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로켓발사, 무수단 기지

“시험통신위성”이라는 `광명성 2호’를 머리에 얹은 운반로켓 `은하-2호’를 발사할 북한의 “동해 위성발사장”은 1998년 8월 31일 “지구인공위성”이라는 `광명성 1호’를, 2006년 7월 5일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각각 발사한 곳이다.

이 곳의 옛 지명이 대포동인 관계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선 이곳에서 발사된 것들을 ‘대포동 1호’와 ‘대포동 2호’로 부른다.

함경북도 무수단리(舞水端里)에 있는 발사기지의 건설엔 핵시설 건설을 담당한 북한 노동당 131지도국이 깊이 관여했다고 탈북자 단체인 `탈북자동지회’의 김대호씨가 지난 2006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주장했었다.

1980년대 북한 원자력공업부에서 우라늄폐기물 작업반장으로 활동했다는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북한은 1990년 무수단리에 있던 군사건설국을 철수시키고 1개 대대(약 30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며 같이 일하다 “무수단리로 들어간 동료들로부터 정무원 총리급의 특급경호를 받고 있으며 무수단리 기지는 서울이 아니라 일본 도쿄를 겨냥한 전략기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탈북자 단체 `숭의동지회’의 최청하씨는 같은 해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1980년대 초반 무수단리 기지를 조성할 당시 군부대에 소속돼 공병부대, 일반 주민 등과 함께 반년가량 케이블 및 도로 공사에 참여했다면서, 건설 이후 기지 출입이 철저히 차단됐고 1990년대는 방어부대와 전문 보안요원들이 배치됐다고 주장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 이듬해인 99년 3월7일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시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에서 투표했다. 무수단리 기지가 대외적으론 함흥분원에 속한 것처럼 돼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이곳을 자신의 투표장으로 고른 것은 무수단리 기지에 대한 관심 표명으로 해석됐었다.

북한은 98년 8월 `광명성 1호’ 발사 때는 무수단리 기지를 단순히 “발사장”이라고 표현했다가 99년 8월31일 발사 한 돌을 맞아 내놓은 발표에선 “인공지구위성 발사장”이라고 불렀으며, 이번 로켓 발사를 앞두고는 “동해 위성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한의 평화문제연구소와 북한의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공동 편찬한 `조선향토대백과'(2003년 12월 평화문제연구소 발간) 제15권(함경북도 편)에 따르면 무수단리는 1958년 화대군 동호리와 창전리를 병합해 신설한 행정구역으로, 리 안의 중심마을인 `무수단’의 이름을 땄다.

무수단은 예전부터 무쇠 생산지로 알려진 곳으로, 우리말 ‘무쇠 끝’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무수’는 `무쇠’를 비슷한 음의 한자로 대치시킨 것이고 `단’은 끝을 의미해 `무쇠를 뽑던 마을의 끝’이라는 뜻이라고 사전은 설명했다.

이 지역은 해발 100∼500m의 산지와 바다의 퇴적작용에 의해 이뤄진 평야로 돼 있으며 동쪽 해안은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해발 수십∼500여m의 절벽지대다.

무수단은 북한이 “우리나라(한반도)에서 가장 긴 바다절벽”이라며 천연기념물 제312호로 지정한 바다절벽의 이름이기도 하다. 바닷물이 절벽에 부딪혀 늘 춤추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무수단리는 농사와 고기잡이를 병행하는 ‘농업수산협동군’으로 미사일 기지 외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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