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판문점 적십자 연락전화 단절 등 잇따라 대남 강경조치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삐라 제지 법률 검토’, ‘금강산 지역 방문 허용’ 등의 사안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여 주목된다.
정부는 17일 북한 고성지역에 연탄을 전달하기 위한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관계자 4명의 방북을 허용키로 결정했다. 지난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고(故)박왕자 씨 피격사망 사건에 따라 금강산 지역 방문을 불허한 이래 사실상 처음이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잠정 중단’ 조치 이후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과 경협 등을 위한 금강산지역 방문에 대해서도 불허해 왔다. 당시 정부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신변안전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유로 방북을 불허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박 씨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 지역에 대한 엄격한 방문금지 조치의 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후 인도적 지원 단체의 금강산 방문 계획에 대해서도 사실상 허용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도 18일 “연탄나눔 외에도 3∼4개 단체가 계속 여건이 된다면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같은 조치는 남북 당국간 대화통로가 닫힌 상태에서 민간단체 간 대화통로의 다양화를 통해 경색국면에 빠진 남북관계의 해결을 위해 활용한다는 판단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가 그동안 ‘금강산 사건 해결에 대한 정부의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해왔지만, 최근 정부의 미묘한 태도 변화가 감지되어 왔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김 대변인도 “남북당국 간 만나서 상호이해와 협의를 통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면 틀림없이 금강산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만 강조할 뿐, 기존 관광 재개의 조건으로 내세웠던 사건 현장방문을 통한 남북합동조사, 신변안전 조치 마련 등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13일 금강산 사건 이후 중단했던 서해지구 군 통신망 정상화를 위한 자재·장비 제공 문제를 협의하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14일엔 민간 대북지원 단체들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재개를 위한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통신선을 제공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와 관련돼 있으며, 그동안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고려로 연기됐던 사안이 발표된 것일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에 대해서도 입장 변화가 분명하다. 정부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 하에 해당 단체를 찾아가 자제 요청만을 촉구해왔던 그동안의 방침에서 변화해 유관단체와 협력,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찾고 있다.
정부는 일단 이 같은 입장변화는 사전에 이미 계획됐고, 준비를 진행해 왔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최근 정부의 군 통신자재 제공 제의, 민간단체 금강산 방문 허용 등이 북에 대한 유화 제스처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기 보다는 이러한 사업들은 정부가 이전부터 계획을 해왔던 것이고 준비하고 진행을 시켜온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추진한다”며 “특히 인도적 지원분야나 개성공단 안정화와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사업은 상황과 관계없이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태도변화가 북측의 잇따른 ‘개성공단 중단 압박’ 등 연이은 강경조치와 남한 내 정치권을 비롯한 시민단체의 대북정책 전환 촉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장 변화가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입장선회를 암시하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냉담하다. 통일부에 따르면 18일 현재 북한은 군 통신 장비 제공에 대한 답변이 없다.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 전략에 따라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등에 대한 이행 등 대북정책의 획기적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북측의 강경 대응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측은 이명박 정부가 머리 숙여 들어오지 않는 한 대남 강경 대응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북측이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더라도 정부는 일희일비 하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