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덕천시 수십 명 집단 아사”

▲ 풀을 캐러 다니는 북한 노인과 아이들

최근 북한이 97년 이후 최악의 보릿고개에 직면하면서, “평안남도 덕천시 장상동에서 노인 20여 명이 굶어죽었다”는 국경 탈북자의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이같은 증언은 97년 대아사 기간(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끝난 후 최근 8년간 북한에서 본격적인 아사자 발생 소식이 없었다는 점과, 지난 몇년간 WFP(세계식량계획), FAO(세계식량농업기구)의 아사자 발생 보고가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볼 때 충격적이다.

최근 회령시 인계리를 통해 탈북한 강만철(가명, 평남 덕천 출신)씨는 28일 “내가 살던 덕천시 장상동에서 올해 들어 노인 등 허약자 수십 명이 굶어 죽었다”고 증언했다.

강씨는 “올들어 식량난이 ‘고난의 행군’ 때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덕천시 장상동의 경우, 이제 60살 넘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증언했다. 덕천탄광 노동자인 강씨는 지난 4월 8일 탈북, 현재 중국의 농가에서 품삯일을 하고 있다.

이번 강씨의 증언은 5월 20일 리처드 레이건 WFP 평양사무소장의 “지난해 10월 남한이 10만 톤 상당의 식량지원이 있은 후 대규모 대북식량 지원이 없었고, 이대로 방치한다면 대량 아사자를 낳을 것”이라는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강씨는 “덕천시의 경우 지난 10년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 주민들이 많아 견디지 못하고 굶어죽거나 합병증 등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며 “올봄 제일 허약한 노인들이 먼저 죽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나의 동네 친구 승철(35세)이도 결핵과 늑막이 합병, 두 달동안 앓다 얼마 전에 죽어 다른 친구 3명과 직장 동료 2명이 이튿날 산에 묻었다”며 “직장에서 쌀 3kg을 주어 장례식을 치렀다”고 말했다.

북한은 매년 4월 초순부터 6월 중순, 햇감자가 생산될 때까지가 ‘보릿고개’이며, 지난해 10월 이후 국제 구호미가 대폭 줄어들어 올 봄은 97년 이래 최악의 기근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은 탈북자 강씨와의 일문일답.

“허약해진 노인부터 굶어죽어”

-지금 식량 사정이 어떤가?

“말이 아니다. 지금 상황은 ‘고난의 행군’ 말기인 97년도와 비슷하다. 영양부족으로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지난 1월에 열흘 분 배급 타고 아직 한번도 못 받았다. 유엔 쌀(국제사회 구호미)은 작년 12월에 5kg씩 한번 주었다.”

-노인들이 언제 죽었는가?

“올 봄부터다. 열흘분 배급도 끊기고 이미 허약해진 노인들이 하나 둘씩 죽었다. 기력이 완전히 떨어져 굶어 죽은 노인도 있고, 병으로 죽은 노인도 있다.”

-장상동은 어떤 마을인가?

“탄광촌이다. 마을에 덕천탄광이 있다. 장상동은 대략 3백50 가구, 주민 1천명 정도가 산다.

-노인 몇 명이나 죽었는가?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20명은 넘을 것 같다. 탄광촌에는 진폐증 환자도 많다. 못먹고 영양부족으로 폐렴이 걸려 죽었다.”

-탄광 사정은?

“전기가 돌지 않아 갱에 물이 차서 폐갱 직전이다. 갱에서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생필품 생산(8.3 계획)을 하지 못하고 그 대신 돈으로 내는데, 한 달에 2천5백원을 갱장에게 바쳐야 한다. 작년에는 ‘8.3 계획’만 완수해도 식량 배급표를 줬는데, 올해는 배급표도 주지 않는다. 돈을 안 바치면 갱에서 ‘강 아무개는 직장 안 나온다’고 보안서에 제기해 강제노동하게 한다.”

강씨는 돈을 직장에 바쳐야 강제노동을 피할 수 있는데, 장사할 돈도 없어 “강에 사금(沙金) 캐러 간다”고 직장에 말하고 중국으로 넘어 왔다.

-‘8.3 계획'(2천5백원) 못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나?

“농장에 나가 일해야 한다. 농장에 나가 하루 일하면 하루에 250g의 옥수수죽을 준다. 죽 물이나 먹자고 농사할 바엔, 중국에 와서 한해 여름 일하고 나가는 게 낫다.”

최근 북-중 국경지역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두만강을 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통 탈북자들은 봄에 중국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가을에 농사가 끝나면 품삯을 받아 북한으로 돌아간다. 이들이 한해 중국에 나와 버는 돈은 중국돈 1천~2천원 정도다. 강씨는 올해로 두 번째 중국으로 넘어왔다.

-어떻게 도강(월경)했나?

“최근 회령시의 국경 경비가 엄청 강화됐다. 이전에는 군인들에게 중국돈 2, 3백원만 주면 도강시켰는데, 지금은 중국돈 천원까지 내라고 한다. 그래서 회령시 인계리로 빠져나와 겨우 삼합(三合)으로 도망쳐 건너왔다. 지금 두만강 물이 많이 불어 도강이 어려웠다.”

감자종자 파먹고, 소 도둑 늘어나

-집안 사정은?

“우리집은 쌀밥 구경한 지가 옛날이다. 봄에 새풀이 나오면 풀을 뜯어먹어 산에는 풀도 없다. 풀만 끓여먹어 ‘늄'(알루미늄) 가마는 새까맣고, 사람들의 이빨도 까맣게 변했다.”

강씨에 따르면 배고픈 사람들은 밤에 몰래 남의 감자밭에 들어가 감자 종자까지 훔쳐 먹는다고 한다.

“자고 나면 ‘누구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소문 나자, 농민들은 밤마다 경비를 서고 울타리에 전깃줄을 쳐놓는다. 우리마을에도 남의 밭에 들어가 감자 종자 파먹다 감전돼 죽은 사람이 여럿 된다.”

한동안 잠잠하던 소도둑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허기진 주민들이 농장 소를 습격하는 것이다. 농민들이 일 끝나면 강변에 소를 매어 놓는데, 소도둑들이 몇 십 리 끌고 가서 도살한다. 소가 없어지면 농장에서 며칠동안 찾다가 더 안 찾는다. 북한에서 소는 ‘국가소유’니까 주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를 잡아먹다 보안서에 잡히면 ‘살인자’와 동등한 취급을 받고 총살된다.

WFP “3백만명 식량공급 중단위기”

지난 26일 세계식량계획(WFP)은 월간보고서에서 “지난 3월과 4월 사이 평양에서 옥수수는 40%, 수입쌀의 경우 25% 각각 가격이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리처드 레이건 WFP 평양사무소장은 지난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북한에 여름이 끝날 무렵까지 대규모 국제적 지원이 없을 경우, WFP의 지원을 받고 있는 6백50만명 중 3백만명에 대한 식량공급이 중단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탈북자와 WFP평양 사무소장 증언 비교분석

품종 중국국경 탈북자증언(덕천기준) WFP 레이건 사무소장 증언(평양기준)
한달 봉급 2,500원 옥수수 5kg구입, 수입쌀 3kg구입
쌀(북한산) 1,200원
수입쌀 850원 작년보다 25%인상
옥수수 650원 작년보다 40%인상
구호미 1월에 5kg수급 남한에서 10만 톤
현 배급량 없다 (05년 1월 중단) 평양시 1인당 200g 배급
농사동원 옥수수죽 250g

FAO(세계식량농업기구), WFP(세계식량계획)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주민들이 한해 소비량은 510만톤 가량이다. 지난 10년간 북한은 생산량 중 모자라는 부분을 국제사회의 식량원조에 의존해왔지만, 올해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한국이 04년10월 보낸 10만톤과 쿠바(설탕), 스웨덴(콩), 호주(밀가루)이외에 거의 없다.

03~04년에 생산한 전체 곡물량 중 모자라는 곡물은 94만 4천 톤이다. 올해에 특별히 식량난이 가증된 것은 북한당국의 군량미 비축과 핵문제로 하여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북한 곡물 생산량(자료:FAO, WFP)

(단위:t)
1995-1996 407만 7천
1996-1997 287만 4천
1997-1998 283만 8천
1998-1999 378만 3천
1999-2000 342만 1천
2000-2001 257만 3천
2001-2002 365만 7천
2002-2003 396만 9천
2003-2004 415만 6천
2004-2005(?)

중국 룽징(龍井)=김영진 특파원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