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정부 길들이기’ 재연하나

북한이 대포동2호 미사일 발사 조짐을 보이는 등 최근 행보가 16년전 미국 클린턴 행정부 출범 직후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달여가 지난 1993년 3월에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그해 5월에는 중거리인 노동1호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시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미신고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거부하면서 ‘1차 북핵위기’가 불거진 뒤로, 클린턴 행정부를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길들이려는 전략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어 이듬해 영변 원자로의 연료봉 인출을 단행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하는 등 ‘벼랑끝’ 행보를 계속한 끝에 결국 그해 10월 북.미 고위급회담을 통해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다.

외교 소식통은 4일 “북한이 당시 벼랑끝 전술이 통했던 기억으로 오바마 정부를 상대로도 대포동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권교체기에도 위기지수를 높이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써왔다.

북한은 5년전 노무현 대통령 취임을 목전에 둔 2003년 1월10일 전격적으로 NPT 탈퇴를 선언했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3년차였던 당시는 ‘2차 북핵위기’의 발단이 된 2002년 10월의 고동축우라늄(HEU) 프로그램 파문으로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였다.

북한은 한.미의 정권교체기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오히려 전세를 뒤집기 위해 위기를 높이는 전략을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을 동결하고 북한과의 양자회동을 피해오던 2006년 7월 대포동2호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이어 10월에 핵실험까지 단행해 미국을 협상장에 끌어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번에도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통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한.미 당국이 북한의 이같은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데다 과거 성급하게 북한과 타협했던 제네바합의가 결과적으로 실패로 귀결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차분하고도 신중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게 당국자들의 반응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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