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왜 다시 평양인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 6월 1차 회담에 이어 다시 평양에서 열린다.

1차 정상회담 때의 6.15공동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밝혀 사실상 2차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 형식으로 방문해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2005년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과 ’6.17면담’을 통해 차기 회담을 “북측이 원하는 시기와 장소”에서 연다는 데 합의했으며 이번 회담도 이같은 합의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간 상호 교차방문에 의해 이뤄지는 게 정상임에도 북한은 1차 정상회담 때는 물론 1994년 합의됐다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한 정상회담도 개최지를 평양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북한은 왜 평양 개최를 고집할까.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 안전과 ’권위 훼손’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한 사회에서 다양한 이념을 가진 단체와 개인들이 시위 등 자유로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자본주의 사회의 무질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어떤 위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북 장관급회담을 비롯해 남측에서 회담 등이 열릴 때마다 보수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벌인 만큼, 김 위원장의 답방시 반김정일 시위가 일어날 수 있고, 이는 북한 입장에선 신변안전상의 문제인 것은 물론 김 위원장의 권위 훼손 문제이므로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에서도 신변 안전을 위해 수시로 예정됐던 동선을 바꾸는 등 극소수 경호원을 제외하고는 움직임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물며 ’통제가 불가능한’ 남한에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상당히 컸을 것이다.

북한이 평양 개최를 고집하는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을 대내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남북한 모두의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산을 들 수 있다.

북한은 1차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통령의 방북에 대해서도 주민 내부 교양자료를 통해 “흰기를 들고 찾아왔다”, “장군님(김정일)의 통일의 뜻을 받들어 머리를 숙이고 찾아왔다”는 식으로 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번 평양 개최는 2번째 남측 대통령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북한으로선 김 위원장을 ’통일된 조선’의 지도자로 선전하는 데 더없이 좋은 소재인 셈이다.

북한은 1차 정상회담 후 남북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한 정부 인사들이 김 위원장의 통일사상과 정책, 풍모 등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결과라는 식의 사상교양을 지속해 왔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 등의 방북 이후 측근들에게 “남조선 대통령과 일본 총리 등 외국 정상들이 평양에 오지 못해서 안달인데 내가 굳이 찾아갈 이유가 있느냐”며 외국 정상의 평양행과 정상회담을 자신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호재로 여기고 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남쪽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을 반대해 보수세력의 데모가 일어날 수 있는 등 경호문제를 우려해 답방을 기피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적으로도 남측 대통령마다 김 위원장을 ’알현’했다는 식의 김정일 우상화 효과를 얻는 등 평양 개최를 통해 다양한 효과를 얻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김정일 위원장은 2001년 9월 방북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게 자신이 남한 답방을 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후 국제정세 변화로 답방 효과에 대한 예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장 전 주석은 작년 발행된 외교실록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장쩌민 외교방문 실록(爲了世界更美好 : 江澤民出訪紀實)’에서 밝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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