령을 통해 ‘핵 활동 동결 및 완전한 핵 투명성 보장’을 약속했다.

1994년 북 위협 발언 ‘서울 불바다’까지 이어져

북한은 1차 북핵 위기 과정에서 ‘선전 포고’ 이상의 위협을 자주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94년 3월 19일에 있었던 남북고위급 회담 8차 실무접촉에서 터져나온 북측 대표 박영수 단장의 ‘서울 불바다’ 발언.

당시 박 단장은 “대화에는 대화,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며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고 송 선생(송영대 남측 수석대표)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을 한 바 있다.

북핵 위기 외에도 북한은 주변국과 충돌이 있을 때마다 ‘선전포고’ 발언을 해왔다. 심지어는 <조선일보>가 ‘김정일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자, ‘도발적 선전포고’로 간주하며 테러 위협까지 언급했다.

북한당국은 2002년 3월 부시 미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을 당시에도 ‘선전포고 간주’를 주장했으며, 일본의 역사왜곡에도 ‘노골적인 침략위협’이라며 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군국주의 사회에서 흔히 사용할 수 있는 군사적 ‘협박’ 개념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공세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사용하는 엄포용 공갈 수법이라는 것.

1차 북핵위기 당시 남북 대화를 이끌었던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의 위협성 발언에 대해 “지난 94년 1차 핵위기 당시에도 북한이 사용한 상투적인 협박전술에 불과하다”면서 “남한의 국민이나 노무현 정부를 자극해서 미국이 제재를 발동하지 못하도록 견제를 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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