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남전략 허리 꺾어야 2012년이 안전하다

오는 9월 상순이면 ‘김정일 말기(末期)체제’의 뼈대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3대세습 북한정권의 생존전략 방향을 대강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26일 북한당국은 “9월 상순에 노동당 대표자회를 소집한다”고 발표했다. 당대표자회 소집 목적도 밝혔다. “조선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가 목적이다. 북한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당대표자회 소집 주체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결정서)’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당 정치국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김일성, 오진우가 사망한 후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일 혼자였다. 따라서 농담조로 말하면,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는 김정일이 혼자서 밥먹으면서도 할 수 있었고, 밤늦게 헤네시 XO급 꼬냑을 홀짝거리면서 할 수도 있었다. 


김일성 사망이 1994년, 오진우 사망이 1995년이니까 대략 15년 동안 김정일 혼자서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해온 것이나 다름 없다. 공산당 조직을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공산주의 사회의 모든 조직은 지도-집행 체제이다. ‘당-국가 체제’라는 말부터 ‘당이 지도하고 국가는 집행한다’는 뜻이다. 당은 국가에 대해 배타적 지도권을 갖는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이는 불변이다. 우리나라 신문에 간혹 “북한은 당이 국가에 대해 우위에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우위’ ‘하위’ 개념이 아니라, ‘지도’와 ‘집행’ 개념이다. 국가기관은 무조건 당기관의 지도를 받는다. 


당 내부에서도 지도와 집행이 갈라진다. 정치국은 지도기관, 비서국은 집행기관이다. 비서국에서도 조직지도부는 다른 부서에 대해 지도기관이다. 중앙당은 지방당을 지도한다. 그래서 중앙당만 ‘조직지도부’이며, 지방당은 그냥 ‘조직부’다. 


가끔 서울을 방문하는 북한의 ’00시찰단’ 내부에서도 지도역할과 집행역할이 갈라진다. 대체로 보면, 앞에서 나서서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은 집행역, 뒤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인물은 지도역이다. 이 때문에 지도역이 집행역을 감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지도역이 ‘당과 수령(장군님)의 뜻에 따라 집행역이 충실히 하고 있느냐’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당 조직, 군(軍), 국가기관, 제정당, 사회단체들과 주민들은 이같은 지도-집행체제 하에서 사회생활, 조직생활을 하게 되어 있다. 이같은 조직체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오로지 수령(김일성, 김정일) 한 사람밖에 없다.


또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김정일 총비서도 조선노동당 당원으로서 중앙당 본청사의 본부당 서기실 세포위원회 위원장이 주재하는 당생활총화에서 당생활 지도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김정일 총비서가 당원 자격으로 당생활총화에 참석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만약 세포위원장이 원칙대로 한다면 김정일 당원은 조선노동당 조직파괴, 살인, 납치, 테러, 강제구금시설 설치, 국가변란, 체제전복, 국가재산 횡령, 독직, 인신매매, 축첩, 공연음란 등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오만가지 죄목에 걸려 벌써 출당(黜黨) 조치되었을 것이다.    


북한의 최고의결기구는 당대회다. 당대회는 1980년 제6차 대회 이후 열리지 않았다. 당대회를 열 수 없는 경우에 개최할 수 있는 것이 오는 9월 상순에 열린다고 하는 당대표자회다.


당대표자회는 1958년 소위 ‘8월 종파사건'(56년)을 완전 청산하기 위해, 그리고 1966년 갑산파를 숙청하고 당 직제를 위원장제에서 비서제로 바꿀 때 열렸다. 북한 현대사 60여년 동안 두차례 열린 것이다. 따라서 9월 상순 세번째 당대표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두 차례의 경험에 비춰보면, 당대표자회는 ‘당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새롭게 조직정비가 필요할 때’ 열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일성-김정일-(3대세습)정권에 조금이라도 해(害)가 되는, 또는 해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 종파들을 완전히 청산할 필요가 있을 때 열린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지도체계가 수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 키워드는 ‘청산’과 ‘수립’이다. 박남기 중앙당 계획재정부장 총살과 그 일파, 대남관계 인물 제거 등 ‘청산’은 이미 진행된 것 같다. 시장경제, 개혁개방 운운하거나 운운할 가능성이 있는 자, 김정일-김정은에게 충성이 의심되는 자들은 이미 철직되었거나, 보위부로부터 작은 혐의라도 추적받고 있을 것이다. 이들을 청산하고 난 뒤 당대표자회에서 새 조직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당대표자회 소집 목적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서, 이번에 정치국-비서국-검열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를 정비할 가능성이 높다. 당 중앙위원회(중앙위원, 후보위원)를 새로 구성한 다음, 제6기 22차 전원회의를 열어 정치국, 비서국 성원 등을 선출할 것이다.


관찰 포인트는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 비서국 비서와 부장들이다. 그동안 별로 활동이 없는 것으로 관찰돼온 중앙군사위원회의 변화도 예상해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 개정헌법에서 국방위원회의 덩치가 커졌기 때문에, 이를 당 조직지도부와 중앙군사위를 통해 당적 통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후계체제를 염두에 둔다면 젊은 군인들이 중앙군사위에 보강될 수 있다. 


핵심 포인트는 1)정치국 상무위원에 누구누구 들어가느냐 2)김정은이 정치국 위원에 들어가느냐, 또 당 조직지도부장을 맡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그 답을 정확히 구하긴 어렵겠지만 대체로 장성택, 오극렬, 김영춘 등이 정치국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3남 김정은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느냐는 문제는 일단 반반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예를 보면, 1974년 2월에 정치위원이 됨으로써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되었다. 이후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때 정치국 상무위원, 조직지도부장, 중앙군사위원이 되어 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따라서 김정은의 경우도 이번에 정치국 위원, 비서국 조직지도부장이 되고, 2012년 제7차 당대회를 열어 상무위원, 조직비서, 중앙군사위원이 되어 정식으로 후계체제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일이 이번에 당대표자회를 여는데 2012년에 또 굳이 당대회를 열려고 할지는 미지수다. 어떤 면에서 ‘2012년에 당대회를 열지 않기 위해’ 이번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하는 것일 수 있다. 당대표자회란 것이 ‘당대회를 개최할 수 없을 때’ 여는 것이다. 또 어쩌면 김정일이 스스로 ‘내가 2012년까지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따라서 후계문제를 빨리 매듭지어버리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북한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1980년 6차 당대회 때 신설됐다. 그 전 정치위원회(정치국)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냈다. 그 목적은 김일성-김정일의 유일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래 공산당 정치국은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핵심 인사들’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정위원과 후보위원이 있으며, 이들을 대표하여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구성된다. 따라서 상무위원회는 인민대중-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명실상부 공산당의 최고지도기관이다.


중국의 경우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당 · 군 ·국가의 핵심 멤버들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당 중앙위원회를 명실상부 대표한다. 중국공산당 총서기, 국무원 총리는 반드시 상무위원이 맡아야 하며, 전인대 위원장과 정협주석, 군사위원회 주석, 국가주석, 부주석, 국무원 제1부총리, 중앙기율위 서기 등이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따라서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국 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미래 비전을 결정하는 최고지도기관이며, 정치의 효율성과 국가목표 설정 및 관철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정 조직체계보다 집약적인 측면이 있다. (이념과 체제문제를 떠나 중국 공산당 조직체계와 비교해보면 지금 한나라당, 민주당 조직은 한심하다. 민노당이 오히려 나은 편이다. 당 조직체계를 보면 한국은 정치 후진국이다.)    


그런데, 북한이 1980년에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치국에 각계각층 대표들을 모아놓으니 성원들이 너무 많아 김일성 김정일이 독재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소수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상무위원회 설치 목적부터가 중국 공산당과는 정반대다. 당시 상무위원은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등 5명이었다.


최근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는 “당시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 2번 들어가 보았는데, 주로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가 참석했다. 오진우는 그냥 가만히 있었고, 김일성 김정일이 모든 안건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라는 것이 그냥 ‘우리 당도 정치국 상무위가 있다’는 대외선전용이었고, 내막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알아서 처리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정일이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곧바로 상무위원회에 진입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 (김영춘) 오극렬 장성택 김정은’ 정도로 상무위를 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확률은 반반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주시하고 있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김정은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 과연 연착륙 후계체제로 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나올 수 있다.   


김정일은 당대표자회를 열어 군(軍)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통치의 축(軸)을 당(黨) 중심으로 옮기자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3남 김정은이 군을 모르니까 군을 장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먼저 당 조직을 통해 군을 통제하는 체제, 다시 말해 김정일 자신이 당 조직지도부장으로서 군을 통제했던 방식으로 당-군 관계를 원상회복 하려고 할 것이다.  


또 미리 그렇게 해놓아야 자신이 죽고난 다음에도 군이 김정은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최악의 경우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향후 북한의 내부사정으로 인해 만약 김정은이 권좌에서 밀려나게 된다면 그 ‘내부사정’이란 결국 군에 의한 물리력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김정일도 군이 체제를 사수하는 최후의 물질적 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이 당대표자회를 개최하는 이유가 좀더 선명해진다. 더욱이 이와 같은 ‘후계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이를 방해할 수도 있는 외부세력을 사전에 차단해야 하고 ‘적’들의 관심을 분산시켜놓아야 하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 같은 ‘기획’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 군사긴장 고조와 평화협정을 위한 조건 형성, 이명박 정부 압박 등 여러 목적을 갖고 있다. 김정일 통치집단은 하나의 수단으로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달성하려는 머저리들이 아니다). 


아무튼 그런데, 이번에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정치국 (상무)위원, 조직지도부장이 되어서 대내외적으로 후계자로 확정된다고 할 때, 앞으로 과연 후계자로서 순탄하게 갈 수 있을까? 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김정일은 과거 북한권력의 중요한 축이었던 빨치산 원로들과도 친했지만, 김정은은 당조직 엘리트들과 오랫동안 스킨십을 나눈 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번 당대표자회 개최가 김정일이 숙고 끝에 직접 지시한 것인지, ‘장성택 기획-김정일 허락’ 형식을 띠고 장성택이 주도하는 것인지 좀 의심하는 편이다. 두 경우는 별 차이 없는 것 같지만 당대표자회 이후 권력내부에서 나타날 변화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3남 김정은의 경우, 9월 당대표자회 이후 전개될 양상이 과거 1974년 2월~1980년 10월 김정일에 비해 불안정 요인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권력공고화 측면에서 보면, 당시 김정일이 상승 커브를 탔다면, 김정은은 빠르게 하강 커브를 타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그동안 ‘김정일 말기체제-3대 후계체제’와 관련하여 대체로 4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제시해왔다.


 ① 순수 3대 세습체제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확정하고 후계자는 당・정・군에서 확고한 지위를 갖고, 일정기간 김정일과 권력지분을 나누면서 김정일이 지도하고 후계자가 집행하는 부자(父子) 공동 권력행사 기간을 거친 다음, 후계자가 단독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다.


이를 단순도식화 하면, 김정일 통치 + 후계자의 지도자 연수기간 → 김정일+후계자 공동정권(김정일 지도 + 후계자 통치) → 후계자 단독정권으로 진행하는 시나리오다. 1974년 김정일 후계자 확정 및 이후 후계자 지위가 공고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 경우 후계자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비서국 조직지도부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국방위 부위원장 등의 지위를 순차적으로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당・군・정・보위・보안부・호위총국(경호실) 등의 엘리트들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3대 세습 후계자에 대한 충성서약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현 김정일의 권력체제에서 후계자 권력체제로 바뀌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나리오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연장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선군정치가 이어지고 핵전략에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개혁개방 가능성도 여전히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의 경우, 후계자 스스로 정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물론 김정일이 생존해 있을 시기는 권력 내부 갈등이 북한체제에 충격을 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계자에게 권력이동이 이루어지면서 신・구 엘리트들 사이에 갈등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시나리오는 단기적으로는 체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차츰 3대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이 노출될 것이며, 특히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체제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② 후계자 + 장성택 체제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확정해놓고 사망할 경우,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면서 2인자 장성택이 정치 후견인으로서 후계자를 지원하는 ‘변형 세습정권’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핵심 포인트는 ‘장성택이 정치적으로 미숙한 후계자를 데리고 어떤 방식으로 북한정권의 안정화를 꾀할 것이냐’다. 이 시나리오 하에서 후계자와 장성택은 김정일 시기의 측근 및 전문 엘리트들을 계속 중용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성택과 어린 후계자가 정치적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또 장성택과 측근그룹 대(對) 후계자 지지그룹이 대립,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당・군・보위 엘리트들은 권력투쟁을 벌일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이 시나리오 하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 개혁개방 등 체제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낮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과의 협력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구가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체제 변화의 초기단계에 진입할 수 있겠지만, 중국식 개혁개방처럼 계획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이 같은 변형 세습 체제는 장기 지속가능한 체제로 이어지기보다 과도체제에 그칠 것이다.


③ 집단지도체제 


일부 연구자들이 김정일 이후 당・군 엘리트들이 당 정치국, 또는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정권에서 ‘집체적 지도체제’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김정일 이후 체제위기를 느끼는 후계자 및 엘리트들이 쉽게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중단기적으로는 이 시나리오를 예상하기 어렵고, ‘김정일 이후’ 일부 소외된 당 엘리트들이 집체적 지도체제를 일시적으로 요구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관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 가능성이 낮지만 소수의 엘리트들이 일부 군(軍) 야심가들과 합세하여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하며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에도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후계자와 장성택이 집단지도체제를 받아들일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권력투쟁으로 북한체제가 조기에 붕괴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④ 후계구도 모호- 통치권 장기 불안정 경우


후계구도가 공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일 사망이 선행(先行)되고, 어정쩡한 지위의 후계자와 장성택 등 특정 권력 엘리트들이 1년 이상 장기간 통치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서, 식량난,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유사한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등 복합적인 내외적 요인이 겹치면서 북한정권 및 북한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지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 하에서는 내부의 권력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더욱 상황이 나빠질 경우 북한 내 군(軍) 실력자들의 할거(割據) 및 무질서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 2300만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주민들의 집단 국외 탈출, 핵무기(물질), 미사일 등의 유출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지역은 △유엔안보리 중심 국제관리 △ 한국군 또는 한미연합군 진주 △중국군 진주 등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상 4가지 시나리오 중 지금 김정일이 가려는 시나리오는 당연히 1번이다. 하지만 1번이 김정일 사망 후에도 체제 내구력이 현재 상태로라도 유지될 것으로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쨌든 북한체제는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이 ‘격동하는 한반도 정세’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방안’을 대강의 수준에서 언급하려 한다.  


‘대북전략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긴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반도에서 남북관계는 6.25 전쟁 때부터 북한이 도발하면 남한이 방어하는 형국이었다. 최근 천안함 사건까지도 그렇다. 그 사이 남측의 의미있는 대북 선제 제의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북한이 공세, 남한은 수세였다.


다시 말해, 북한이 대남전략의 전선을 남한 내부로 옮겨와서, 남한 내부의 수면 위・아래에서 남북간 정치투쟁이 이뤄져온 것이다. 간단한 예만 들어보아도, 북한은 남로당, 통혁당부터 시작해서 남한 내부에 끊임없이 지하당을 구축해왔지만 남측이 북한에 남한조직을 심어본 사례가 없다. 지금도 남한 내부에 범민련, 진보연대 등 수면 위 친북 군소조직들이 적지 않다.(이에 대해서는 최근 ‘도서출판 시대정신’에서 나온 홍진표 이광백 신주현 저 ‘친북주의 연구’가 아주 훌륭한 참고서다).


이같은 남북관계 구도는 1980년대 말 동유럽, 소련이 붕괴되면서 흐트러지기 시작하여 90년대 초 한소-한중 수교 등 남측의 주동적인 북방개척이 성공했다. 이에 바탕하여 남측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김정일에게 돈을 준 댓가이긴 했지만 어쨌든 당시 정상회담 그 자체는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문제’를 좀더 명료하게 이해하려면, 1970년대까지 미국이 대(對)소련 전략을 미국 내부 및 영국과 유럽에서 방어적으로 수행하던 방식을 1980년대 레이건 시기에 대소전략을 폴란드와 동유럽-소련 내부로 옮겨서 공세적으로 수행한 사례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북전략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대강의 디자인은, ①대북전략을 사상전(戰)・정치외교전・경제전・비정규 군사전 등 전 분야에서 통일적으로 수행하면서 ②북한의 외곽(한국 중국 러시아 등)에서 북한 내부로 전선을 진입시키며 ③북한 내부 지역에서는 계급독재의 피해지역인 함경남북도 및 중국과 가까운  평안남도를 중시하면서 평안북도 황해도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④ 각 지역에서의 전선은 북 주민들을 계층별로 잘 나누어 접근하되, 지식계층, 청년대학생, 시장계층에 집중하면서 기본계층, 적대계층 대상으로 활동을 확대하며 ⑤ 기관별로는 당 군 정의 하급기관에 먼저 체제변화의 역량을 확대하면서 ⑥ 지역별, 계층별, 기관별로 김정일과 운명을 같이 할수밖에 없는 그룹을 계속 소수화 해가는 전략이다.


여기에서 ①~⑥의 과정별로 구체적인 전술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①의 사상전(戰)은 북 주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시장 의식을 직접 고양하고 국제적으로 북한인권단체들의 연대활동을 강화하며, 수령절대주의 독재 공격, 김정일에 대한 폭로 등등의 다양한 전술이 요구되며,  ②의 북한 외곽에서의 활동으로는 러시아에서의 탈북자 셀터(shelter) 임차 등 합법활동, 또는 극동지방에서 ‘코리아 타운 건설’ 등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③에서는 계급독재 피해지역에서의 거점 확보에 대한 계획이 순차적으로 수립돼야 할 것이며, ④의 경우 당사자들의 직접 활동에 대한 조직과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①~⑥의 과정을 모두 하이퍼 텍스트 형식으로 계속 하부 줄기와 가지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역시 근본적인 분야는 사상전이며, 사상전의 핵심을 압축하면 인권· 민주주의·시장이다.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북한정권의 주인은 김 왕조(dynasty)가 아니라 2300만 주민들”이라는 주권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첫번째다.


또 이같은 인식은 한국 및 주변국에서도 공유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지역에 대한 첫번째 주인공은 북한주민들이며, 두번째 주인공은 7천만 우리민족, 세번째 주인공은 앞으로 북한의 재건과 한반도평화통일을 도와주고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위해 함게 손잡고 가야할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이다.   


이같은 인식에서 출발하여 한국 내부에서 전반적인 계획이 수립돼야 하며, 이를 위해 먼저 민간-정부간의 사전 협력이 필요하며, 이어서 미국 일본과의 협력, 중국과의 협력 등 국제협력이 긴요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외적 협력의 힘이 집중돼야 하며, 고도의 스마트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낡고 병든 체제라고 해도 인구 2300만과 이를 60여년 동안 통치한 정권을 분리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북한지역은 미 중 러 일의 국제 이해관계가 얽혀져 있는 전략적 요충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7천만 남북 주민이 살고 있는 한반도가 어떤 지리정치적 입장에 처해 있는가를 매우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실체’도 없었다. 의장성명 제7항은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attack)을 규탄한다(condemn)’로 되어 있다. attack의 주체는 누구인가? 없다. 결국 천안함 46명의 장병들은 ‘서해 물귀신’의 공격을 받아 전사한 꼴이 되었다. 


우리는 유엔의장성명이 왜 주어가 빠지고 동사만 있는 괴상한 문장이 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으며,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냉정한 현실이다.


천안함 사건 후 정부는 5.24 특별담화를 통해 여러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이중에는 실현가능한 조치도 있고 좀더 상황을 보아야 할 조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후반기에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2년여 동안 할 수 있는 정책과 할 수 없는 정책을 구분해야 하고, 단기계획과 장기계획을 분리하여 추진동력의 힘을 배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가 장기계획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데 좀더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대북 장기계획을 추진하는 기반이 되는 한미동맹을 강화한 것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대북정책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때부터 시종 북한에게 먼저 선방을 얻어맞음으로써 비핵개방3천, 그랜드 바긴은 제대로 착수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 일각에서는 ‘천안함 출구전략’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입구전략’도 추진하지 못한 상황에서 ‘출구전략’이라는 게 과연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럴수록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대북정책 전반을 다시 찬찬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즉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돌아가서 북한인권 개선 방안, 북한의 개혁개방화 전략, 북한내 시장확대 방안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지금은 북한문제를 매개로 한 ‘대남정책’이 더 중요해진 상황이다. 천안함 피폭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30% 정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한 대북정책’을 실현하겠는가? 따라서 ‘북한 똑바로 알기’를 위한 일련의 정책을 세우고 친대중적 세련된 수단을 통해 제대로 된 화합과 소통의 효과를 얻어야 할 것이다.   


특히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12년으로 갈수록 평양정권의 대남 개입이 더욱 심해질 것이며, 온갖 유언비어들이 등장할 것이다. 한상렬 같은 인간들이 줄지어 나올 수 있으며, 테러 형태의 직접도발도 좀더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고 ‘출구전략’ 같은 작은 생각을 떠나 더 넓은 시야를 갖고 향후 2년 대북정책 방향을 새로 잡아야 한다. 그것은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 점검하는 일이고, 핵심은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옮기는 것’이다. 


오는 9월 상순이 지나면 북한정권이 대남전략에서 새로운 ‘본때’를 보이겠다고 나올지 알 수 없다. 북한정권은 대남전략에서 뭔가 남측을 계속 흔들어대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2012년까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 전략의 허리를 꺾는 일은 대북전략의 전선을 북한 내부로 공세적으로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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